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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불면 백성이요, 주리면 도둑이 될 따름이다"[48회] 백성을 위해 흘릴 눈물을 준비한 사람, 남구명 판관이 본 제주풍경
문영택  |  yeongtaek241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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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9  0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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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서련 판관 사후 2백 년 즈음에 김녕사굴에 관하여 적은 글로, 1712년(숙종 38년) 제주판관으로 부임한 남구명의 글이다.

5월에 성산에서 돌아오다 처음으로 김녕굴에 들렸다. 굴은 평지에 있는데, 입을 크게 벌린 모양이 마치 도자기 가마 아궁이 같았다. 여럿이 횃불을 들고 속으로 들어가니, 높이가 수십 길이 되고, 크기는 누각을 들일 만 하였다. 열 걸음쯤 가니 서쪽으로 난 굴이 문처럼 좁았는데, 떨려서 더 나갈 수 없었다. 마을 사람에게 물으니, ‘그 안으로 들어가면 넓고 크기가 바깥 굴의 배가 되고, 그 깊이는 땅 밑바닥 까지 뚫렸는지 종일을 걸어도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북쪽으로 뚫린 굴은 바로 바다에 닿는데 조개껍질과 자라와 물고기의 뼈가 높다랗게 쌓여 무더기를 이루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주목되는 것은 굴 안에 쌓인 물고기 뼈와 조개껍질 등이다. 바다도 아닌 동굴 안에 물고기 뼈와 조개껍질이 있음이 의아하다. 어쩌면 이곳은 수만 년 전 빙하기에는 바다였을 것이다.

바다에 잠겼던 이 지역이 간빙기가 되어 육지가 되었을 거라는 과학적 추측을 해본다. 동굴에 있는 어패류와 물고기의 흔적이 이를 말해준다 하겠다.

   
▲ 당처물굴

김녕사굴과 만장굴 그리고 근처에서 발견된 당처물굴(1995년)과 용천굴(2005년)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 및 세계자연 경관이다. 이 지역의 지표에 쌓인 조개모래의 석회성분에 수만 년 수억 년 동안 내린 빗물이 굴안으로 스며들어 오늘의 용천굴과 당처물굴 같은 신비로운 지하궁전의 모습을 형성하였을 것이다. 용천굴과 당처물굴에는 종유석과 석순 그리고 석주 등 환상적인 태곳적 신비가 고스란히 간직되고 있다.

우암(寓庵) 남구명은 1712년 10월에서 1715년 5월 사이 제주판관으로 2년 7개월 재임하였다. 남구명 판관은 제주도의 산천과 형승, 풍속과 신앙, 기후와 풍토, 육지와 제주의 교통로인 육로, 해로, 특히 흉년을 겪었던 일 등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그의 서책을 우암의 4대손이 1860년에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는데, 그 시문집이 ‘우암선생문집’이다.

남구명은 1712(숙종 38년)에 제주판관에 제수되었다. 9월 16일에 강진에 도착하여 날씨를 기다리다 배를 타고 10월 4일 제주관아에 도착하였으니, 당시 뱃길이 얼마나 험난하였는지 상상이 된다.

1713년과 그 이듬해 제주에는 심한 흉년이 들고 제주 백성의 요구에 의하여 1년을 더 판관으로 재직하였다. 남구명은 제주의 풍속뿐만 아니라 삼신산의 산세와 한라산의 불로초에 대한 생각도 곁들리고 있다. 다음은 우암선생문집 중 남정일기(南征日記)에서 발췌하였다. 불로초변(不死草辯)에 적힌 그의 생각이 남다르다.

이곳 사람들은 항상 불로초를 먹기 때문에 지금도 여든이 넘는 이가 사백이 넘고, 또 백 살을 넘긴 사람도 열 명이 넘습니다.’ 하고 어느 사람이 말하자,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땅은 토질이 척박하니 백성은 가난하여 벼도 없고 삼도 모시도 없어, 부유한 자가 조팝과 콩죽을 먹고 빈곤한 자는 산열매와 해조류를 먹을 뿐이다. 부유한 자는 개가죽 옷을 입고 돼지가죽 모자를 쓰며 빈곤한 자에게는 멍석과 도롱이가 있을 뿐이다. 그들이 사는 곳은 흙방이요 자는 곳은 돌침상인데, 태어나서부터 입으로 맛난 음식을 먹어보지 못하고 몸에 얇은 옷조차 걸쳐 보지 못했다. 추위를 이기고 더위를 견디며 배를 채우고 주림을 견디며 일하고 쉬는 것이 마치 깊은 산 속의 도사나 산꼭대기의 스님이 쌀알을 버리고 솔잎을 씹어서 문득 바짝 마른 선인이 되는 것과 같다. 이 지방 사람들이 수명이 긴 것은 먹고 사는 것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의 글에는 당시의 제주 풍속을 상세히 소개하면서도 목민관으로서의 갈등과 고뇌를 엿보게 한다. 현대인이 읽어도 무언가를 깨닫게 하는 힘이 있다. 그중 도적에 관한 글이 그러하다.

