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한국마사회 본사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앞두고 '대한민국 말산업 중심지'라는 간판을 전면에 내걸었다.
명분은 충분해 보인다. 제주에서 사육되는 말은 1만4876마리로 전국의 54.7%를 차지한다. 국내산 경주마 생산량의 91.5%도 제주 몫이다. 제주경마공원과 제주목장 등 한국마사회의 주요 사업장도 이미 제주에 자리 잡고 있다.
제주도의 계산대로라면 마사회 본사가 제주로 오는 그림은 자연스럽다. 정책을 결정하는 본사와 말을 생산하고 육성하는 현장이 한곳에 모이면 연구부터 생산, 경마, 관광까지 이어지는 말산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효과도 무시하기 어렵다. 제주연구원은 마사회가 제주로 이전할 경우 생산유발효과 651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 316억원, 취업유발효과 505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위성곤 제주지사도 직접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지난 6월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마사회 제주 이전을 공식 건의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을 만나 다시 한번 지원을 요청했다. 제주도 역시 정부와 마사회를 상대로 제주 이전의 당위성을 알리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말산업 중심지'라는 화려한 간판 뒤편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난달 31일 제주시의 한 말 농장에서 불법도축 정황이 확인됐다. 훼손된 말 사체와 도축 흔적 등이 발견됐고 살아있는 말 4마리가 구조됐다.
그중에는 퇴역경주마 '천행챗'도 있었다. 천행챗은 약 3년4개월 동안 경주에 출전해 1억4675만원의 상금을 벌어들였다. 경주에서 은퇴한 뒤에는 승용마로 용도가 변경됐다.
하지만 새로운 삶은 오래가지 않았다. 퇴역한 지 불과 약 20일 만에 발견된 곳은 승마장도, 목장도 아닌 불법도축장이었다.
말 한 마리의 문제로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한국마사회 말 이력제에는 제주의 한 목장에 승용 전환된 퇴역경주마 156마리가 있는 것으로 등록돼 있었다. 그러나 생명환경권행동 제주비건이 지난 4월 제주도청 관계자와 현장을 확인했을 당시 해당 말들은 단 한 마리도 확인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그 말들이 어디로 갔는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주비건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퇴역경주마 거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민간으로 이동한 5565마리 가운데 1354마리가 생사 확인이 되지 않거나 추적이 끊긴 뒤 '현행화 폐사' 처리됐다. 4마리 가운데 1마리꼴이다.
'현행화 폐사'는 실제 죽음을 확인한 뒤 처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기간 개체가 확인되지 않을 경우 시스템상 폐사로 정리하는 행정 절차로 알려졌다.
물론 이 말들이 모두 불법도축되거나 불법 매립됐다고 볼 근거는 없다. 한국마사회 역시 승용 전환된 퇴역경주마를 마이크로칩과 정기 대면조사 등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전산에는 있는데 현장에는 없는 156마리는 어디로 갔을까. 승용마로 전환됐다는 퇴역경주마는 어떻게 20여일 만에 불법도축장까지 흘러갔을까. 그리고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은 채 행정상 '폐사' 처리된 말들은 제대로 관리됐다고 할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제주도는 바로 지금 '말산업 중심지이기 때문에 마사회 본사가 제주로 와야 한다'고 정부를 설득하고 있다.
말을 얼마나 많이 키우는지, 경주마를 얼마나 많이 생산하는지만 놓고 보면 제주를 따라올 지역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말산업의 경쟁력을 생산량과 사육두수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태어나고, 훈련받고, 경주를 뛰는 과정뿐 아니라 경주장을 떠난 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까지 관리할 수 있어야 진정한 말산업 중심지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마사회 유치전에는 제주만 뛰어든 것도 아니다. 광주·전남과 전북, 경북도 저마다 농생명산업과 경마장, 말산업 인프라 등을 앞세워 경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의 경쟁력이 단순히 '말이 가장 많은 곳'에 머물러서는 부족하다. 오히려 퇴역경주마 관리와 복지까지 책임지는 지역이라는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유치 논리가 될 수 있다.
한국마사회도 지난달 '경주퇴역마 이력관리 종합계획'을 내놓고 말 등록의 법적 기반과 이동·소유권 변경·폐사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제주도 역시 마사회 본사를 어디에 앉힐지 고민하는 것만큼 이미 제주에 있는 말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대한민국 말산업 중심지'라는 이름은 사육두수 1위나 경주마 생산량 1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마사회 본사를 제주로 데려오는 것이 말산업 중심지의 완성이라면 그곳에서 평생을 보낸 말의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것은 그 이름을 내걸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마사회를 품겠다는 제주가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어쩌면 '유치할 기관'이 아니라 이미 제주에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