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고’에는 2명의 진정한 ‘빌런’이 등장한다. 한명은 장인에게 몸값을 뜯어내기 위해 자기 아내를 납치해달라고 청부하는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다. 또 한명의 ‘빌런’은 노르웨이계로 보이는 청부업자 게어 그림스루드(Gaear Grimsrud)다. 영화 속에서 대사도 몇마디 하지 않는 그는 누구라도 신경을 건드리면 닥치는 대로 죽여버린다. 코언 감독은 영화 ‘파고’에 빌런 2명을 등장시킨다. 한명은 청부살인업자에게 아내 진(Jean)을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제리 룬더가드다. 제리는 자동차대리점 판매사원답게 상냥하고 미소를 잃지 않으며 붙임성도 좋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실한 사회인으로 보인다. 그렇게 고객을 상냥한 미소를 머금은 채 꼼꼼하게 벗겨먹는다. 장인과 아내를 향한 불만도 속으로만 ‘빌드업’할 뿐 한번도 드러내지 않는다. 결코 충동적이지 않다. 장인과 아내에게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아내를 납치할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심지어 청부업자들의 비위도 건드리지 않고 예의 바르다. 이처럼 제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거짓말을 일삼지만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못한다.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의 모습이다. 소시오패스는 윤리의식은 없
총선의 해 벽두부터 대통령실과 정부가 각종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는 민생 회복을 위해 필요한 대책임을 내세우지만, 상당수가 감세 중심이라서 세금징수와 재정수입 감소를 초래하고, 세수 부족으로 나라살림에 주름을 지울까 우려된다. 정부는 지난해 말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 완화를 시작으로 한달이 채 안 되는 기간에 20여건의 감세와 현금성 지원, 규제완화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 발표가 거의 사흘에 한번꼴이다. 상당수 대책은 대통령이 참석하는 ‘민생토론회’나 고위급 당정협의를 통해 나왔다.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선 주식 세제 개편이 중점 거론됐다. 2025년 도입할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방침을 공식화했다. 금투세 폐지는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2일 새해 증시 개장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주가 상승을 의미하는 붉은색 넥타이도 맸다. 윤 대통령은 보름 뒤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민생토론회를 주재했고, 금융위원회는 금투세 폐지 방침을 공식화했다. 아울러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지난해부터 단계적으로 인하해온 증권거래세는 금투세 폐지의 관계없이 예정대로 내년까지 0.15%로 낮추기로
코언 형제 감독은 영화 속에 그들다운 매우 짧지만 무척이나 흥미로운 시퀀스를 배치한다. 미네소타주의 브레이너드(Brainerd)라는 작은 시의 여자 경찰서장 마지(Marge)는 고속도로 살인사건을 추적하면서 용의자들과 하룻밤을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2명의 나이 어린 창녀를 찾아가 용의자의 정보를 수집한다. 그런데 그 장면이 매우 신선하다 못해 코믹하기까지 하다. 군더손(Gunderson)이란 성(姓)을 보면 마지는 노르웨이계 이민자다. 통통한 어린 창녀들도 영화 속에서 성을 밝히진 않지만 특유의 억양으로 짐작건대 노르웨이계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코언 감독은 북유럽, 특히 ‘얀테의 규율(Laws of Janteㆍ난 남보다 특별하지 않다)’이라는 노르웨이ㆍ덴마크 특유의 문화적 규범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의 배경을 굳이 생소한 ‘미네소타’로 정하고 주인공에게 노르웨이 이름을 부여한 듯하다. 미국 미네소타주는 인구 570만여명 중에서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주축으로 한 북유럽 이민자들이 30%가량을 차지하는 특이한 주다. 북유럽의 ‘얀테의 규율’이 미국에 이식된 곳이다. 창녀라는 직업은 아무래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떳떳하지 못한 직업이다. 그러나 이 직종에 종사하는 ‘노
