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여행하다 보면 유난히 자주 만나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곶'입니다. 곶자왈은 물론 곶오름, 곶동산, 곶밭, 곶길까지. 제주 곳곳에는 '곶'이 들어간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왜 유독 제주에는 이런 이름이 많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곶'이라고 하면 바다로 길게 튀어나온 땅을 떠올립니다. 국어사전에서도 곶은 육지가 바다 쪽으로 돌출된 지형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조금 다른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제주에서 '곶'은 오래전부터 '숲'을 의미하는 제주어였습니다. 과거 제주에는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용암지대 위에 숲이 광범위하게 분포했습니다. 바위가 많고 흙이 얕아 농사를 짓기 어려운 땅에는 자연스럽게 숲이 형성됐고, 제주 사람들은 이런 숲이 있는 곳을 '곶'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숲이 우거진 오름은 '곶오름', 숲이 있는 동산은 '곶동산', 숲이 있는 지역은 '곶밭' 또는 '곶왓'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제주의 옛 지명을 살펴보면 '곶'은 단순히 숲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생활공간을 구분하는 기준이기도 했습니다. 어디까지가 숲인지, 어디부터 사람이 사는 공간인지, 어디에서 땔감을 구하고 가축을 방목했는지가 모두 지명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25일)은 6·25전쟁 발발 76주년입니다. 매년 6월 25일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는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식이 열립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전쟁은 점점 교과서 속 역사로만 남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주에는 6·25 영웅이 없었을까요?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합니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됐습니다.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3년 1개월 동안 이어졌고, 수많은 희생자를 남겼습니다. 제주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지는 아니었지만, 수많은 제주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입대해 전장으로 향했습니다. 일반인은 물론 학생들도 교복을 벗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습니다. 특히 제주 모슬포는 6·25전쟁 당시 중요한 후방기지 역할을 했습니다. 해병대 3기와 4기에는 제주 청년들이 대거 자원입대했고, 이들은 모슬포에서 훈련을 받은 뒤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해 전세를 뒤집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이후 모슬포에는 육군 제1훈련소가 설치돼 1956년 해체될 때까지 약 50만 명에 이르는 신병을 배출했습니다
제주를 대표하는 산업은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귤과 관광을 떠올립니다. 실제로 제주 경제는 오랫동안 감귤과 관광산업이 이끌어 왔습니다. 제주를 상징하는 이미지 역시 감귤밭과 푸른 바다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주에서 가장 많이 수출되는 품목은 감귤이 아닙니다. 반도체입니다. 놀랍게도 올해 들어 제주 수출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해 5월까지 제주의 누적 수출액은 미화 3억5478만 달러. 이미 지난해 연간 수출액 3억4039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불과 5개월 만에 지난해 1년 실적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그 중심에 반도체가 있습니다. 올해 5월까지 제주의 반도체 수출액은 2억5537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전체 수출의 70% 안팎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규모입니다. '감귤의 섬' 제주가 어느새 '반도체의 섬'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잠깐만요. 제주에 삼성전자 공장이 있나요?, SK하이닉스 공장이 있나요?, 반도체 산업단지가 조성돼 있나요?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주 수출 1위가 반도체가 됐을까요? 답은 '제주반도체'라는 기업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반도체를 제주에서 창업한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제주반도체
코로나19는 한국 관광산업 전반을 멈춰 세웠습니다. 서울의 특급호텔 객실은 불이 꺼지고, 강원의 스키장은 시즌 내내 슬로프가 텅 비었으며 부산의 국제회의 산업도 줄줄이 취소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은 중앙정부 관광진흥개발기금이라는 안전망 덕분에 최소한의 숨통을 틀 수 있었습니다. 강원도의 한 중소 호텔 대표는 "문체부 융자 덕분에 직원 월급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부산의 컨벤션 업체들은 임대료와 전기세 같은 고정비를 충당하며 연명을 이어갔고, 전남의 여행사·숙박업체도 중앙 기금 덕에 폐업 직전에서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는 상황이 정반대였습니다. 출국납부금과 카지노 납부금이 전액 제주관광진흥기금으로만 귀속되는 구조 때문에 문체부 융자 공고에는 늘 '제주도 소재 업체 제외'라는 문구가 붙었습니다. 평소에는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장점이었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곧바로 중앙 지원에서 고립되는 '제도의 덫'으로 작용했습니다. 수치를 보면 그 심각성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2019년 제주공항을 통해 해외로 출국한 내국인은 약 144만명에 달했습니다. 출국자 한 명당 1만원씩만 계산해도 140억원 이상이 제주관광진흥기금에 유입됐습니다.
