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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한국최고의 양돈산업 전진기지로 만들다[창간 2주년 특별기획] 격동의 현장-남기고 싶은 이야기(제2화)
양영철 교수가 전하는 '제주근대화의 선구자' 맥그린치 신부 (7)
양영철  |  yongchul@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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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30  11: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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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1일 제주시 한림읍 한림체육관. 60년을 제주에서 살아온 맥그린치 신부를 기리고자 기념사업회 발기인대회가 열렸다. 80여명이 한 자리에 앉았다. 필자도 맥그린치 신부를 오랫동안 연구한 사람으로 인정돼 발기인 공동대표로 추천됐다. 물론 그 자리에서 필자는 맥그린치 신부와 동고동락을 같이 한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 지난 21일 열린 맥그린치 신부 기념사업회 발기인대회 현장
그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특히 그들 중 양돈 일을 하는 신부삼 삼축산업 대표와는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초기 이시돌 목장의 양돈산업 실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분이었다. 신부삼 대표는 맥그린치 신부가 한림공소에 오면서 처음으로 신자로 입교하였고 곧 바로 4H 회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이후 신 대표는 4H 연합회장까지 지낼 정도로 4H 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지금 그는 제주도에서 가장 큰 양돈 농장 두 곳을 운영하고 있고 자녀 셋 중 둘째 아들과 딸은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큰 아들은 경영학과를 졸업하여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여 외국회사에 다니다가 지금은 아버지 가업을 이어 받고 있다. 성공한 양돈 사업가다.

그러나 그의 성공 이면엔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그는 중학교를 다니다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고 4H 활동을 하면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 곳이 바로 맥그린치 신부가 운영하는 축산은행이었다. 그도 역시 다른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개량종인 요크셔 숫놈 한 마리를 분양받았다. 돼지가 빨리 크기를 바라는 어린 마음에서 먹이와 사료를 천정에 매달아 놓고 돼지가 일어서서 먹게 할 정도로 마음은 간절했다. 당시는 4·3 사건과 6·25 전쟁에 계속 되는 흉년으로 굶어 주는 이들이 속출하였던 시대였다. 지금의 아주 가난한 아프리카 나라와 다름이 없었다고 한다. 성당 한편에 큰 가마솥을 걸어 놓고 가톨릭 구제회에서 보내 온 밀가루와 강냉이로 죽을 끊이면 그걸로 매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 1960년대 4H클럽 교육장면이다
신 대표의 말에 따르면 가축은행은 실패했다고 했다. 맥그린치 신부가 분양한 돼지들이 적어도 110kg이 돼야 규격돈이 되고 그래야 값을 잘 받을 수 있고 경제성을 유지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대 인분을 먹이지 말라”는 규정에 따라서 맥그린치 신부가 설립한 사료공장의 옥수수를 먹여야 했다. 그러나 하도 가난한 시절이라 나누어준 옥수수 사료를 걸러내 알맹이는 식용으로 쓰고 나머지 쭉정이만 사료로 먹이니 돼지가 클 수 없었다.

이 뿐만 아니라 분양된 돼지들이 새끼를 낳아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등등으로 제때에 가져 오지 않은 경우들이 허다했다. 그러다보니 축산은행이 예정했던 길은 걸어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패가 맥그린치 신부로 하여금 체계적인 집단 농장을 설립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그 생각이 이시돌 목장으로 현실화된 것이다.

신 대표는 1962년 초 군에 입대하면서 이시돌 목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제대 후인 1964년 바로 이시돌에 채용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양돈관리인으로 있다가 군대에서 행정병을 맡았던 경험을 인정받아 행정담당 직원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고, 그는 경리일을 보게 됐다. 당시 이시돌 직원은 제주사회에서 크게 인정받았고 자부심도 대단했다고 한다. 직원수가 도청 공무원보다 많은데다 봉급도 도청 공무원을 능가했다. 그래서 도청 과장이 이시돌 협회 과장으로 특채가 되는 일도 있었다.