통상 전년도 12월 말에 해온 새해 경제정책방향 발표가 2024년이 밝은 지 나흘째인 1월 4일 나왔다.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신분인 경제부총리를 교체하고, 경제부처 장관들을 대거 총선용으로 차출하는 정치 과열이 새해 경제정책 추진 일정을 꼬이게 만들었다. 예년보다 늦게 나온 만큼 현실을 직시하고 정책 방향을 제대로 제시해야 할 텐데, 현실 인식은 안이하고 처방은 선심성 포퓰리즘으로 얼룩졌다. 한국 경제는 사면초가 복합위기 상황이다. 미국·중국 간 패권 경쟁과 보호무역주의 장벽으로 수출이 부진하고 경상수지가 적자를 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넘어선 가계부채 탓에 내수도 냉각했다. 고물가 속 국민의 실질소득은 감소하고, 서민 살림살이는 팍팍해졌다. 부자 감세와 정부의 엉터리 추계로 지난해 60조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경제정책방향 첫 페이지에서 지난해 건전재정 기조를 확립하고, 세일즈 외교로 기업의 수출·투자 저변을 확대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제조업과 청년층 취업자가 감소했는데도 고용은 양호하다고 했다. 건설사들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만기가 시한폭탄처럼 다가오고, 시공능력 16위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는데도 금융시장은
오늘 따라 햇볕이 따사롭게 창가를 두드리며, 어머니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정월 바람이 무색하도록 노랗게 피어난 배추꽃도 어머니의 마음을 포근하게 어루만진다. 마당을 비추다가 어머니의 품을 파고드는 햇볕이, 산산이 부서지며 어머니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햇볕과 바람의 재롱에 마음이 녹아든 어머니가 당신의 18번 고백을 노래하듯 털어놓는다. “우리집은 남향이난 이추룩 또똣헌 게 이(이렇게 따뜻하구나)! 경 허난 니네 아방이 집은 남쪽으로 들어앉아사 헌댄 고라신고라(그러니까 너희 아버지가 집은 남쪽으로 자리해야 한다고 말했나 보다). 오늘은 해가 들어왕 굴묵을 때주난(들어와서 난방을 해주니까), 아방이 왕 보민 잘도 좋아허키여만은(아버지가 와서 보면 무척이나 좋아하겠다만은)... 경헌디(그런데), 허태행씨는 어디로 가신고? 난, 니영 살아도 영 궁금헌디(너랑 살아도 이렇게 재미없고 외로운데), 니네 아방도 나추룩 잘 살암신가, 이?" 요즘들어 20여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들먹이며, 궁금증과 외로움을 드러내시는 어머니가, 한편으론 걱정스럽고, 다른 한편으론 안쓰럽다. 올해 102세가 되신 어머니가 새삼스레 아버지의 안부를 묻고 궁금증을 드러내시니, 무어라 대답할 말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는 아내를 납치해서 장인에게 몸값을 받아내려는 창의적인 사기극을 벌인다. ‘전대미문’의 일인 만큼 이 사건을 맡은 미네소타의 한적한 소도시 브레이너드(Brainerd)시의 순박하고 임신 7개월에 몸도 무거운 ‘아줌마’ 여자경찰서장 마지 군더슨(Marge Gunderson)에게 조금은 버거워 보인다. 선입견과 편견이 발동한다. 경찰관 1명이 사살당하고, 그 자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남녀 2명이 역시 사살당한 ‘강력사건’의 유일한 단서는 경찰관이 죽기 직전에 남긴 이 말뿐이다. “임시번호판도 없는 자동차를 발견했다. 검문하겠다.” 마지는 그 번호가 자동차대리점에서 아직 출고하지 않은 자동차에 붙어있는 표식번호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제리의 자동차대리점에 찾아가 ‘수석 세일즈맨’인 제리를 만나 “최근에 사라진 자동차가 없었느냐”고 탐문한다. 유난히 해맑고 단정해 보이는 제리는 선한 미소를 머금고 “그런 일 없다”고 친절하게 응대한다. 이름을 보아하니 제리(Lundegaard)는 마지(Gunderson)와 마찬가지로 노르웨이ㆍ덴마크계 사람이기도 하다. 마지는 선해 보이는 ‘고향사람’ 제리를 100% 신뢰한다. 대신 그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 지구촌 많은 나라에서 중시하는 과세의 기본 원칙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동으로 소득이 생기면 근로소득세를 낸다. 