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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의 날씨이야기(17) 아프리카의 뿔에 보냈던 지구의 미소

 

 

기원전 수천 년경 오늘날 오만(Oman)이 위치한 지역에 ‘우바르(Wubar)’라 불리는 고대 도시가 있었다. 우바르는 <아라비안나이트>와 <코란>에도 나오는 환상의 도시로 유향 교역으로 번성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우바르는 ‘신에게 멸망당한 도시’로 전해져 내려온다. 주민들의 사치와 타락 때문에 신이 이곳을 파괴하고 모래로 덮어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훗날 우주탐사로 우바르 유적이 발굴된 다음 왜 사람들이 우바르를 저주받은 도시라 부르게 됐는지 밝혀졌다. 도시 밑에 있던 석회암 동굴이 무너지면서 지반 침하로 인해 순식간에 땅이 꺼지고 도시가 모래 속에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유향(乳香) 수출로 번영을 누리던 도시가 하루 아침에 모래 속으로 사라져버린 모습은 당시 사람들에겐 분노한 신의 천벌을 받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바르는 언제쯤 땅 밑으로 가라앉았을까? 지금으로부터 5500년 전에 아라비아 반도는 물기가 많은 대초원이었다. 현재의 아라비아 사막도 예전에는 녹음이 우거진 곳이었다. 산은 아름다운 나무로 뒤덮였으며 물고기나 동물들도 많았다. 그런데 기원전 2000년 무렵 날씨가 변하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서 풀 대신에 관목이나 모래가 들어섰다. 삼림도 모래 바람이 불어대는 황야로 변했다. 지금의 아라비아 사막과 같이 변한 것이다. 기후가 바뀌었어도 우바르 문명은 살아남았다. 바로 이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유향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기후가 바뀌었다. 기원후 1세기부터 소빙하기의 영향으로 에티오피아 남쪽 지방에 비를 내리던 몬순대(=아라비아 해에서 여름 반년에 부는 남서풍과 겨울 반년에 부는 북동풍을 가리킴)가 북상했다. 몬순대의 영향으로 날씨가 점점 더 서늘해지고 비가 더 많이 내렸다. 우바르 유적이 사라진 것은 기원후 1세기경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기후변화가 우바르 도시 문명을 무너뜨린 요인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기원후 1세기경 몬순대가 북상하면서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지하로 스며든 다량의 물은 석회암 동굴을 침식시켰다. 침식된 지하 동굴이 무너지면서 도시가 땅 밑으로 꺼져 들어갔고 도시 위를 모래가 덮으면서 우바르가 파묻혔다는 것이다.

 

기원전 종교의식과 질병치료, 화장품 등에 사용하던 유향은 금보다 더 값비싸게 거래되던 진귀한 상품으로 인기가 높았다. 유향나무는 오직 오만에서만 자라고 있었다. 오만에서 재취한 유향을 사들이기 위해 아랍의 낙타상인들이 오만으로 몰려들었다. 이후 오만의 유향이 거의 사라지면서 다른 지역에서 유향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오늘날 에티오피아 지역인 악숨(Aksum)이었다. 이곳에서 유향이 대량 생산되면서 새로운 문명이 탄생했다. 바로 ‘악숨 문명’이다. 하지만 우바르 문명이 많은 비로 붕괴했다면 악숨 문명은 대가뭄으로 멸망하고 만다.

 

우선 문명이 자리 잡기에는 척박한 지역이었음에도 악숨 왕국이 번영을 누리게 된 데는 기후의 도움이 있었다. 악숨은 적도 부근에 위치하고 있지만 해발 2000미터 이상의 고원지대로 기후가 비교적 온화했다. 주변 지역은 메말랐지만 이곳은 시원하고 비도 적당히 내렸다. 남쪽 밀림 지대에 번창하던 열대병도 이곳에는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1세기부터 8세기까지 날씨가 사람이 살기에 무척 좋은 기후로 변했다. 소빙하기의 영향으로 에티오피아 남쪽 지방에 비를 내리던 몬순대가 북상했다. 이 영향으로 날씨가 점점 더 서늘해지고 비가 더 많이 내렸다.

 

이런 상태가 몇 백 년에 걸쳐 지속되자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내면서 점차 농업을 확대했다. 6세기에 이르러 악숨 땅의 숲이 사라지면서 비에 토양의 영양 물질이 다 씻겨 내려갔다. 750년경 온난기가 도래하면서 몬순대는 남쪽으로 다시 내려갔고 예전처럼 일 년에 석 달 정도 비가 내리는 기후로 되돌아갔다. 침식되고 영양분이 씻겨 나간 토양에 강수량까지 줄자 농업 생산량은 곤두박질쳤다.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면서 제국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많이 내리는 비 때문에 부흥했던 제국은 너무 적게 내리는 비 때문에 멸망의 길로 떨어진 것이다. 중앙집권적 권력은 붕괴됐고 악숨은 버려졌다.

 

한편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문명 가운데 세계무대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대제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마지막 문명이 바로 악숨 왕국이었다. 자신들의 정통성을 자랑하기 위해 에티오피아 왕조는 시바 여왕과 솔로몬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자기들이 악숨 최고의 왕 메넬리크의 후손이라고 자랑한다. 허나, 시바 여왕의 설화를 차용했던 에티오피아의 ‘솔로몬 왕조’도 1974년에 끝났다. 솔로몬에서부터 이어져 온 111번째 황제인 하일레 셀라시에가 쿠테타로 권좌에서 물러난 것이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시바 여왕이 가져왔다는 언약궤가 악숨 어딘가에서 발견될 것이라는 전설을 믿고 있다. 과거의 영광, 지구의 기후가 아프리카의 뿔에 환한 미소를 보냈던 그 시절로 이어지는 마지막 끈 말이다. <온케이웨더>
 

반기성은?

 

=충북 충주출생.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공군 기상장교로 입대, 30년간 기상예보장교 생활을 했다. 군기상부대인 공군73기상전대장을 역임하고 공군 예비역대령으로 전역했다. ‘야전 기상의 전설’로 불릴 정도로 기상예보에 탁월한 독보적 존재였다.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군에서 전역 후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위원을 맡아 연세대 대기과학과에서 항공기상학, 대기분석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기상종합솔루션회사인 케이웨더에서 예보센터장, 기상사업본부장, 기후산업연구소장 등도 맡아 일하고 있다. 국방부 기후연구위원, 기상청 정책자문위원과 삼성경제연구소, 조선일보, 국방일보, 스포츠서울 및 제이누리의 날씨 전문위원이다. 기상예보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표창,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날씨를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외 1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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