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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본격적인 인턴실습 … 살아있는 지식을 가르침 받는 시간

 

 

그러나 멘토는 내게 뇌선을 권하지 않았다. “니랑 뇌선 먹으멍 물질호지 말라. 이녁만씩 다 턱이 있저(각자의 몫, 역할이 있다)”라면서.

 

본격적인 인턴실습은 주로 보목 포구 내에 있는 어촌계의 소라양식장에서 이뤄졌다. 양식장에는 몇 년째 방류되어 채취가 금지된 소라들이 알차게 자라고 있었다. 파도가 높지 않을 뿐 아니라 만조 시에도 수심이 3∼4미터에 불과해 물질 실습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드디어 태왁을 두둥실 띄워놓고 선생님이 가리키는 바닷속을 향해 힘차게 잠수해 들어갔다. 소라들이 자라기 좋은 바위들 사이로 해초들이 적당하게 우거져 있었다. 소라는 주로 모래보다 돌로 된 곳에 서식한다. 감태와 같은 먹잇감이 붙어 있으면 금상첨화다.

 

소라가 붙어사는 바위틈과 구멍 속을 이리저리 뒤져서 아이들 주먹만 한 소라를 두어 개 찾아냈다. 껍질에 뾰족뾰족하게 살이 돋아 있는 쌀구제기다. 식감이 부드럽고 맛이 있어서 횟집이나 해녀식당에서 주로 구워 파는 것들이다. 첫 번째 물질치고는 머정이 좋은 편이다 싶어, 선생님 눈앞에다 자랑스레 흔들었다.

 

그런데 웬걸, 선생님이 손사래를 치면서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숨을 몰아쉬면서 들어가 보니, 세상에, 크고도 붉은 문둥구제기가 평평한 바위 위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바위와 색깔이 비슷해서 얼핏 해서는 알아보기 어려운 모양새다. 이제까지 ‘소라는 대부분 바위 틈이나 구멍 속에 비집고 들어가서 주거지를 확보하고 살아간다’고 여겼던 나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현장이었다.

 

오히려 ‘구제기는 평평한 바닥이나 바위 위에 나앉아서 팔자 좋게 놀고 있는 게 더 크고 모양도 좋다’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살아있는 지식이었다. 썰물 때는 바위틈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꼭꼭 숨어 있던 녀석들도 밀물이 되면 바위 위로 올라와서 슬금슬금 돌아다닌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에는 선생님이 가리키는 곳으로 들어가도 소라껍질이 바위색깔과 비슷해서 번번이 놓치던 내가, 수업이 끝날 즈음엔 소라와 바위를 손쉽게 구분할 수가 게 되었다. 감이었다. 소라가 느낌으로 감지되기 시작하니까, 일단 들어가면 한꺼번에 두 세 개씩, 운이 좋으면 서 너 개씩 양 손바닥이 가득하도록 녀석들을 붙잡을 수 있었다.

 

양식장이라서 소라가 많기도 하거니와 오래토록 보호를 받으면서 몸피를 키워온 녀석들이라 듬직하고 탐스러웠다. 멘토도 바위틈에 행진하듯 줄지어 있는 소라들을 가리키며, “아이쇼핑처럼 눈요기라도 실컷 해보자”며 즐거워했다.

 

이곳은 양식장이라서 이렇게 소라가 흔하게 보이는 것이고, 실제로는 물건이 별로 없기 때문에 숨비질 하고 들어가서 허탕치고 올라올 때도 많단다. ‘그렇게 많던 소라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하며, 예전에 비해 물건이 별로 없는 바다를 아쉬워했다. 망실이가 가득 차오르도록 욕심껏 소라를 잡아보았다. ‘바로 이 기분에 수 십 번, 수 백 번씩 숨비질을 하는가 보다’ 싶을 정도로, 소라는 잡아도 또 잡아봐도 변함없이 아까운 물건이었다.