사업을 해서 소득이 생기면 사업소득세를 낸다. 부동산을 사고팔며 이익을 거두면 양도소득세를 낸다. 은행 예금에 몇푼 이자가 붙어도 이자소득세를 낸다. 그런데 소득이 있는데도 세금을 내지 않는 분야가 있다. 바로 주식이나 채권 투자로 벌어들인 소득, 이른바 금융투자소득이다. 상장주식을 거래하며 몇천만원, 억대의 양도차익이 생겨도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다. 고소득층일수록 금융상품을 활용해 조세 회피를 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됐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금융투자소득세다. 금투세는 2020년 문재인 정부가 금융세제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추진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조세의 형평성을 높이고 투자유형·금융상품별로 제각각인 과세 체계를 바로잡자는 취지였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상품 수익이 5000만원 이상이면 20%(지방세 포함 22%), 3억원을 초과하면 25%의 세금을 매기는 것이 골자다. 금투세는 당초 2023년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다. 개인투자자들이 반발하자 2022년 말 여야가
한 해를 무탈하게 보내게 됨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2023년을 보내는 12월의 끝 무렵, 그 마지막 주는 참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아마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가는 저녁 무렵이었던 듯 합니다. 어머니가 동녘방에 가시더니 무언가를 가슴에 소중히 품고 오셨습니다. 어느날 마치 골목에서 정신 없이 놀던 아이들이, “춘자야,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목소리에, 저마다 집을 향해 신바람나게 달려갈 때의 상기된 얼굴을 닮았습니다. “정옥아, 내일은 이 옷 입곡 손 심엉(잡고) 교회에 곹이 가게 이!”라는 어머니의 표정이 사뭇 진지합니다. 두 손으로 소중하게 받쳐서 내 눈 앞에 펼쳐진 건, 아, 빛이 바랜 저고리였습니다. 하얀 색이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서 누렇게 퇴색된 것일까요. 어머니의 화안한 미소와 달리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는 그것은, 자기의 정체를 숨기고 싶은 저승옷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입고 가신다며, 아마 70대 초반에 마련해 놓으셨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30년 세월을 장롱 깊숙한 곳에서 숨을 죽이며 지내느라, 저 옷도 속이 많이 저렸던가 봅니다. 글쎄요. 요즘은 장례업자가 관이고 수의고 일체를 세트로 계약해서 장례를 치른다니,
장인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 아내 납치 자작극을 벌이기로 한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납치청부업자를 구하는 일이다. 제리는 아내 납치를 설계할 순 있지만, 자신이 직접 아내를 납치하기는 간단치 않다. 그래서 그는 나쁜 일을 할 청부업자와 접촉한다. “나는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고, 당신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힘을 합치면 우리는 혼자는 할 수 없는 큰일을 할 수 있다.” 테레사 수녀님이 남긴 좋은 말씀이다. 제리 룬더가드는 이 말씀을 ‘아내 납치’란 나쁜 일에 실현한다. 테레사 수녀님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사람들이 힘을 합쳐 꼭 좋은 일만 하는 건 아니다. 좋은 큰일보다는 나쁜 큰일을 위해 뭉치기도 한다. 아내 납치청부업자를 ‘공채’로 뽑기는 불가능하다. 제리는 자신이 일하는 자동차 대리점에서 자동차 수리를 맡고 있는 빅풋(Big Foot)에게 납치 청부업자 ‘천거’를 부탁한다. 인디언 후예인 빅풋은 인디언 전사처럼 무표정하고 과묵하게 자기 할 일만 한다. 왠지 믿음이 간다. 제리가 생각하기에 빅풋은 전과기록이 있는 만큼 ‘어둠의 세계’에도 인맥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시공능력 평가(도급 순위) 16위인 태영건설이 2023년 12월 28일 끝내 워크아웃(기업개선 작업)을 신청했다. 