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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해치바당은 제주해녀가 보여주는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

 

전경련 하계포럼의 특강 이후 몇 몇 단체에서 제주해녀를 주제로 한 강의를 요청해 왔다. 그중에서도 특별하게 인상적이었던 자리는 같은 해 10월 29일, 한국 콜마가 주최한 서울지역 협력사들의 경영조찬 모임이었다. ‘제주해녀의 기업, 그 영원한 바다에서의 삶과 꿈’이란 주제로 소개된 해녀들의 기업가정신은 화장품 연구개발 전문 업체들이어서 그런지 유난히 경청의 열기가 뜨겁게 피어올랐다.

 

특히 이들이 상기된 얼굴로 이목을 집중해서 열중하는 부분은 제주해녀들이 학교바당을 정해놓고 여기서 채취한 미역으로 마을 학교의 시설 보수, 집기 교체, 장학금 지급 등을 도맡아 온 사회적 책임 활동이었다. 마을에 따라서는 미역으로 마을 회관을 짓기도 하고, 노인회나 청년회, 부녀회의 애로사항을 지원하기도 한다는 말에 참으로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사실 서울사람들 눈에는 해녀들의 미역해치 장면이 매우 이색적인 마을 이벤트로 비쳐질 것이었다. 해치 날은 마치 마을의 축제나 운동회처럼 집집마다 해녀들뿐 아니라 미역짐을 받아주고 운반해 줄 남편과 아이들까지 덩달아 바다로 나간다.

 

해녀들이 소중이를 입고 태왁을 어깨에 메고 호미를 들고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는 신호를 보내면 어촌계장이 호루라기를 “삐이익∼” 하고 분다. 그러면 마치 마라톤을 떠나는 참가자들처럼 해녀들은 일제히 우르르 바닷물로 뛰어 들어간다. 미역은 비교적 수심이 얕은 곳에 마치 수숫대들이 누워있듯이 바위에 붙어서 자라므로 호미로 베어서 망사리에 집어넣으면 그만이다. 해녀들이 가득 채워진 미역 망사리를 끌고 바닷가로 나오면 대기하던 남편들이 받아서 해녀의 등에다 올려주거나 같이 들고서 마른 자갈밭까지 운반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는 장정 둘이서 낑낑 거리며 미역 망사리를 해녀의 등에 올려놓는데, 정작 그 무거운 등짐을 지는 해녀의 얼굴은 만족스런 웃음을 넉넉히 담고 있다. ‘메역짐광 애기짐은 베여도 안 내분다(미역짐과 아기짐은 무거워도 안 버린다)’는 속담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미역은 무거울수록 돈도 더 많아지는 법이니 아무리 힘들어도 찡그릴 수는 없지 않은가.

 

아가리가 미어터질 것처럼 망사리를 힘껏 떠받치고 있는 미역들은 기다리던 아이들에 의해서 마른 자갈 위로 하나 둘 펼쳐진다. 이 미역을 말려서 아이들은 학교에 입고 갈 교복도 사고, 책도 사고, 등록금도 해결한다. 미역만큼 돈이 되는 물건이 없던 시절이라, 아이들도 미역은 소중하게 다루었다. 당시는 국내에서 소비되는 미역의 절반가량이 제주에서 공급될 정도로 시장에서는 제주산 미역이 인기였다.

 

청정해역의 초록빛이 감도는 제주미역은 물에 불리면 육지미역보다 더 두툼하고 알긴산 성분이 많아서 미끄덩거리는 특성이 있다. 이 알긴산 성분이 실은 우리 몸에 축적된 중금속이나 미세먼지를 흡착해서 배출시키는 효능이 있어 산모의 미역국으로는 최고 인기였단다.

 

어쨌든 이렇게 힘들게 채취한 미역을 학교나 마을에 쾌척하는 일은 해녀의 지위나 위상을 당당하게 높이는 역할을 하였다. 마을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회의에는 반드시 해녀회장을 참석시켜 의견을 들었으니 말이다. 마을의 어른들에게 부여되는 존경과 존중의 반열에 여성의 자리가 마련된 바는 중산간 마을에는 거의 없는 일이었다.

 

사실 해안가 마을에서는 바당밭이 마을 사람들에게 공짜로 주어지는 일터이다. 대부분이 한 두 개의 돌렝이(작은 밭)로 근근이 먹고 사는 입장이니 드넓은 바당밭이 얼마나 큰 은혜요 기회이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을 할 수 있는 여성은 보통 열 사람 중 한 명 꼴에 불과하다. 물질도 타고 나는 법이라서 아무리 하고 싶어도 체질이 맞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게 해녀다.

 

그러므로 해녀들의 공익적인 기부행위는 동네 사람들이 볼 때에도 매우 합리적인 동시에 모범적인 선행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마을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소통과 화합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게 리더십이라면 여성에게도 당연히 리더의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게 마땅하리라.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전달된 제주해녀의 사회적 책임과 파급효과는 기업인들에게도 감동적인 리더십의 사례로 각인되는 분위기였다. 그 날 아침 조찬 분위기가 평소보다 더 뜨겁고 화목했다는 주최 측의 강평처럼 원탁 테이블에 둘러앉은 기업인들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보였다.

 

혹시 제주의 해치바당이 서울의 기업인들에게 경영의 목적과 사명을 새롭게 일깨워주었다면, 해녀들이야말로 행동하는 기업가요 살아있는 지도자임에 분명하다. 요즘은 해녀들도 일인 기업으로 인정되어 어업경영체로 등록되는 시대이지만, 몇 십 년 전에 이미 경영자의 역할과 사명을 실천했던 해녀들의 기업가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자랑스럽다.

 

제주의 삼무(도둑·거지·대문)를 가능케 한 저변에는 삼다(돌·바람·여자)를 대표하는 해녀의 역할이 다분하였으리라. 요즘 들어 경영교육의 기본 커리큘럼으로 강조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바야흐로 제주해녀학교에서 다시 가르쳐지고 전수되기를 기대한다. 제주해녀의 전통적인 삶과 척박한 환경이 기업가정신에 의해 새롭게 조명되고 체계적으로 정리되기를 바란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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