"서울은 따릉이, 대전은 타슈, 광주는 타랑께, 그런데 제주는 뭐라고 부르나요?" 제주시 중심 도로인 연삼로가 오는 27일 '차 없는 거리 자전거·걷기 행사'로 변신합니다. 평소 차량으로 가득 찼던 도로 위가 자전거와 사람들로 채워지며 하루 동안 도민 참여형 축제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가족 단위 참가자, 학생, 관광객까지 어우러져 도로를 달리거나 걷는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될 전망입니다. 다만 교통 혼잡 우려도 큽니다. 연삼로는 제주공항과 민속오일시장을 잇는 길목으로 행사 당일 정체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제주도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탄소중립과 건강도시 이미지를 확산하고, '자전거 타기 좋은 제주' 조성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입니다. 연삼로 곳곳에는 버블 체험존과 플래시몹 댄스 공연, 마칭밴드 퍼레이드가 준비돼 축제 분위기를 끌어올립니다. 제주도는 올해를 '자전거 타기 좋은 제주 원년'으로 선언했습니다. 지난 2월 24일에는 오영훈 제주지사가 직접 전기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체험하며 공직자 대상 전기자전거 시범사업을 출범시켰습니다. 오전 8시 20분 제주문학관 인근에서 출발해 약 20분 만에 도청에 도착한 그는 "횡단보도에서 자전거도로 표시가 없어 정차
"전국체전이 내년 제주에서 열린다고요? 근데 전 스포츠에는 관심이 없어요." 내년 가을, 제주는 한 달간 '스포츠 섬'이 됩니다. 9월에는 31개 종목·1만여 명이 참가하는 제46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10월에는 50개 종목·3만여 명이 모이는 제107회 전국체육대회가 잇따라 열립니다. 155명 규모의 조직위원회가 출범했고, 도청·교육청·체육회·경찰까지 총동원해 경기장 보수와 운영 준비에 한창입니다. 그러나 거리에서 '전국체전' 이야기를 꺼내면 돌아오는 도민들의 반응은 차갑습니다. "아, 선수들이 하는 거잖아요", "우리랑 상관없다"는 말이 심심찮습니다. 대회가 눈앞인데 체전이 지역민의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기운은 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주는 K리그1 제주SK FC(전 제주 유나이티드)가 있는 '축구의 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스포츠 다양성이나 관심 확산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전국은 지금 창단과 이전으로 들썩입니다. K리그2는 내년 김해·용인·파주가 합류하고, KBL 농구는 전주 KCC가 부산으로, 고양에는 새 구단이 들어섰습니다. 배구도 안산 OK금융그룹이 부산으로 이전했습니다. 이 '확장과 재편'의 지도 속에서 제주는 비어 있습니다. KBO 규
제주시 건입동, 산지천 물결이 바다로 흘러드는 자리. 형형색색의 방호벽이 늘어선 곳에 검은빛의 비석 하나가 단단히 서 있습니다. "산지축항 공사 때 암석을 운반하기 위해 광차(鑛車)를 운행했던 곳이다." 2020년 3월 건입동 주민자치위원회가 기존 표석을 철거하고 새로 세운 이 비석은 일제강점기 산지항 매립과 방파제 축조에 동원된 '광차(도록고)'의 역사를 증언합니다. 광차는 금산언덕 절개지나 토목 공사 현장에서 채석한 돌과 흙을 실어 나르던 무동력 궤도차로입니다. 사람 손에 밀리거나 끌려 움직였습니다. 그 레일은 부두와 내륙을 연결하며 자원 수탈의 동맥이자 섬 사람들의 땀과 노동이 깃든 길이었습니다. 1929년 일본인 야마모토 마사토시가 김녕에서 한림까지 55.5㎞ 철로를 부설하며 '제주도 순환궤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본래 계획은 섬을 한 바퀴 도는 193.1㎞ 순환 철도였지만 일부 구간만 개통됐습니다. 지금은 '광차'로 불리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도록고(トロッコ)'라 했습니다. 트럭의 일본어 명칭은 궤간 610㎜ 협궤 위를 달리는 무동력 궤도차를 뜻했습니다. 동력기관 없이 오르막은 인부가 밀고, 내리막은 중력에 의지했습니다. 자갈 없이 목
"제주엔 사람은 66만명인데 차는 71만대가 넘는다고 해요." 숫자만 보면 차가 넘쳐나는 섬입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5년 상반기 자동차 등록 통계'에 따르면 제주 지역의 등록 차량 수는 71만6423대에 달합니다. 인구 대비 차량 보유율은 1.07대로 전국에서 가장 높습니다. 전국 평균(0.52대)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치입니다. 하지만 이 수치가 말하는 것처럼 제주에 사는 모두가 차를 자유롭게 사고, 등록하고, 운행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제주시 아라동에 거주하는 40대 김모씨는 최근 가족과 캠핑을 다니기 위해 대형 SUV 한 대를 구매하려다 결국 포기했습니다. 차량 구매 자체는 문제없었지만 등록 과정에서 '차고지 증명' 서류가 벽이었습니다. 거주 중인 전셋집에는 전용 주차 공간이 없었고, 인근 공영주차장은 단기 임대만 가능해 서류 요건을 충족할 수 없었습니다. 차를 등록하려는 도민은 공간이 없어 포기하고, 도로 위에는 수십만 대의 차량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숫자로는 '차가 많은 섬'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차 한 대 등록하기도 어려운 도민의 현실과 제도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또 다른 풍경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제주에 등록하지 않
