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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의 날씨이야기(33) 아일랜드 파멸 ... 전쟁이 아닌 최악의 기후조건과 병균

 

아일랜드에서는 1845년부터 시작된 긴 장마로 인해 감자잎마름병이 돌았다. 감자 생산량이 급속히 줄어들면서 800만 명의 아일랜드 인구 중 약 2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약 200만 명은 살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아일랜드의 인구를 절반으로 감소시킨 감자 대기근(大飢饉, 흉년으로 식량이 모자라서 굶주리는 상태로 필요한 물자가 크게 부족한 현상을 비유한 말)은 기후변화가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영국의 서쪽에 있는 섬나라인 아일랜드는 우리나라보다도 작으며 인구는 350만명 정도다. 조그만 국토에는 늪지대와 얕은 호수가 많으며 토양이 산성이라서 나무가 잘 자라지 않아 가난을 천부적으로 지니고 살아왔었다. 기후는 멕시코 만류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북위 50°나 되는 고위도 지방이지만 비교적 따뜻한 편이다. 하지만 흐리거나 비가 자주 내려 서울보다 비 오는 날이 3배 정도 많다.

 

영국의 식민지로 가난에 찌들려 살아가던 아일랜드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감자가 전파되면서다. 1600년대 초반에 남아메리카에서 도입돼 아일랜드에서는 17세기 후반에 상당한 규모로 재배됐다.

 

비가 많이 내리고 습한 기후의 아일랜드에서 감자는 엄청난 수확을 보였다. 이로부터 감자는 아일랜드의 주식량이 됐다. 전 국토가 감자밭으로 개간되기 시작했다. 감자는 1690년대 스코틀랜드인이 당했던 극심한 기근을 아일랜드 사람들이 모면케 해주는 귀중한 주식이었다.

 

물론 ‘학살의 해’라 불리던 1740~1741년은 예외였다. 그해 강력한 한파로 인해 곡물, 감자, 가축, 심지어는 바닷새들까지 얼어 죽었다. 이 사건은 100년 후에 닥치게 될 대비극의 예고편인양 40만 명이 이질. 기근, 발진티푸스로 죽었다. 하지만 이때를 제외하고는 감자는 아일랜드인의 기근을 막아주는 주식이 됐다.

 

1770년대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공업화되면서 1800년대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엄청나게 많은 감자를 수출할 수 있었다. 곡물가격이 상승하자 아일랜드는 신이 났다. 곡물 경작지 확장이 계속됐다. 풍부한 식량으로 인해 1700년대 200만명이었던 인구는 1800년대 500만명으로 늘어났고 1821년에는 700만명이 됐다. 대기근 발생 직전인 1845년엔 850만명에 도달해 인구밀도가 유럽에서 최고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던가. 아일랜드 역사상 가장 풍성한 먹을거리와 경제적 풍요를 줬던 감자가 대기근을 불러온 원흉이 됐다. 1845년 10월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온난했던 1845년에서 1846년 여름에 유럽에서 습윤한 남풍이 계속 불어왔다.

 

통상 대서양 부근에 저기압이 위치할 때 아일랜드에서는 비가 많이 내린다. 기후역사가 램(Lamb)의 말에 따르면 이런 기압배치는 북극진동지수가 음(-)인 경우 잘 발생한다. 북대서양 저기압이 강력하게 발달하면 유럽 지역으로는 기압골이 자주 통과하면서 비가 자주 내리는 습한 기후를 보인다.

 

당시 대서양에는 지속적으로 강력한 저기압이 위치했다. 이런 기후조건은 새로운 감자 전염병을 가져왔다. 1845년 유럽에서 처음 출현한 감자잎마름병이 발생, 급속하게 퍼진 것이다. 감자잎마름 병균은 10℃ 이상인 기온과 90% 이상의 상대습도를 오랫동안 유지할 때 급속히 증식하는 특성을 보인다.

 

감자잎마름 병균은 따뜻하고 습한 환경에서 번식하며 바람이나 물을 통해 전달되는 포자에 의해 전파된다. 이 균은 먼저 잎과 줄기를 공격해 시들게 하며 토양을 통해 뿌리와 줄기에 파고 들어가 감자를 썩게 만들었다. 이것이 아일랜드를 덮친 것은 1845년 10월이었으며 가을에 수확 후 저장해뒀던 감자들이 썩기 시작하면서 재앙이 닥쳤다.

 

이후 감자잎마름병이 다시 발생한 곳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온난하고 다습한 서쪽 끝 지방이었다. 1846년 이른 여름, 서풍을 타고 일주일에 80㎞의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으며, 8월 초에는 감자잎마름병이 아일랜드 전역을 휩쓸었다. 그해 감자 수확량은 4분의 3이상, 심한 곳은 90%나 감소했다.

 

1846년 여름, 대서양 부근에 저기압이 위치하면서 이 지역은 비가 많이 내렸다. 1847년 7월 다시 엄청난 비가 쏟아지면서 수확량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 1848년 7월 날씨가 냉랭해져 비가 자주 내리면서 다시 감자잎마름병이 발생했다. 5년 동안 연속해서 발생한 감자잎마름병은 아일랜드를 초토화시켰다.

 

아일랜드의 대기근은 처참했다. 사람들은 굶고 병에 걸려 죽어갔다. 기근으로 체력이 바닥 난 상태에서 식량 감산이 떼죽음을 가져온 것이다. 영양실조는 치명적인 질병들을 불러와 발진티푸스와 재귀열(再歸熱)이 창궐(猖獗)했다. 마을 전체가 송두리째 폐허로 변한 곳이 많았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전쟁이 아닌 최악의 기후 조건과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병균이 나라를 파멸로 몰고 갔으며 역사를 바꾼 것이다. <온케이웨더>

 

반기성은?

 

=충북 충주출생.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공군 기상장교로 입대, 30년간 기상예보장교 생활을 했다. 군기상부대인 공군73기상전대장을 역임하고 공군 예비역대령으로 전역했다. ‘야전 기상의 전설’로 불릴 정도로 기상예보에 탁월한 독보적 존재였다.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군에서 전역 후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위원을 맡아 연세대 대기과학과에서 항공기상학, 대기분석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기상종합솔루션회사인 케이웨더에서 예보센터장, 기상사업본부장, 기후산업연구소장 등도 맡아 일하고 있다. 국방부 기후연구위원, 기상청 정책자문위원과 삼성경제연구소, 조선일보, 국방일보, 스포츠서울 및 제이누리의 날씨 전문위원이다. 기상예보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표창,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날씨를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외 1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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