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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가 침몰한다 … 도일(渡日)로 노동난 사태[제22화] 1919년 한신공업지대 모집으로 시작 … 제주경제에 파장
진관훈 박사  |  adel@jejut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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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4  11: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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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계시계근정(堺市戒筋町) 안화뎡 방적공장(岸和町紡績工場)에 잇는 조선 제주도(濟州島) 출생 여자직공 륙십명은 이십륙일 아츰부터 갑자기 그 공장에 출근치 아니하고 긔숙사에서 울고 잇슴으로 공장칙에서는 그 까닭을 몰라 무슨 일로 공장에 출근치 아니하느냐고 물엇다는 바 이에 대하야 그들은『우리 고향인 제주도가 갑작히 바다 가운데 함몰되엿슴으로 이와 가치 울고 잇다』고 대답을 하엿다는데 이 엉터리 업는 풍설은 최근 그 회사를 그만두고 자긔 고향으로 도라간 제주도 출신 박유인(朴有仁)이가 지어낸듯하다 하야 소관 안회뎐서에서는 범인을 수색중이라더라(동아일보, 1926년 1월 29일).

제주도민의 본격적 도일(渡日)이 시작된 것은 1919년 한신(阪神)공업지대로의 모집에 응하며 시작되었다. 1922년에 대판 직항로의 개설로 본격화되어 1924년부터 도항자가 매년 전년 대비 3배 증가했다. 1922년 남자 3,198명, 여자 305명 총 3,503명이 도일하였고 1925년 1596명, 1927년 19,204명, 1933년 29,208명, 급기야 1939년에는 5만명으로 제주도 인구의 4분의 1 즉, 1가구에 1명꼴로 도일했다.

제주도민들의 도일은 보다 나은 경제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취업에 대한 욕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친족 및 계원들이 출가 귀환자로 부터 도일자금을 알선 받거나, 조합이나 계에서 출가 희망자에 대하여 도항 여비의 융통, 취직, 숙박소 소개 등의 알선을 해주었기 때문에 일본으로의 출가가 용이했다.

제주도민의 일본에서의 직업 구성을 살펴보면, 농업이 0.5%(244명), 어업이 1.3%(687명), 상업치 6%이며 공업치 66%(공장노동자)로 절대 우위를 차지했다. 남자 직공 중에는 고무공이 4,208명, 철공이 3,794명, 유리공이 1,877명, 법랑공(琺瑯工)이 1,671명 순이다. 여자는 방적공이 5,375명(최초 모집이 방적회사의 모집이었음), 고무공이 1,756명, 미싱공이 재봉공 1,183명, 유리공이 1,050명, 성냥공이 945명 순이다. 방적공이 많은 것은 본도인의 출가가 방적회사 방적공 모집에 그 시초를 두었기 때문이다.

출가 노동자 중 농업 노동자가 적은 것은 제주도가 농업지역이어서 출가시기와 농번기가 일치하며, 농업 노동보수가 다른 직종임금에 비해 적었기 때문이다. 물론 초기의 244명의 농업 노동자는 양농(良農)이 되고자 하는 집약 영농 견습자였다.

도일 제주도민들이 우편국을 통한 송금액이 1926년 774,784엔이며, 1928년에는 1,287,140엔으로, 1인당 평균 40엔이다. 1932년에는 685,155엔, 1933년 857,000엔이었다. 이외에 귀향시 직접 가지고 온 액수까지 합치면 훨씬 많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제주도 경제에 큰 활력을 가져다 주었다.

농촌 노동자 초기 출가는 대부분 영농한기를 이용한 유휴 노동의 성격을 띠었다. 즉 2월에 급증하고, 3월에 최고를 기록하다가 점차 체감한다. 6, 7월이 극소의 계절이며 8, 9월에 재차 증가한다. 도항자의 최다월이 귀환자의 최소월이다. 육도 대두, 고구마, 목화 등의 파종과 연속적으로 계속되는 본도 주작물인 대맥, 소맥의 수확과 정곡, 여름철의 제초, 10~11월의 여름작물 수확, 겨울 자굴의 파종, 5월말에서 11월말까지는 그 사이 얼마간의 농한 불연속이 있으나 대개 농번기가 계속 되고, 12월부터 4월까지 농한기이다.

