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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등장은 날씨 때문?반기성의 날씨이야기(16) "날씨는 역사를 바꾸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반기성 기상전문위원  |  wxbahn@kweath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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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2  09: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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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8세기 중엽, 프랑스는 유럽의 문화 중심지였다. 그러나 경제 구조는 취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중세 소빙기에 접어들면서 기후 악화로 인해 농사를 망치는 빈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농산물 생산량이 늘어난 18세기에도 프랑스는 기후가 조금만 나빠도 식량 부족에 허덕였다. 급격한 기후 변동이 나타난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수백만 농민들은 흉년이 겹치면서 굶어죽기 직전의 상태에서 근근이 목숨을 연명하는 형편이었다.

이런 국가적인 어려움에 처한 프랑스를 날씨는 도와주지 않았다. 이 당시 유럽은 추위와 함께 습한 날씨가 지배하고 있었다. 1764∼1777년에는 전 유럽에서 추위가 맹위를 떨쳤다. 이 당시 1775년 프랑스의 기상 관측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예측할 수 없는 한파나 폭설, 홍수 등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나고 있었다.

날씨의 변동이 최고에 달했던 1770년에는 겨울이 길었고, 특히 눈이 많이 내렸다. 여름 역시 알프스 산맥 상부 초지 위의 눈을 녹이기에는 너무 짧고 서늘했다. 이런 이유로 알프스의 빙하가 발달하면서 저지대로 밀고 내려왔고, 이로 인하여 식량 생산은 감소했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밀, 감자의 수확량 감소와 함께 초지의 부족으로 우유 생산마저 줄어들면서 기근이 발생했다.

1788년 봄이 되자 다시 강력하게 발달한 고기압의 영향으로 가뭄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런 이상적인 기압배치는 유럽지역에 잦은 번개, 돌풍, 우박현상을 가져왔다. 지속되는 추위, 가뭄으로 근근이 지탱하고 있던 프랑스 농민에게 이 해에 발생한 대규모 우박은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타였다.

가뭄과 우박으로 이 해의 곡물 수확량은 그 전 15년 평균치에 20%나 모자랐다. 그 전 15년간도 기상이변으로 곡물 생산량이 모자랐는데 거기에 5분의 1이상이나 더 줄어들었으니 엄청난 흉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식량 부족으로 고통 받던 프랑스 농민들은 겨울이 되자 추위로 인한 고통을 더하게 된다. 1788년 겨울은 엄청나게 추웠다. 겨울 기간 동안 혹독한 추위와 함께 폭설이 내리면서 길이 막히고 큰 강들이 얼어붙어 정상적인 곡물 이동이나 상거래가 불가능해졌다.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게 된 농민들은 1788년 12월과 1789년 3월에 착취하는 영주의 저택을 습격해 불을 지르고 농지 경작문서를 불사르며, 곡물창고와 저장고를 부수는 등 국가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3월에 브르타뉴에서 빵 폭동이 발생했다. 이어 플랑드르로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 폭동이 번져나갔다. 파리시민들은 무장하는 과정에서 총포업자들과 갑옷 제조업자들의 점포를 탈취했고, 화약이 필요한 시민군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 대혁명의 깃발이 올랐다.

바스티유 전투가 벌어진 7월 14일 아침 파리는 낮게 흐린 가운데 비가 오고 있었고, 온도는 10.5℃였다. 한여름이라고는 할 수 없는 서늘하고 습기 차고 음울한 날씨였다. 생물기상학에서는 이런 날씨일 때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소극적인 방어에만 급급하던 수비군은 적극적인 시민군과의 전투에서 애초부터 싸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바스티유 요새는 단 하루 만에 함락되고 만다. 바로 이날이 프랑스의 가장 큰 국경일인 ‘프랑스 혁명 기념일’이다.

프랑스 대혁명을 가져온 것이 날씨라면 대혁명 이후 프랑스가 세계 역사의 전면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나폴레옹 때문이었다.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고 하는데, 나폴레옹도 프랑스가 가장 위태한 때 역사 앞에 등장했다. 법률가였던 아버지의 덕으로 15세에 사관학교에 입학한 후 17세에 육군소위로 임관한다.

7년이 지나 프랑스가 혁명의 와중에 있었을 때 그는 이탈리아로 배속 받아 가던 중 포병 지휘를 맡게 되는 행운을 차지한다. 그는 이곳에서 시가지를 점령한 왕정주의자들과 영국군을 맹포격하여 승리를 거둔다. 이 전투 후에 그는 무려 4계급을 특진해 장군이 된다. 드디어 프랑스 역사의 무대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장악하는 장군이 된 배경에는 날씨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 반기성 기상전문위원
나폴레옹이 역사에 등장하던 1700년대 후반은 소빙기의 절정에 있었고, 악화되는 기후로 인해 농사를 망치는 빈도가 늘어났다. 유럽은 추위와 함께 습한 날씨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기후조건은 많은 국민을 길거리에 나앉게 했고, 굶주리고 질병에 걸려 죽어가게 만들었다. 이 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나폴레옹은 세계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다.

“날씨는 역사를 바꾸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역사는 이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나폴레옹이 역사에 등장하여 위대한 장군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으로 날씨가 도왔음을 나폴레옹전사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24세의 나이에 장군으로 진급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능력도 있었지만 유럽의 소빙기 기후가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온케이웨더>
 

반기성은?

=충북 충주출생.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공군 기상장교로 입대, 30년간 기상예보장교 생활을 했다. 군기상부대인 공군73기상전대장을 역임하고 공군 예비역대령으로 전역했다. ‘야전 기상의 전설’로 불릴 정도로 기상예보에 탁월한 독보적 존재였다.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군에서 전역 후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위원을 맡아 연세대 대기과학과에서 항공기상학, 대기분석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기상종합솔루션회사인 케이웨더에서 예보센터장, 기상사업본부장, 기후산업연구소장 등도 맡아 일하고 있다. 국방부 기후연구위원, 기상청 정책자문위원과 삼성경제연구소, 조선일보, 국방일보, 스포츠서울 및 제이누리의 날씨 전문위원이다. 기상예보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표창,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날씨를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외 1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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