   
▲ 문영택 전 교육국장

이 섬에는 평소에 도적이 없어 밤에도 대문을 잠그지 않고 나그네는 들에서도 잠을 잤으니 그 습속이 아름다웠다. 큰 기근이 든 이후로는 인심이 크게 변하여 도둑이 나타나니 소와 말, 백성들 집의 곡식과 옷가지들을 닥치는 대로 훔쳐서 풍류를 잃는 것이 극에 달했다. 잡아다가 문초하면 어떤 이는 ‘먹지 못한 지 열흘이 넘습니다.’라고 했고, 어떤 이는 ‘죽을 지경에 당하였으니 차라리 한 번 배불리 먹어보고 죽으렵니다.’라고 했다. 그 죄는 비록 다스리지 않을 수 없으나, 그 정상은 또한 가여움이 심하지 않겠는가. 내가 보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바람은 알맞아 곡식을 실은 배가 닿으면 동쪽이든 서쪽이든 도적에 대한 보고가 끊겨 듣지 못하고 혹 물길이 순탄치 못하여 북에서 오던 배가 막히면 각 마을에서 도둑을 잡았다고 알려 오는 것이 하루에 대여섯에 이르렀다. 내가 이로서 알았도다. 배가 불면 백성이요, 주리면 도둑이 될 따름이다. 하루 먹이를 얻을 수 있으면 하루 도둑질을 하지 않고, 열흘 먹이를 얻으면 열흘 도둑질을 하지 않을 따름이다. 누구라서 위로 부모 모시고 아래로 처자 거느리고 사는 몸이 자신을 도둑의 과죄(科罪)에 버려서 끝내는 뜻하지 않은 죽음에 빠지고자 하겠는가. 속담에 이르길, 삼일 굶어서 도둑질 하지 않은 이가 드물다고 했으니, 이 무리들에게 책망할 수 있겠는가. 불행히도 멀고 조약한 변방 땅에서 사람살이에 힘겹고 어려운 경우를 만났으니, 마음으로는 성정과 형편이 불쌍한 것을 알겠으나 일체를 법에 의하여 다스려야 하니, 아무개는 곤장을 맞아 죽고, 아무개는 감옥서 죽고 아무개는 몰수되어 관의 노비가 되고 아무개는 신분이 낮아져 진영의 이속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어찌 이런 일을 즐겨 하겠는가. 매양 한 사람을 벌하면 머리와 수염이 희어진다. 그의 죄를 용서하여 줄 수만은 없으니, 특히 그들의 곤궁한 것은 안타깝고 그들의 정황은 가엾어서 탄식하여 흘리는 눈물을 스스로 그칠 수가 없었다.

당시 제주섬의 풍경뿐만 아니라 제주선인들의 삶에 대한 세세한 부분의 기록에서 목민관으로서의 그의 면모를 엿보게 한다. 백성을 위해 흘릴 눈물을 준비한 사람은 백성을 위해 일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기에 여기에 소개하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문영택은?
= 4.3 유족인 부모 슬하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구좌중앙초·제주제일중·제주제일고·공주사범대·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프랑스어교육 전공)을 졸업했다. 고산상고(현 한국뷰티고), 제주일고, 제주중앙여고, 서귀포여고, 서귀포고, 애월고 등 교사를 역임했다. 제주도교육청, 탐라교육원, 제주시교육청 파견교사, 교육연구사, 장학사, 교육연구관, 장학관, 중문고 교감, 한림공고 교장, 우도초·중 교장,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 등을 지냈다. '한수풀역사순례길' 개장을 선도 했고, 순례길 안내서를 발간·보급했다. 1997년 자유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수필집 《무화과 모정》, 《탐라로 떠나는 역사문화기행》을 펴냈다. 2016년 '제주 정체성 교육에 앞장 서는 섬마을 교장선생님' 공적으로 스승의 날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지난 2월 40여년 몸담았던 교직생활을 떠나 향토해설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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