   
▲ 이시돌 목장을 조성하던 시절 맥그린치 신부가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196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이시돌에서 사육하는 돼지는 1만3000마리로 불어났다. 국내 최대의 양돈 목장이 된 것이다. 그 시절엔 우리나라 대기업 중 하나인 삼양산업이 대관령에 돼지와 소를 키우는 대형 목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 그 기업도 종돈 분양과 목장 개척에 대한 자문을 이시돌 측에 해 올 정도였다. 삼성그룹도 이병철 회장의 지시에 따라 현재 에버랜드 자리인 용인에 대형 목장을 운영했는데 역시 이시돌의 자문을 구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시돌 목장은 1960~70년대 우리나라 축산업을 이끌어 나가는 중추였다.

더욱이 교육원을 설립해 양돈뿐만 아니라 목축, 트랙터 등 중장비 반을 만들어서 교육도 병행했다. 도내뿐만 아니라 도외에서도 인기가 폭발하여 신청자가 폭주할 정도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축산분야 교육기관이다. 교육을 받은 도민들에겐 다시 돼지 20마리를 분양해 줬다. 양돈산업 중흥의 길을 연 것이다.

그러나 이시돌 목장의 양돈 산업은 1980년 초에 일대 위기를 맞는다. 전국적으로 돼지 과다·생산으로 파동이 일어난 것이다. 판로가 막히자 망하는 양돈농장들이 속출했다. 그러자 정부는 소규모 양돈농가를 살리고자 기업형 양돈목장을 압박했다. 전업을 강권한 것이다. 전두환 시대였다. 삼양기업과 삼성을 비롯해 이시돌 목장마저 양돈업을 접어야 했다. 그러자 맥그린치 신부는 우선 직원들을 설득했다. 아예 사업자로 나서라는 권장이었다. 1만3000마리의 돼지를 모두 분양해 주는 대신 이시돌 양돈시설에서 사업을 해 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직원들은 그 시절 돼지파동을 목도한 우려 때문인지 외면했다. 선뜻 나서지도 않았다. 신 대표는 이 때 스스로 나섰다. 동료들도 설득했다. 결국 10여명이 이시돌 협회에 사직서를 내고 사업자로 나서 양돈업을 시작했다. 신 대표는 약 200마리 돼지를 분양받았다. 500마리까지 받은 직원도 있었다. 맥그린치 신부는 처음에는 무료로 분양을 해 주겠다고 했지만 직원들이 오히려 만류를 했고, 아주 싼 값으로  넘겼다. 게다가 사료마저 외상으로 대줬다. 돈 한 푼 없이 양돈사업을 할 기회를 주겠다는 작정이었다. 신 대표의 기억이다. “그 시절 신부님은 직원들에게 앞으로 여러분들이 열심히 하면 10년이나 적어도 20년 이내에  자가용을 타고 다닐 수 있을 겁니다.” “모두 신부님이 허풍을 떨고 있다고 생각했죠. 그냥 서로 웃었습니다. 그런데 자가용 승용차를 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 이시돌 목장의 양돈사업 개척 당시 참여했던 인사들과의 기념사진이다.
현실은 맥그린치 신부의 예언 그대로였다. 신 대표는 지금도 이렇게 잘 사는 것이 기적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맥그린치 신부의 도전은 무모한 듯 하지만 선진 경영기법의 실천이었다. 가장 합리적인 최신 경영기업을 따랐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과학적인 생산과 과학적인 유통, 그리고 혁신의 확산이라는 독특하면서 과학적인 영농을 펼친 것이다.

우선 생산 측면이다. 경제성을 위해서 기업영농을 하였고, 규모의 경제원칙을 살려 대형농장 체제를 갖췄다. 물론 생산량을 증대하기 위해 기술개발과 품종개량을 끊임없이 하였다. 우수 종돈이 있으면 외국에서 들여왔다. 교육전문가들을 채용, 생산자들을 끊임없이 교육해 생산성을 향상시켰다.

