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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역사농단 세력들의 술수 ... 그들이 살아남는 비법

 

 

 

그들의 수법은 언제나 그렇다. 본질이 아닌 문제로 판을 깨려 하거나 적반하장도 예사다. 오리발 내밀기는 물론 언제 그랬냐는 듯 말 뒤집기는 다반사다. 거기에 한술 더 떠 함부로 매도하거나 ‘빨갱이’와 같은 덧칠을 해대며 낙인 찍기도 즐겨 쓰는 방책이다. 물론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는다. 오로지 유·불리만을 따지고 불리하면 ‘네편’이고 유리하면 ‘내편’이다. 그렇게 모두를 ‘편의 영역’으로 가르고 이전투구(泥田鬪狗) 상황으로 끌고 간다.

 

정연한 체계로 질서가 잡혀가고 있다면 오히려 ‘깽판’을 만들어 아수라장으로 몰고 간다. 합리적 공간에선 책임이 규명되기에 오히려 그 책임을 모면하고자 상황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부끄러움도 없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건 개의치 않는다. 초등생 수준의 유치한 전장터로 등장인물들을 모두 끌어들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차피 관심은 모두를 진흙탕으로 끌어들여 모두에게 오물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불리한 국면이 오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갖다 붙여 국면의 주도세력을 공격한다. 음란도색잡지에 등장할 만한 염문과 스캔들, 과거 전력 등의 모든 문제를 들이 대 흠집내고 훼손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어떨 땐 택도 없는 억지 시비로 상대방을 모욕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오죽하면 보는 이가 보다 못해 ‘염병(染病)’이란 농박까지 던지겠는가?

 

물론 애당초 체면 따윈 없다. 오직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인데 염치 따위는 고려해 볼 가치도, 상황도 아니다. 물론 달을 보라는 데 굳이 손가락만 쳐다본다. 굳이 손가락만을 보고 왜 오른 손이냐? 왜 검지냐? 등으로 따지는 방식이다. 그래서 세력이 미약하고 동조하는 이가 없기 마련이지만 이에도 굴하지 않는다. 관심은 오직 본질을 흐트러뜨리는 것이고, 명백히 드러나는 본질에 대해선 곁가지 문제를 들이대 그 가치를 훼손하거나 생채기를 낸다. 말도 안되는 이유로 드잡이를 하거나 삿대질을 하며 무조건 시비를 건다.

 

이간질도 이들이 즐겨쓰는 수법이다. 너무 똘똘 뭉쳐 난공불락이라고 여기면 온갖 감언이설과 비방, 허위사실 유포, ‘아니면 말고’식 의혹제기로 상대방의 분열을 꾀한다. 민주정부가 아닌 독재·권위주의 정권 체제에서 이런 일들이 이른바 분할통치(divide and rule)란 이름의 지배기술로 작동했다. 물론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식민통치는 바로 그런 분할통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물러가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대한민국 정부가 새로이 수립됐지만 그로부터 쌓아온 역사는 아직도 이런 분열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않았다.

 

일제가 물러가고 탄생한 대한민국 아래서 친일파는 살아 남았다. 그들의 국정농단이 있었고, 그들의 얕은 술수가 먹혀 들어가며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한 반민특위가 좌절하는 통한(痛恨)의 역사도 있었다. 친일의 세력은 순식간에 ‘한미동맹’의 상황변화에 카멜레온처럼 변신, 서둘러 ‘친미’의 옷으로 갈아 입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분열을 즐겼다. 아니 철저히 이용했다. 그것만이 그들의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정유년의 새해가 떠오르고 이제 한 달이 지났다. 연인원 3000만명이란 기록적 촛불의 함성이 지난해를 마무리하고 새 역사를 만들어가야 하는 ‘당위’의 해를 맞은지 한 달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다시 분열의 조짐이 싹트고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고, 해서는 안되는 일인지, 우리 자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대한민국이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 등을 다시 한번 근본적으로 따져 물었지만 어이 없는 주제로 또 제각각 나뉘어질 태세다.

 

보수와 진보는 어차피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양 날개다. 누가 옳고 그른 게 아니다. 다만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보수란 이름이, 진보란 이름이 정의(正義)에 앞서는 간판이 될 수 없다. 영·호남이란 지역간 갈등의 문제가, 청년과 노년이란 세대차가 정의를 도외시할 이유도 되지 않는다. 국가안보가 정의 실현을 가로막을 명분일 수도 없다. 국가안보란 다름 아닌 정의로운 나라, 정의로운 세상을 지켜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문제는 단순하다. 정의다. 어쭙잖은 흑백논리와 좌·우파 구분, 보수·진보 구도는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기준일 뿐이다. 해괴한 망동과 삿대질·드잡이·꼼수에 능통한 이들이 벌이는 굿판에 눈을 거두자. 치졸한 분열의 책동에 우리 국민들이 놀아날 필요가 있는가? 관객이 없는 썰렁한 굿판은 시간이 흐르면 기운이 빠진다. 그저 그들의 처연한 퇴장을 지켜보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생각해볼 일은 뭐라고 말해도 다시 정의다.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알려줄 것도 오직 정의다. 그저 우리는 정의의 길을 걸어가기만 하면 될 뿐이다.

 

2017년! 제주에서도, 대한민국에서도, 우리 모두의 마음에서도 ‘정의로운 역사’가 쓰여진 해로 기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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