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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시평세평(9) ‘바른 말을 착하게’ 말하는 사회를 꿈꾼다

 

# ‘바른 말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

지금은 정계를 떠나 전업 작가로 살고 있는 정치인을 오래전부터 좋아했었다.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칩거하여 집필활동만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분이 쓴 책들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있다.

얄미울 정도로 빈틈없는 논리와 정나미 떨어지는 말맛 때문에 국민들이 그분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외피에 불과한 그분의 이미지에 냉소적인 국민들이 섭섭했던 적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밉상마저도 현실정치인이 감당해야 할 자질의 범주라고 생각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더라도 남들이 좋아할 것 같지 않으면 끝까지 좋아해 주는 뒷심이 없다.

누구나 소수의 편에 서는 건 외로운 것이므로...
가끔은 감히 그분을 반면교사로 삼아 나를 들여다본다.
‘바른 말을 착하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 ‘나쁜 말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

과거 너희 나라의 군인들이 우리들에게 이래저래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하였으니 사과하라는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맺힌 절규에 아베라는 사람은 “증거 있어? 막말로 전쟁 때 뭐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냐?”라고 ‘나쁜 말을 나쁘게’ 말했다.

그의 뒤에는 “그렇지, 다 맞는 말이네”라며 맞장구치는 열혈 애국단체(?) 극우파의 열광이 있다. 하긴 그 나라에도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말하는 하토야마라는 어른이 있긴 있다.

그런데 그분의 말은 아주 작게 들릴 듯 말듯 하다. 세상 어느 곳에나 진실을 말하는 자는 외롭다.
누구도 그를 쉽게 벗 삼으려 들지 않는다. 진실의 편에 서는 것은 위험하고 불편한 것이니까.

 

 

# ‘나쁜 말을 착하게’ 말하는 사람

오늘 아침, 사우나실 안에 둘러앉아 TV뉴스를 보던 중에 세월호 유족들의 눈물겨운 특별법 항의광경이 나오자, 손님 한 사람이 “이젤랑 그만 허주게...”라고 말을 뱉었다. 그 사람은 이어서 “대통령은 어떵 그 일만 해여져게”라며, 얼른 들으면 국정(國政)을 걱정하는 듯한 말도 덧붙였다.

목욕하는 내내 국정은 걱정하면서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는 그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사람이 혼잣말처럼 착하게 발성한 피력은 과연 바른 말인가.

나 자신이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에 넓고 깊게 연루되어 있음을 성찰하고 행동에 나서는 일이 곧 함께 사는 윤리가 아니겠는가. 국가의 무책임에 가려진 국민의 희생은 어떡하고 그만하라는 말인지... 세상의 나쁨은 일상의 도처에서 우리를 길들이고자 기회를 엿본다.

둘러앉았던 손님 중에 또 몇 사람이 그 사람의 말에 무심코 길들여져 버렸을까. “게매마씸”이라며 반응하는 위태로운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제기랄, 자기 자식들 아니라고... 그게 애국이냐? (아참, 착하게, 그건 애국이 아니지요. 그러나 입속에서만 맴돌았다.)

 

환경수도를 지향하는 제주의 중산간을 파헤쳐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환경영향평가자리에서 담당국장은 “이 사업이 불신임되면 사업자가 많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라며, 심의위원들을 길들이는 나쁜 말을 사업자를 걱정하는 착한 말로 치레하여 말했다.

 

환경영향평가는 관련규정이 정하는 심의기준에 따라 심의되어야 하는 걸 심의위원들이 몰랐을 리 없건마는 어찌 된 일인지 심의는 도지사마저도 불만스러운 결과로 통과되었다.

심의위원들에게 담당국장은 강자이다. 상가리 주민들은 약자이다. 강자 앞에서는 심리적으로는 약자를 동정해도 실리적으로는 약자를 헤친다. 상가리 주민들의 성난 민심을 집단의 소음으로 외면해버린다.

 

그런데 ‘바른 말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말머리가 미워서 지지를 못 받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고, ‘나쁜 말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동속(同屬)의 지지를 받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니 무심해지며, ‘나쁜 말을 착하게’ 말하는 사람의 말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 속이 상하는 건 무슨 이유일까.

 

우리는 허겁지겁 살다가 문득 나를 이루는 뭔가를 훼손당하는 느낌이 들 때, 순간 피어오르는 영혼의 꽃을 외면해버리지는 않았는가.

불편한 진실을 멀리하기 위해 언짢은 것들이 자신을 깊이 파고들지 못하도록 마음의 방어벽을 쌓지는 않았는가.

그런 사람들에게 ‘나쁜 말을 착하게’ 말하면 ‘나쁜 말’은 안 들리고 ‘착한 말치레’만 웅장하게 들려온다.

 

그런 사람들을 길들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김성민은?

=탐독가, 수필가다. 북제주군청에서 공직에 입문, 제주도청 항만과 해양수산 분야에서 30여년 간 공직생활을 했다. 2002년엔 중앙일보와 행정자치부가 공동주관한 제26회 청백봉사상 대상을 수상한 전력도 있다. 그해 12월엔 제주도에 의해 행정부문 ‘제주를 빛낸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8년 월간 한맥문학사의 ‘한맥문학’에 의해 수필부분 신인상으로 등단한 수필가다. 공직을 퇴직한 후에는 그동안 미루어 왔던 깊은 독서의 매력에 흠뻑 젖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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