 

또한 망실이를 채워가는 맛이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다. 이래서 물질은 욕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리라. 하나라도 더 잡아보려는 마음이 없고서야 어찌 똑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노동을 몇 시간씩 참아내면서 평생을 견뎌낼 것인가. 혼 푼 두 푼 모여 논 금전이 설사 부랑자(남편) 술잔에 다 들어간대도, 하나 둘씩 잡아서 망실이를 채워가는 재미에 해녀들은 수 십 번 수 백 번을 잠수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인턴십 첫날이라서 아침밥을 든든히 먹은 게 화가 되었다. 힘차게 발차기를 하면서 온 몸을 거꾸로 세워 흔들어 대는 바람에 위장에서 음식물이 역류해 나왔다. 게다가 음식의 무게가 더해진 몸이 무거워서 헉헉대니 물결에 일렁이는 짠물이 마구 입으로 쳐들어왔다.

 

해녀들의 노동요에 나오는 ‘삼시 굶엉 요 물질 해영(세끼 굶어서 이 물질 해서)’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상황을 눈치 챈 멘토가 망실이에서 삼다수를 꺼내어 마시라고 주었다. “영 호난(이러니까) 물질 날은 아침밥을 한 두 시간 전에 미리 먹어 둬야 하는 거주게”라면서. 해녀들은 보통 아침 9∼10시에 물에 들어서 오후 3∼5시까지, 각자의 기량에 따라서 6∼8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수 백 번을 숨빈다.

 

하지만 나는 물에 들어가서 1시간 쯤 지나자 목이 마르고, 속이 울렁거려서 토할 것만 같았다. ‘제법 물질을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게 부끄럽고 미안스러울 지경이었다. 물질은 연습과 실제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작업이다. 우리 어머니, 이런 고통을 참으면서 목숨 걸고 이 물질을 하였구나.

 

이토록 숨 끊어지게 발버둥을 쳐가면서 2남7여를 먹여 살리고 공부까지 시키셨구나. 정말로 물질은 칠성판을 등에 지고 명정포를 머리에 이고서 목숨을 내놓고 하는 노동이구나.

 

아, 이렇게 수 백 번씩 바다 속으로 몸을 내던지면서, 정녕 내가 이 물질을 해낼 수 있을까? 인턴십 첫 날의 3 시간은, 1시간 수업에 10분 쉬기를 반복하면서 마치 학교 교실의 수업처럼 공부와 휴식이 번갈아 가며 이어졌다.

 

멘토 선생님은 나의 표정과 몸놀림을 보아 가면서, “정옥아, 저 바위에 올라강 10분만 쉬영 허게” 라면서 물질시간을 조절했다. “아이고, 고맙수다, 선생님. 생각보다 물질이 지친 거우다 예?” 라며 바위에 몸을 기대는 내 얼굴 위로, 파도가 하하 거리면서 물보라를 날렸다. 눈망울이 붙어 있을 리 없는 파도가 어찌 상군과 인턴을 구별할 수 있으랴 만은, 물거품은 나에게만 달려들어서 귀찮게 장난질이다.

 

멘토는 휴식시간에도 좀처럼 쉬지 않고 바위 주위를 숨비면서 소라들을 정비한다. 썰물이 져서 낚시꾼들이 올라올만한 곳의 소라들을 잡아서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는 작업이다. 그러고 보니, 해녀들에게 있어서 바다는 밭임에 분명하다.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아주고, 마소의 침입을 막아내듯이 소라씨를 뿌리고, 풀케기를 하고, 낚시꾼의 손타기를 예방하는 것이다. 이렇게 키워낸 소라들이니 하나하나가 그 어찌 예쁘고 귀하지 아니하랴.

 

해녀가 잡아 올리는 소라에는 단지 돈만으로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애틋한 정성으로 스며있음을 눈으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실습이 끝난 후에는 망실이에 가득 찬 소라들을 있던 곳으로 하나씩 되돌려 보내야만 하였다. 발랑 뒤집히면 죽을 수도 있으므로 가급적 바위틈에 안전하게 부착되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귀찮고 번거롭기보다 소중한 소라들을 한 번 더 만져볼 수 있는 재미가 더 크게 느껴지니, 나도 반쯤은 해녀가 다 되었나 보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오늘 물질하는 걸 보니, 몸 움직이는 거랑 마음 쓰는 것이 열심히 하면 훌륭한 해녀가 됨직 하다!” 수업을 마치는 멘토의 강평에 넓은 바다가 가슴속으로 쏴아 하고 밀려들어왔다. 해녀의 꿈을 향해 드디어 한 걸음을 내디딘 기분, 배움의 기쁨, 진보의 확인이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 2기를 수료, 다시 시작하는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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