노동 일수와 농한기일은 농번기일의 5분의 1에서 10분의 1이고 농한기월에는 2분의 1에서 3분의 1 정도의 노동 인원이 경영한다. 다각적 집약적 노동에 비해서 노동 잉여가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잉여 노동의 마무리 기간이 길어서 이것이 출가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제주도 위치의 특성상 태풍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고, 그 진로를 맞아 주작물이 재해를 입어 흉작이 될 때에는 다수가 일본으로 출가하여 식량을 확보한다.

예를 들면 1934년 9월 출가지의 격증은 동년 8월7일 제주도 지방을 휩쓴 풍수해의 영향이다. 그 해는 비상시 군수 공업의 발흥에 의한 출가자 수입지(收入地)의 호경기 때문에 경제적 번영에 따른 영향과 인플레이션에 의한 수출품 산업의 활황, 노동력의 수용 공급 및 수출품 산업의 경제적 풍흉(豊凶)과 일치한다.

제주도민의 도일이 제주도 농촌사회와 제주도 경제 전반에 미친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즉 한 가구에 한명 꼴로 도일하면서 생산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청장년 남자노동력의 품귀현상을 가져오고, 임금상승, 노동생산성 정체, 노동력 악화 등과 노동 구조적 왜곡현상의 발생이라는 농업노동력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도일 제주도민으로부터의 현금 송금 혹은 귀향시 가지고 오는 현금으로 도내 현금 보유량 증가와 이로 인한 소비 행태의 변화이다.

제주도민의 도일현상은 규모의 문제도 문제이거니와 이보다 인적 구성이 노동력 공급 악화에 미친 영향에서 그 심각성을 찾을 수 있다. 도일 제주도민의 구성을 보면 생산력이 가장 왕성한 20~50세 사이 남자가 가장 많고, 지주 및 자작농의 도일도 많아 전도 1천1백 41호 지주가운데 4백 51호, 자작농은 전체의 55%인 9백99호가 도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초기에는 주로 휴한기에 도일하여 단기간 노동하다가 다시 귀향하여 농업에 종사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으나, 점차 휴한기와 상관없이 일본 경제상황에 따라 도일하였고 설령 귀향하였다 하더라도 다음 도일을 위한 휴식을 핑계로 노동을 회피하는 사례가 속출하는 등 사회문제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 진관훈 박사
또한 당시 농가 1호당 1정4단보를 1.5~2명, 그것도 여자, 노인층이 생산을 담당하는 실정이고 보면, 이로 인해서 경작지가 황폐화되고 생산력 증대에 악영향을 미쳤다. 노동력 악화의 문제가 농업 생산력 증가에 악영향을 미치는 현실에서 농민들은 노동의 강도가 약하고 한정된 면적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상품 작물로 전환하기가 용이하였고 기존의 작물에 있어서도 농업 기술의 개선장애를 극복할 만한 신품종으로의 대체 등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였다.

한편 도일 노동자의 현금 송금으로 도내 소비를 포함한 경제활동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1920년대 중반 제주도 농가의 가계 구조는 식민지 시장 경제로의 편입 결과 나타난 현상 즉 생필품의 수입 급증과 맥류, 백미, 현미, 백미, 만주조, 쇄미(碎米) 등 곡류이입의 증가 등으로 현금 수요가 증가하였고 도일 제주도민의 증가로 노동력감소, 이로 인한 임금 상승 및 농업 생산이 감소하면서 소득이 줄어드는 등의 문제가 생겨났다. 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도일 제주도민의 송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일 제주도민의 송금은 단순히 이 문제만을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활 전반에 변화를 가져오는 데, 대표적인 변화로 소비, 특히 쌀소비의 증가를 들 수 있다.

이외에도 제주도민의 도일로 인한 영향은 간접적이나마 경제생활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선진 농법, 우량 품종, 선진 근로 방식 등을 경험하여 이들이 귀향하여 농사에 재투입되었을 때 농업경영의 기본적 마인드가 개방화, 선진화되어 제주도 농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던 사례도 있다.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제주대 사범대를 나왔으나 교단에 서지 않고 동국대에서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2011) 학위를 받았다. 제주도 경제특보에 이어 지금은 지역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전담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등이 있으며『문화콘텐츠기술과 제주관광산업의 융복합화연구』(2010),『제주형 첨단제조업 발굴 및 산업별 육성전략연구』(2013),『제주자원기반 융복합산업화 기획연구』(2011) 등 보고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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