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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은 왜 임표를 죽여야 했는가?(2)이권홍의 '중국, 중국인'(206) ... 중국사에 담긴 미스테리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  lee@je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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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13  09: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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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표는 모택동과 맞섰다. 결코 자아비판을 하지 않았다.

모택동의 치세학은 줄곧 성공한다. 요령 있게 통솔하였다. 정치적으로 위협되는 적이라 간주되는 상대는 끝내 정치투쟁의 희생양이 되었다. 곧바로 쓰러지거나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기다려야만 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모택동이 천하를 경영하는 데에 적수가 없었다. 그런데 ‘9.13사건’만은 예외였다. 모택동에게는 좌절이나 다름없었다. 왜 그럴까?

임표는 과묵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심계가 굳었다. 그러면서도 전형적인 영웅주의자였다. 대만(臺灣) 군사기록 중 임표를 분석한 자료에는 임표를 지극히 도도한 개인주의자이고 영웅주의자이며 명예를 대단히 존중하였고 자존심이 강한 인물로 평가돼있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오랫동안 전쟁하면서 임표와 몇 차례 교전을 경험한 대만 군인들이 임표에게 내린 평가는 상당히 믿을만한 근거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 평가처럼 임표는 스스로 존귀하다고 여겼다.

1967년 5월 1일, 임표가 천안문 앞에서 마지막으로 모택동을 만났을 때의 장면은 유명하다. 둘이 만났으면서도 한 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임표는 시아누크(캄보디아의 전 국왕) 면전에서 버럭 화를 내고는 떠나버렸다.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모택동 앞에서 어찌 감히 그렇게 할 수 있으랴.

당시 임표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섭군(葉群)이 무릎 꿇고 참석하여야 한다고 빌고 빌었다. 5월 1일의 불꽃놀이 야회에 간 임표는 아무 말 없이 옆 좌석에 앉아 있다가 기자들에게 사진 몇 장을 찍게 하고는 그냥 자리를 떴다. 그런 배짱이 바로 영웅주의가 아니던가. 그런 성깔은 쉬이 접하지 못할 터였다. 당연, 모택동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행동하였다. 두 사람 모두 눈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모택동은 상대에게 반성을 요구하였다. 모택동의 통치학에 있어 자아비판은 중요한 항목이었다. 그냥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서면으로 자아반성을 하여야했다. 모택동 통치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첫째, 후일에 증거로 삼아야하기에 문서로 보존하여야한다. 확실하게 약점을 잡아놔야 하는 것이다. 둘째, 자신의 자아비판을 현단급, 무슨 군급, 사단급, 그 아래 무슨 단위까지 전국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뺨을 확실히 때렸다는 것을 알려야했다.

1959년 군위(軍委,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대회에서 노혁명가 주덕(朱德)이 비통한 자아비판을 한다. 모택동은 전국인민의 마음속에 심어져있는 주덕의 영향력을 깨끗이 지워버리기 위하여 자아비판 내용을 하급기관까지 알리게 하였다. 모든 인민이 주덕이 잘못했음을 알게 만들었다. 주덕은 결국 모택동의 위대함을 칭송할 수밖에 없었다. 주덕만이었을까?

자아비판을 한 인물이 한 둘이 아니다. 20세기 40년대 연안(延安) 정풍운동 이후 그 누구도 모택동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유소기(劉少奇)에서 주은래(周恩來), 강청에서 모택동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아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모택동은 그것을 즐겼다.

‘9.13사건’ 이후 총리였던 주은래의 명성이 높아졌다. 모택동은 특별히 주은래에게 모든 범위 내에서 전면적인 자아비판을 하도록 요구한다. 피할 수 없었다. 1972년에 총리 주은래조차도 오랫동안 자아비판을 하여야했다. 그렇게 자아비판은 모택동이 변태적으로 즐겼던, 정적을 모욕하고 궤멸시키는 통치술이었다.

   
▲ 임표가 『모택동선』을 읽고 있는 「孜孜不倦」

그런데 오직 한 사람, 임표는 예외였다. 결단코 자아비판하지 않았다. 감히 모택동과 맞수를 두었고 맞받아치기까지 하였다. 왕명(王明)이라든지 유소기라든지 어느 누구 하나 자아비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강청조차도 자아비판을 하여야했지만 임표는 그렇지 않았다.

임표는 자아비판을 한 그들의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임표가 가장 염려한 것은 그저 자아비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점이었다. 자아비판이 끝나고 나면 모택동이 당 전체에 전파할 것이 뻔했다.

그의 후계자가 누구누구더라, 임표가 자아비판을 작성했다더라, 임표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더라, 건강이 어디어디가 좋지 않다더라, 다른 곳으로 이송됐다고 하더라 등등, 전국으로 퍼져나갈 것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임표는 결단코 자아비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모택동은 대신 임표의 측근 사대금강(황오이구〔黄吳李邱〕 : 황영승〔黄永勝〕, 오법헌〔吳法憲〕, 이작붕〔李作鹏〕, 구회작〔邱會作〕)과 섭군(葉群)을 가지고 화를 풀었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자아비판을 했지만 모택동은 부족하다면 인정하지 않았다. 모택동은 특히 섭군이 자아비판한 내용을 비난하였다. “허풍만 좋아하고 비판에는 성실하지 못하다”, “꽤 컸구먼, 정치국 위원이 되니 꼬리가 하늘까지 솟았구먼.” 그리고 ‘9.13사건’ 이전에 모택동은 섭군과 관련된 내용을 하달하도록 결재까지 해 버린다.

모택동은 어떻게 암살을 피했을까?

모택동은 임표의 아들 임립과(林立果)가 암살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 분명하다. 반혁명 정변, 이것은 모택동이 일생동안 혁명을 주도하고 권력을 장악한 이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사건이었다. 권력에 정점에 서있기 때문이었을까, 모택동은 남다른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용은 머리는 보이나 꼬리를 감춘다고 했던가.

모택동은 행적이나 행동이 매우 신비스러웠다. 5,60년대에는 당일 모택동이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의 행적을 절대 비밀로 하였다. 목숨이 길었다. 복이었을까, 암살을 피할 수 있었다.

임립과가 모택동을 암살하려했다는 사실을 임표는 알고 있었을까?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체로 섭군은 참여하였을 것으로 본다. 임표는 몰랐을 가능성이 많다. 오랫동안 임표의 정보를 섭군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임표의 ‘사대금강’도 모택동을 암살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중앙에서 암살 관련 사항을 알게 되는 과정을 보면 임표의 딸 임립형(林立衡)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 임립형은 참 흥미로운 인물이다. 모택동은 1971년 9월 1일에서 2일 사이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강서에서 첫째가는 인물 정세청(程世清)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 저런 정담을 나누다가 얘기를 꺼냈다. “여산회의가 끝났지만 정백달 배후에 다른 사람이 있어.” 이 말을 듣고 정세청은 그 배후의 인물이 임표라고 생각하였다. 최전선에서 공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었을까, 그는 곧바로 임표에 대하여 몇 가지를 고발한다.

모택동에게 고발해 말하길, 자기 가족과 임두두(林豆頭, 임립형의 아명)가 자주 만나는데 임두두가 몇 번이나 남창(南昌)에 와서 힌트를 줬다고 하였다. 무슨 힌트? 우리 집안사람과 자주 접촉하지 말라, 일이 잘못되면 이후에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말하였다는 것이었다. 9월 1일과 2일 사이, 정세청이 모택동에게 알려준 내용이다. 그래서일까, 모택동은 암살을 피할 수 있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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