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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노래가 되어 다가온 제주4·3 70주년기어이 불려진 '잠들지 않는 남도' ... 억울한 죽음 다신 없어야
최필제 기자  |  simasian@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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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3  17: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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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 70주년 추모식이 열린 제주4.3평화공원 인근의 동백꽃

4·3 70주년 행사장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햇빛조차 들지 않는 몇 겁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과거의 상처를 현재의 시간으로 불러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버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동백이 무참히 지고 난 4월의 사람들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누구는 웃고 누구는 흰 국화꽃을 손에 들었고 또 누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모두들 조금씩은 슬픔의 지분을 나눠가진 사람들처럼 보였다.

제주4·3은 1947년 3.1절 기념행사 중 벌어진 민·관의 충돌이 발단이 됐지만 그것은 형식적 사실일 뿐 사건의 진실은 아니었다. 그 이면엔 좌·우 대립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었고 민족의 비극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2만5000명에서 3만 명에 이르는 제주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죽었다. 억울함과 황망함을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을까. 핏방울처럼 붉은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는 남쪽 어느 지방에선 망자의 사잣밥을 전하는 도구로 쓰인다. 동백나무 줄기에 떡을 매달아 물가에 드리우면 죽은 자들이 먹고 허기진 배를 채운다는 것이다. 제주 지역에서도 동백은 집 안에 들이지 않는 꽃이었다.  온몸을 던져 투신하는 동백의 비극적 모양새가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맞아죽고, 찢겨 죽고, 총 맞아 죽은 자의 몸짓처럼 보였을 테니까.

1992년 제주 화가 강요배는 제주 사람들의 아픔을 동백꽃으로 그렸다. 동백꽃이 모가지째 뚝뚝 떨어지는 그 참혹함은 이후 4·3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참담함의 상징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동백꽃을 4·3을 기념하는 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동백꽃은 그렇게 제주 사람들에게 다가왔고 제주 사람들 곁에서 피고 있었다.

   
▲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공식 추모곡이 된 '잠들지 않는 남도'가 불려졌다.

동백꽃 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100만장 앨범 판매를 달성한 이 노래는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금지곡이 됐다. 동백이 빨갛게 멍들었다는 가사가 반공사상을 해친다는 것이었다. 그 노래 가사는 이렇다. “헤일수 없이 수 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2013년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사람은 박정희의 딸 박근혜였다. 박근혜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4·3에 호의를 갖지 않았다. 추념식 공식 지정곡으로 정해진 ‘잠들지 않는 남도’와 ‘애기동백꽃의 노래’는 끝내 부를 수 없었다. ‘레드 콤플렉스’에 오염된 정권은 제주도민이 선택한 노래마저 검열했던 것이다. 

1988년 가수 안치환이 작곡해 부른 ‘잠들지 않는 남도’는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라는 후렴이 반복된다. ‘반역’과 ‘통곡’이란 불온한 단어가 끝없이 아프게 반복될 것만 같은 제주의 시간을 ”잠들지 않는 남도“라고 표현했다. 안치환의 이 노래는 그간 꾸준히 4·3 위령제 행사장에서 불려졌음에도 공식적인 자리를 얻지 못했다. 자신의 정권에 반한다는 이유로 대중가요를 금지곡으로 만든 대통령이 있었고 그는 자신의 딸에게 똑같은 이념을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굴절의 역사를 오로지 반공의 시각으로만 보는 편향된 생각을 말이다.

4·3에 대한 세인들의 역사적 인식 부족을 탓하면서도 제주 사람들은 이에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아니, 모두들 조금은 지쳐 있는 듯했다. 4·3을 바라보는 외부인들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관심이 없었다. 광주의 5·18항쟁이 영화로, 소설로, 축제로 거듭나는 동안 제주의 4·3은 그저 작은 동네에서 벌어진 사소한 사건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70여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기념곡 하나 제대로 부를 수 없었던 제주도민에게 위정자들의 방관적 태도는 차라리 경멸에 가까웠다.

그리고 마침내 2018년 70주년을 맞는 4·3추념식에서 ‘잠들지 않는 남도’가 불려졌다. 2018년 4·3 추념식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차를 돌려 행사장을 나오는 데만 2시간이 소요될 정도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적인 관심도 컸다. 무엇보다 제주도민, 예술가, 행정가, 언론인 등이 모두 노력한 결과였다. 이에 힘입어 제주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관심도 한 몫 했다.

제주도민은 이제 노래 하나를 갖게 되었다. 동백꽃처럼 붉은 노래, 피 흘리는 유채꽃처럼 처참하게 아름다운 노래.  4·3 70주년 행사 개막식 현장에서 소프라노 강혜명은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불렀다. 그녀의 좌측으로는 4·3 희생자들의 무덤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들판이 보였다. 그 들판에는 70년이나 된 슬픔이 놓여 있었다. 4·3유족들이었다. 행사장을 떠나 이미 무덤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의식과 행사가 무슨 소용이랴. 집단학살의 비인간적 만행을 어떤 말로 이해할 수 있으랴. 슬픔에 어떤 위로가 적당하랴.

   
▲ 4.3추모식 전야제가 열려던 2일 제주문예회관에 모인 사람들이 LED동백꽃을 흔들며 노래하고 있다.

4·3 70주년 전야제가 있던 4월 2일 제주문예회관에 모인 사람들은 LED불빛 반짝이는 동백꽃을 손에 들고 추모곡을 불렀다. 동백꽃은 졌지만 사람들의 손엔 영원히 지지 않는 동백이 들려 있었다. 사람들 가슴에서도 동백은 붉은 배지로 다시 피고 있었다.

   
▲ 최필제 / 뉴스콘텐츠국 부장

그렇게 4·3이 우리들 곁에 또 왔다. 아직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4·3 문제의 완전하고도 지속적인 해결을 강조했다. 4·3특별법 개정안에는 전에 없던 새로운 안들이 올라왔다.

다시는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 누군가에게서 잊혀져가는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한다.

행사장엔 사뭇 장엄하고 비애감이 돌았다. 10시 정각의 묵념에서 누군가는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희망의 말들은 끝까지 남아 사람들 속에 와 있었다. 4월이었고 동백은 지고 있었다. 아니, 사람들의 노래 속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배지를 달고 묵념하는 사람들 심장의 붉은 색이 되어 피어나고 있었다. [제이누리=최필제 뉴스콘텐츠국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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