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6 (화)

  • 맑음동두천 18.0℃
  • 맑음강릉 18.2℃
  • 맑음서울 19.0℃
  • 맑음대전 18.0℃
  • 맑음대구 20.5℃
  • 맑음울산 18.8℃
  • 맑음광주 19.0℃
  • 맑음부산 19.9℃
  • 맑음고창 18.1℃
  • 맑음제주 20.5℃
  • 맑음강화 17.9℃
  • 맑음보은 16.5℃
  • 맑음금산 17.8℃
  • 맑음강진군 19.0℃
  • 맑음경주시 18.0℃
  • 맑음거제 16.4℃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⑩
현타와 다른 헤겔의 부엉이 타임 ... 허무 극복하는 철학적 임무·통찰
앎 자체는 별다른 의미 없어 ... 세상 바꾸는 건 행동하는 현자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제목답게 ‘사라지지 않는’ 온갖 악마들이 날뛰면서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비극에 빠진다. 그중에서도 스스로 목을 매달아 자살하는 윌러드(빌 스카스가드 분)와 레노라(일라이자 스캔런 분)의 모습이 가장 비극적이다.

 


윌러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악명 높은 솔로몬군도 전투에서 악마 같은 일본군을 맞아 자신도 악마가 되면서 ‘신은 죽었다’고 믿는다. 귀향해서 ‘어쩔 수 없이’ 교회예배에는 가지만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는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고 의탁하는 아내 샬럿이 치유 불가능한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숲속에 자신만의 기도터를 마련하고 맹렬하고도 광적인 치유의 기도에 매달린다. 전형적인 ‘민원성 신자’인 셈이다. 당연히 응답은 없다.

신이 답하지 않자 윌러드는 기도의 양과 질을 대폭 업그레이드한다. 밤낮으로 기도에 매달리고 종국에는 어린 아들 아빈의 유일한 친구인 강아지를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십자가에 매달아 바치는 엽기적인 피의 기도를 올린다. 이런 저질스러운 기도에 응답할 신은 없다. 그렇게 아내 샬럿이 죽자 한순간에 ‘현타(현자의 타임)’가 몰려온 윌러드는 기도터에서 목을 매 자살한다.

또다른 자살자는 레노라다. 레노라는 프레스턴 목사가 하나님의 진정한 사도라는 믿음으로 그의 요구에 따르지만 결국 자신이 성적으로 착취만 당하고 버려졌다는 현타가 오는 순간 헛간에 들어가 목을 매고 만다. 

헤겔이 저서 「법철학 강요」 서문에 남긴 유명한 아포리즘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어야 날갯짓을 한다’는 말이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현타라는 말이나 모두 하나의 사건이 끝나고 정적만 남은 뒤에야 냉정한 자각이 찾아온다는 철학적 구조를 공유한다. 그러나 헤겔의 ‘부엉이 타임’은 심리적 허무함을 넘어서 그것을 극복하는 철학적 임무와 통찰이라는 의미에서 단순한 현타와는 차별화된다.

윌러드와 레노라는 믿음이 산산조각 나고 그 허무함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고 만다. 그러나 현타가 온 순간 모두가 그렇게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건 아니다. 아빈도 아버지 윌러드가 자기의 유일한 친구인 강아지까지 기도의 제물로 바치고 10살도 안 된 자기를 남기고 자살해 버리는 순간 일찌감치 현타를 느낀다. 그리고 누구보다 아끼고 의지했던 레노라도 자살한다.

 


또 한번 현타가 온다. 그러나 그 허무한 절망 속에 자신을 던져버리지 않는다. 대신 그 현실을 바로잡으러 나선다. 캄캄한 밤 사냥을 위해 날아오르는 헤겔의 부엉이 타임이다.  아빈은 땅을 파고 묻어버렸던 아버지 윌러드의 권총을 다시 파내어 품고 교회에 찾아가 프레스턴 목사를 즉결처분한다. 그 순간부터 자신도 평생 살인자로 쫓기며 살거나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수밖에 없는 결단이다.

부엉이는 항상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어깨 위에 올라 앉아 있어서인지 지혜를 상징한다. 흥미로운 건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의 여신 ‘아테나(Athena)’와 동일한 신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전장에서 창검을 휘두르는 전쟁의 신은 ‘아레스(Ares)’이고 아테나는 ‘지혜롭게’ 전략을 짜는 전쟁의 신이다. 장비나 관우가 아레스라면 아테나는 제갈공명에 해당하겠다.

아빈은 아레스처럼 당장 권총 들고 프레스턴을 덮치지 않는다. 끈기 있게 프레스턴 목사 주변을 감시하면서 그가 마을 처녀들을 농락하는 현장을 확인한다. 그리고 프레스턴 목사가 교회에 혼자 있는 시간을 정확히 파악한 뒤에 정밀 타격하는 ‘아테나의 부엉이’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성리학의 효시 격인 주희朱熹는 선지후행先知後行론을 정립한다. 앎 자체는 의미가 없다. 알았으면 행동에 옮겨야 한다. 현타가 왔으면 헤겔의 부엉이처럼 날아올라 사냥에 나서야 한다. 현타가 100번 와도 행동하지 않는 한 변하는 건 없다. 우리 모두 현자賢者가 된다고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행동하는 현자가 세상을 바꾼다.

엄혹한 나치 시대 독일의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본회퍼(Dietrich Bonhoeffer·1906~1945년)는 그의 대표 저술 「사도使徒가 치러야 할 것(The cost of discipleship)」에서 ‘회개 없는 용서, 훈육 없는 세례, 고백 없는 성찬聖餐, 십자가의 고통과 희생 없는 은총’을 ‘값싼 은총(cheap grace)’이라고 배격하면서 ‘참된 은총’은 ‘비싼 대가를 치러야 비로소 내려지는 것(costly grace)’임을 강조한다.

본회퍼는 ‘미친 운전자가 행인들을 치면서 질주할 때 목사가 할 일은  한가하게 사상자들을 돌보거나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미친 운전자에게서 핸들을 빼앗는 일’이라고 설파한다. 

 


기도보다는 분명 희생과 고통이 따르는 일이다. 그의 신념대로 본회퍼 목사는 영화 ‘작전명 발키리’로 알려진 히틀러 암살작전에 가담했다가 39살 젊은 나이에 처형당한 목사이기도 하다. 그의 지론대로 하나님의 은총이 세상에 내리도록 그 자신이 값비싼 희생을 감수했던 셈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호텔연회장에 모여 국난극복 기도회를 여는 우리네 명망 있는 목사님들과는 결이 다르다.

요즘 한창 주가가 오르던 어느 여배우가 기회 있을 때마다 자랑하고 다녔다는 그의 증조부가 대단히 고약한 친일파로 밝혀져 시끄럽다. 대중의 분노를 접하고 현타가 왔는지 뒤늦게 반성문을 올렸다는데, 대중의 분노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본회퍼 목사의 질타가 떠오른다. 하나님도 ‘회개 없는 은총, 십자가의 고통 없는 은총’은 내리지 않는다는데 대중이 뒤늦은 반성문 한 장에 용서와 은총을 내리기 어려운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행동으로 옮겨야 할 ‘아테나의 부엉이’ 같은 지혜는 무엇일까.  [본사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