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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선면 주민들의 학살 막은 '증언의 주인공' ... 김익렬 장군과 '의인' 반열

제주4·3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절 주민들의 희생을 막아 ‘4·3 의인(義人)’으로 불린 강계봉 옹이 타계해앴다. 30일 낮 12시 10분께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자택. 향년 95세다.

 

고(故) 강계봉 옹은 4·3당시 군·경토벌대가 중산간 마을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벌일 무렵 당시 표선국민학교(현 표선초등학교)에 집단 수용된 표선 가시리 주민들을 살렸다는 증언의 주인공이다.

 

그는 1948년 11월 토벌대가 표선국민학교에 집단수용중인 가시리 주민들을 집단학살하는 등 무자비한 참상이 벌어지던 와중에 사실상 생사여탈권을 쥔 경찰관(순경) 신분이었지만 다수의 양민들을 살려내 표선면 주민들 사이에서 ‘4·3 마지막 의인’이란 말을 들었다.

 

현재 제주4·3평화기념관엔 당시 9연대장이었던 김익렬 중령(향후 장성으로 예편)과 문형순 경찰서장, 김성홍 몰라구장, 서청단원 고희준씨, 강계봉 순경, 장성순 경사와 외도지서 '방(方)'경사 등 7명이 무고한 양민학살을 막은 이로 지목, ‘의로운 사람들(righteous people)’ 전시관에서 그들의 이름을 거명해 알리고 있다.

 

남원읍 위미리 출신인 그는 소년기 일본으로 거너갔다가 해방 직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4·3이 발발된 직후인 1948년 6월 경찰에 투신했다.

 

1950년대 후반 구좌파출소장을 끝으로 경찰관 신분을 마감, 고향 위미에서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냈다. 위미리장·노인회장을 지냈다.

 

슬하에 4남3녀를 두고 있다. 발인은 오는 2일 오전 7시 서귀포의료원. 장지는 위미리 가족묘지다. 빈소는 위미의례회관에 꾸려졌다. 유족대표 연락처(강성덕 씨) 010-2811-3847 [제이누리=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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