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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필의 세상훑기(26) ··· 조선조에도 돋보인 공인의식

   충남 천안 나사렛대서 진행 중인 ‘충남학’ 강사 양성과정의 답사에 동행했다. 논산시 노성면의 명재 윤증(1629~1714) 고택 등 기호유학 유적지를 돌아보는 코스였다. 명재는 송시열과의 불화로 서인이 노론·소론으로 갈려 소론의 영수가 된 인물이다.

 

   파평 윤씨들이 문중 자제들을 교육하려 지었다는 종학당(宗學堂)을 찾았다. 답사 해설을 맡은 건양대 김문준 교수가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종학당은 임진왜란(1592~98년), 정묘호란(1627년), 병자호란(1636년) 등을 겪은 직후인 1643년 건립됐다. “전대미문의 대전란으로 국가적 위기를 맞아, 국가 재건 방법을 찾기 위해 인재를 길러야겠다는 필요성에서 가문 교육기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말인즉, 더이상 국가를 믿고 기다릴 수 없다는 소리다.

 

 이런 설명에 한 참석자가 토를 달았다. “세월호 참사로 공무원의 무능함이 백일하에 드러난 지금 상황과 비슷하군요. 우리도 새로운 모습의 공직자를 길러낼 시스템을 창안해야 할 때가 아닙니까.” 국가 권위가 떨어지고 지도층의 도덕성이 문제되는 시점에 종학당이 많은 시사점을 주는 게 사실이다.

 

 파평 윤씨는 용감했다. 윤창세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전선에 나갔다가 50세로 군중에서 병사했다. 그의 셋째 아들 윤전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적과 싸우다 전사했다. 둘째 아들 윤황도 남한산성에서 싸울 것을 주장하다 유배를 가 병을 얻어 사망했다.

 

 

 

 낮은 산 중턱에 지은 종학당 마루에 앉으면 맞은 편 멀리 윤창세·윤전 등이 묻힌 문중 묘역이 내려다 보인다. 후손들은 자랑스러운 조상 묘역을 굽어보며 학문에 대한 자세를 다잡았으리라. 이 덕에 200여 년간 42명의 문과 급제자가 이곳에서 나왔다.

 

 종학당은 엄격한 학칙(종약)을 만들고 내외척, 처가의 자녀를 합숙시키며 체계적인 교과과정에 따라 교육했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은 “여기서 시대정신을 가르치고 실용주의 지도자를 배출하는 시스템적 교육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공교육이 무너진 시기, 가문에서 직접 교육에 나선 것이다.

 

 학장을 윤순거·윤선거·윤증이 연이어 맡아 후손 교육에 매진했다. 윤씨가는 공부만 강조한 게 아니라 노블리스 오블리제(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교육에 철저했다. 검소함을 강조하며 빈민층 구제장치인 의창(義倉)을 운영했다. 매년 갹출하는 많은 쌀로 수해나 가뭄 때 굶주리는 이웃들을 위해 구휼 사업에 나섰다.

 

 명재고택을 지키는 13세 후손 윤완식씨가 들려준 얘기. “어릴 때 생일이 싫었다. 생일날엔 어머니가 들려주는 쌀 주머니를 동네 주민들에게 나눠 주러 다녀야 하는 게 집안 전통이었기 때문이다. 60,70년대 매일 한 끼씩 굶었다. 그 곡식을 모아 인근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교육이 종학당에서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 까닭에 동학혁명 때 성난 농민군에 의해 많은 양반가가 불에 탔지만 명재고택은 살아남았다.

 

 노성면 파평 윤씨의 절약은 유명하다. 명재의 조부인 윤황이 쓴 가훈에는 ‘옷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우면 안 되니 몸을 가릴 정도면 될 뿐이고, 집은 편안하고 크게 하면 안 되니 바람만 가리면 될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명재는 실제로 자제들이 1709년 지은 ‘호화로운’ 집(지금의 명재 고택)에는 살지 않았다고 한다.

 

 여하튼 지금은 파평 윤씨가 종학당을 세운 뜻과 명재 집안의 공인의식이 돋보이는 때다.

 

 

 

조한필은?=충남 천안 출생.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편집부·전국부·섹션미디어팀 기자를 지냈다. 현재는 충청타임스 부국장 겸 천안·아산 주재기자로 활동하면서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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