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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필의 세상훑기(27) ··· 끝나지 않은 운명에 대한 전율

이순신 장군에게 1597년은 어떤 해였는가. 참담했다.

 

음력 2월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돼 서울로 압송됐다. 4월 풀려나 백의종군 길에 나섰다. 아산 고향집에서 어머니상(喪)을 당했다. 7월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조선 수군을 모두 잃었다. 10월엔 겉봉에 ‘통곡’이라고 쓰인 편지를 받는다. 갓 20살이 된 막내아들 면이 전사했다는 내용이었다.

다시 불붙은 왜란은 이순신의 삶을 휘저었다. 왜적 속임수에 속은 선조는 왜장 가토 기요마사를 부산 앞바다에서 잡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적진 앞 넓은 바다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적을 기다리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함대를 출동시키지 않았다.

왕과 조정이 발끈했다. 유성룡까지 이순신을 비난했다. 선조는 1월 27일 “이순신은 조금도 용서할 수가 없다. 무신이 조정을 가볍게 여기는 습성은 다스리지 않을 수 없다”며 통제사 교체를 결심했다. 이순신도 왕의 명령을 거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몰 순 없었다.

난중일기는 몇 개월 중단됐다가 옥문을 나서는 4월 1일 다시 시작된다. 석방 첫날 영의정·우의정·대사헌이 사람을 보내 문안했고, 지인 여러 명이 술을 가져와 크게 취했다. 술은 백의종군 길에서도 이어졌다. 사흘째 수원서 아침 일찍 출발해 오산에 이르니 지인이 장막을 쳐놓고 기다렸다. 아침부터 취하도록 마셨다. 어느 곳에선 주민들이 술병을 들고 나와 노래까지 부르며 위로연을 열어줬다.

하지만 즐겁지 않았다. 왜적이 14만 대군을 몰고 다시 침략했는데 자신의 무력한 신세가 한탄스러웠다. 곧이어 석방된 아들을 보러 여수에서 올라오던 어머니가 선상에서 돌아가셨다. 금부도사가 길을 재촉해 입관만 하고 장례는 직접 치르지도 못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간에 나와 같은 처지가 또 있겠는가.”

통곡할 일은 석 달 후 또 찾아왔다. 수군이 크게 패했다는 소식이다. 많은 장수가 죽었다. 도원수 권율이 찾아왔다. “직접 해안을 돌아보고 방책을 정하겠다”고 하니 기뻐했다.

8월 3일 복직 교서가 당도했다. 진주의 한 시골 민가에 기거할 때다. ‘기복수직교서(起復授職敎書)’는 왕의 사과문과 다름없었다. ‘기복’이란 상중(喪中)에 불구하고 관직에 나아가는 걸 말한다. 교서는 간곡했다.

“그대의 관직을 거두고 백의종군하도록 하였던 것은 역시 사람(선조 본인)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었거니와, 그리하여 이같이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라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尙何言哉).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할 말이 없다’를 반복했다.

 

끝머리는 애원조다. “그대가 나라 위해 몸을 잊고 나아감은 다 겪어봐 아니, 내 구태여 무슨 말을 길게 하리오.” 6개월 전 “용서할 수 없다”며 압송 명령을 내렸던 왕이다. 왕과 적에 대한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내 끝나지 않은 운명에 대한 전율로 몸을 떨었다 (소설 ‘칼의 노래’ 표현).

명량해전은 부지불식간 다가왔다. D-21일, 왜적이 왔다고 헛소문을 낸 주민 2명의 머리를 벴다. D-12 바람이 거셌으나 함선은 온전했다. D-2 왜놈들이 조선 수군을 섬멸하고 서울로 올라가자고 했단다. D-1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산다”고 훈시했다. D데이 주민 피난선들도 합세해 함선 뒤에서 소리를 질러 응원했다(영광군 오익창 문집). 육군에 합류하라는 왕의 지시도 거부하고 치른 전투다. 이겨야만 했다. 그리고 이겼다.

 

조한필은?=충남 천안 출생.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편집부·전국부·섹션미디어팀 기자를 지냈다. 현재는 충청타임스 부국장 겸 천안·아산 주재기자로 활동하면서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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