"해수욕장을 갔는데 제 파라솔 하나 못 펴는 거예요." 제주 함덕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 이모씨는 아이들과 함께 그늘을 만들기 위해 접이식 파라솔을 꺼내려다 뜻밖의 상황을 마주했습니다. 해변 한쪽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개인피서용품 이용방해 10만원 과태료'라는 문구와 함께 큼지막한 금지 표시가 줄줄이 붙어 있었습니다. 혹시 몰라 관리요원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은 명확했습니다. "개인 파라솔은 설치하실 수 없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해변은 파란색 대여용 파라솔로 가득 차 있었고, 개인이 이용할 수 있는 자리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공공의 공간에서 '내 자리 하나' 펴기 어려운 해변의 현실입니다. 제주는 '해수욕장의 섬'으로 불릴 만큼 여름이면 관광객과 도민 모두가 해변을 찾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할 공간이지만 막상 모래사장에 들어서면 자리를 펴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도내 주요 해수욕장의 파라솔 구역은 대부분 유료 대여용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파란 천막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은 장관처럼 보이지만 그 그늘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개인 파라솔을 설치하려면 관리요원이 다가와 "여기는 안 됩니다"라며 제지합니다. 일
자동차 창유리에 부착하는 '윈도 틴팅'(window tinting)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팅'이라 부릅니다. 그만큼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단어입니다. 실제로 포털 검색창에 '선팅'을 입력해도 수많은 시공 업체와 상품이 쏟아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틴팅은 단순한 외관 미용이 아닌, 법과 안전이 맞닿아 있는 영역입니다. "요즘엔 차 안이 너무 훤히 보이면 불편해서요." 제주시 노형동 한 자동차 틴팅 전문점. 상담을 받고 있던 한 고객은 "모두 이 정도는 하잖아요?"라며 자신 있게 전면 35%, 측면 15% 투과율의 '국민 선팅'을 선택했습니다. 이 고객의 선택은 법률상 명백한 '불법'입니다. 도로교통법과 자동차안전기준 모두 전면 유리는 가시광선 투과율 70% 이상, 운전석과 조수석 옆 창문은 최소 40~70%를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 대부분이 짙은 틴팅 필름으로 덮여 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차량마저도 법적 기준을 초과한 투과율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노형오거리에서 실제로 살펴본 결과 신호 대기 중인 차량 10대 중 9대가 육안으로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진한 틴팅을 한 상태였습니다. 운전자
제주도는 말 그대로 '물의 섬'입니다. 도민이 마시는 수돗물은 물론, 밭에 뿌리는 농업용수, 골프장 잔디에 사용하는 관수용수까지 대부분이 지하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2022년 기준 제주도 전체 생활·농업·공업용수의 약 96%가 지하수에서 확보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도내에는 3만8000개가 넘는 관정이 존재하고, 상수도와 하수도를 포함한 관로 길이만도 각각 2000㎞를 넘습니다. 섬 전체가 지하수 관로망 위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처럼 지하 매설 기반이 복잡하고 물 사용량도 많은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이나 부산처럼 대형 싱크홀이 생겼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제주의 지질 구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제주는 현무암질 화산섬으로 땅속에 다공성 현무암이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빗물이 떨어지면 땅 위에 고이기보다 곧바로 지하로 스며들고, 지하수가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지하 공동이 생기고 흙이 유실되는 전형적인 땅꺼짐(싱크홀) 생성 구조를 근본적으로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퇴적층 지반이 많은 수도권과 달리, 제주에서는 '물고임'보다 '물빠짐'이 먼저 일어납니다.
여름이 무르익으면 제주시내 곳곳에서 그늘막이 펼쳐집니다. 그늘막은 횡단보도나 교통섬에서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햇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가려주는 거대한 파라솔이에요. 정식명칭은 생생그늘터랍니다. 높이는 보통 3~5m, 무게는 150㎏ 정도예요. 7월 현재 제주시에는 253개의 그늘막이, 서귀포시에는 118개의 그늘막이 설치돼 있습니다. 또 각각 6개, 5개를 새로 설치하고 있고요. 도민들이 초록불을 기다리다가 더워서 쓰러질까봐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지네요. 양 행정시에 따르면 그늘막 1개당 가격은 190만~200만원 선입니다. 하지만 그늘막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위탁.관리를 맡은 업체에서 덮개를 제거해 펼치는 수고로운 작업이 필요하대요. 날씨와 기온에 따라 자동으로 펴진다는 스마트 그늘막은 800만원 선으로 가격이 무려 4배나 뛴다고 합니다. 이마저도 서귀포에는 설치돼 있지 않고, 제주시에만 광양사거리 1곳과 신제주 이마트 앞 2곳 등 3곳에만 설치돼 있습니다. 만약 인공 그늘막 대신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면 얼마의 예산이 들어갈까요? 제주에서 가로수로 가장 많이 심는 수종은 지난해 말 기준 왕벚나무(1만6176본), 후박나무(1만1026본), 먼나무(1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