태영건설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종합 건설업체이자 아파트 브랜드 ‘데시앙’으로 알려진 큰 기업이다. 대형 건설사의 워크아웃 신청은 2013년 쌍용건설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태영건설이 위기에 몰린 배경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채무 부담으로 인한 유동성 부족이다. 태영건설의 순수 부동산 PF 잔액은 3조2000억원, 순차입금이 1조9300억원으로 부채비율이 478.7%에 이른다. 고금리와 공사비 급증으로 착공조차 못한 건설현장이 거의 절반이다. 문제는 PF 리스크에 시달리는 건설사가 태영건설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23년 9월 말 기준 주요 16개 건설사의 PF 보증액은 28조3000억원이다. 남명건설(창원), 해광건설(광주) 등 지방 소재 중소 건설사들이 이미 부도를 냈다. 증권가에는 1군 건설사의 부도설까지 나돈다. 부동산 PF는 아파트 등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의 미래 수익을 담보로 금융회사에서 사업비를 빌리는 것이다. 부동산 개발 시행사가 자본을 갖춘 채로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다. 담보 없이 부동산 개발의 사업성에 기대어 돈을
제리 룬드가드는 청부업자들에게 “아내 ‘진’을 납치해서 몸값으로 8만불을 요구해 달라”는 황당한 의뢰를 한다. 장인에게 몸값 8만불을 받아서 그들에게 수임료 4만불 주고 자신이 4만불 갖겠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제리 룬드가드는 왜 이러는 걸까. 청부업자들도 자기 아내를 납치해 달라는 기상천외한 의뢰가 황당해서 그래야 하는 이유를 물어본다. 제리도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청부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듯 생각을 가다듬는 것 같더니 이내 ‘내가 당신들한테 그런 것까지 설명해야 하느냐’고 버럭한다. 아마도 돈 4만불을 마련하기 위해 청부업자들마저 황당해하는 ‘아내 납치 자작극’을 벌여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다시 한번 깨닫고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납치자작극은 대개 자신이 누군가에게 납치당한 상황을 설정하는데, 제리는 자신이 납치당했다고 하면 장인은 물론, 아내조차 자신을 구출하기 위해 순순히 몸값 8만불을 지불하리라고 자신할 수 없다. 돈 많은 장인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게 아니라 이게 모두 당신의 딸 진과 당신의 손자 스카티를 위한 것”이라며 사업자금을 빌려달라는 제리에게 “네가 내 딸과 내 손자 걱정까지 할 필요 없다. 내 딸과 내
올해도 예산안 심의는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을 넘긴 늑장·졸속·짬짜미 심사에다 나라살림을 정쟁 대상으로 삼는 구태를 되풀이했다. 새해 예산안이 우여곡절 끝에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정시한을 19일 넘긴 것이자 3년 연속 지각 처리다. 여야가 합의 처리한 예산을 보면 총지출 규모가 정부 원안보다 3000억원 적은 656조6000억원이다. 정부 원안에서 4조2000억원을 깎고, 3조9000억원을 증액했다. 국가채무와 국채 발행 규모를 정부안보다 늘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재정악화 소지는 줄였다. 정부가 삭감하며 현장의 반발을 샀던 연구·개발(R&D) 예산을 차세대 원천기술 연구 보강과 최신·고성능 연구 장비 지원을 위해 6000억원 늘린 점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여야는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서로 관심 및 역점을 두는 분야의 예산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담합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관심사업인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이 ‘0원’에서 3000억원으로 살아났다. 새만금사업 예산도 3000억원 증액하며 복원됐다. 민주당이 상임위원회에서 삭감한 1900억원 원자력발전 예산 등 국민의힘이 요구한 예산도 상당 부분 살아났다. 결과적으로 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