유통에서도 당시엔 상상할 수 없는 과학성과 선진성을 겸비했다. 돼지 숫자가 불자 이를 소비하기 위한 다양화를 꾀했다. 심지어 홍콩과 일본으로까지 돼지를 수출할 정도였다. 선진국인 두 나라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위생적인 처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시절 제주에는 도축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부산에 생돈(살아있는 돼지)을 배로 싣고 가 도축하고, 급냉동으로 홍콩·일본으로 팔아넘겼다. 그러다가 돈이 많이 들자 맥그린치 신부는 일본의 최대 수출회사인 미츠비시와 손잡고 한림읍 옹포에 아예 도축장을 만들었다. 일본의 선진기술도 도입, 그 곳을 수출전진기지로 만들었다.

그 결실은 이시돌만 독점하지 않았다. 우량종을 계속 분양했고, 기술지도를 잊지 않았다. 특히 한림지역 주민들을 위해 이시돌 목장 근처에 60만평을 조성, 가구당 3만평씩 나눠주고 그 곳에서 소와 돼지를 키우도록 했다. 3만평의 땅값은 조성원가가 평당 8원으로 총 토지 매입비는 그 시절 2만4천원이었다. 이 돈도 맥그린치 신부가 빌려줬다. 고작 연 1.5% 이자에 30년 뒤 상환 조건이다. “그 3만평 땅은 현 시세가 무려 30억원을 호가합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았고, 자신의 목장을 이 단지 조성을 위해 일부를 팔았다는 이영선 전 축협조합장의 증언이다.

   
▲ 이시돌 목장 조성과정 시절의 현장이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맥그린치 신부
자본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허허벌판 맨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돼지를 갖고, 아무 축산기술도 없는 주민들을 가르치고 지원하면서 일궈낸 성공이었던 것이다. 제주에 양돈산업을 일으킨 정도만이 아니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해 낸 맥그린치 신부와 한림읍 지역주민들의 노력은 그래서 그 어느 성공스토리보다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맥그린치와 이시돌이 일궈낸 성과로 제주는 전국 최고의 양돈산업 전진기지가 됐고, 현재 한림의 양돈 사업자는 140가구에 이르는데다 키우는 돼지는 13만마리나 된다. 제주 한림 지역의 최고의 소득원이다. 그의 성공신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글=양영철/ 8편으로 이어집니다>
 

   
 

맥그린치 신부는? = 1928년 남아일랜드의 레터켄에서 태어났다.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사제로 1954년 제주로 부임한 후 지금까지 60년간 제주근대화·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성당을 세운 뒤 수직물회사를 만들고, 4H클럽을 만들어 청년들을 교육했다. 신용협동조합을 창립, 경제적 자립의 토대를 만들었고, 양과 돼지 사육으로 시작된 성이시돌 목장은 제주축산업의 기초가 됐다. 농업기술연수원을 설립하고 우유·치즈·배합사료공장을 처음 제주에 만든 것도 그다. 그는 그 수익금으로 양로원·요양원·병원·호스피스복지원과 어린이집·유치원을 세워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 그 공로로 5·16민족상, 막사이사이상, 대한민국 석탑산업 훈장 등을 받았고 1973년 명예 제주도민이 돼 ‘임피제’라는 한국명을 쓰기 시작했다.

 

   
 
양영철 교수는?

=제주대 행정학과를 나와 서울대와 건국대에서 행정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은 “내생적 지역개발에 관한 연구 .” 맥그린치 신부의 제주근대화 모델을 이론적으로 살핀 저술이다. 현재 한국지방자치학회 회장,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 및 제2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조선말 ‘의녀’로 불리는 김만덕 기념사업회 기획총괄위원장이면서 ‘나비박사’로 알려진 석주명 기념사업회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자치경찰 탄생의 이론적 산파 역을 한 게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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