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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일·김장환·최정숙·부춘화 등 ... 승려·학생·해녀까지 제주 곳곳 이어진 항일사

 

제81주년 광복절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35년간 이어진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났습니다. 매년 이날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 태극기가 펄럭이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행사가 열립니다.

 

하지만 제주에서 광복절을 맞으며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주에도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을까요?

 

있었습니다. 그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제주는 섬이라는 지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곳곳에서 항일운동이 이어졌습니다. 승려와 농민이 함께 일어났고,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생계를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던 해녀들도 일제에 맞섰습니다.

 

제주의 항일운동은 1919년 3·1운동보다 앞서 시작됐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입니다.

 

1918년 10월 서귀포 법정사를 중심으로 승려와 주민들이 일제에 맞서 봉기했습니다. 김연일과 방동화 등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였고, 일본인 관리와 상인 등을 몰아내겠다며 행동에 나섰습니다. 당시 제주에서는 보기 드문 조직적인 항일운동이었습니다.

 

특히 법정사 항일운동은 1919년 3·1운동보다 수개월 앞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제주 항일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9년,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의 불길은 바다 건너 제주까지 번졌습니다. 그 중심에는 조천이 있었습니다.

 

1919년 3월 21일 조천 미밋동산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김장환을 비롯해 김시범, 김시은, 김시학 등 제주 청년들이 중심이 돼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만세운동은 며칠 동안 이어졌고 주민들도 거리로 나와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일제 경찰은 참가자들을 체포했고, 주도자들은 재판에 넘겨져 옥고를 치렀습니다.

 

 

오늘날 제주시 조천읍에 자리한 제주항일기념관과 조천만세동산은 당시 제주인들이 외쳤던 독립의 함성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주 여성들도 독립운동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최정숙 선생입니다.

 

 

최정숙은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공부하던 중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습니다. 학생 신분으로 만세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제주로 돌아와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활동했고, 훗날 제주 최초의 여성 교육감이 됐습니다.

 

그러나 제주 여성들의 항일운동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30년대 제주 동부지역에서는 우리나라 항일운동사에서도 보기 드문 대규모 여성 항일운동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제주해녀항일운동입니다.

 

당시 제주 해녀들은 일제와 해녀조합의 부당한 수탈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해녀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에서 채취한 해산물의 가격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고 각종 횡포가 이어졌습니다.

 

결국 해녀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 중심에는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등이 있었습니다.

 

 

1932년 1월 구좌와 성산 일대를 중심으로 해녀들이 집단 시위에 나섰습니다. 호미와 빗창을 든 해녀들은 일제의 수탈과 부당한 해녀조합 운영에 항의했습니다.

 

시위는 한두 차례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연인원 수천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제주해녀항일운동은 제주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 항일운동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일제는 주도자들을 체포하고 탄압했습니다. 하지만 해녀들의 저항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바다에서 들었던 빗창은 생계를 위한 도구였지만, 그날만큼은 일제의 수탈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이 됐습니다.

 

제주 청년과 학생들의 저항도 이어졌습니다. 일제강점기 제주에서는 다양한 청년·학생 조직과 비밀결사를 중심으로 항일운동이 전개됐고,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인들 역시 노동운동과 민족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독립운동은 몇몇 유명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농민이 있었고 학생이 있었으며 승려와 해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록에 이름조차 제대로 남지 않은 수많은 제주인이 있었습니다.

 

제주의 항일운동사를 정리한 자료에는 수백 명의 항일인사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광복 81주년을 맞은 올해,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제주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새롭게 역사에 기록됐습니다.

 

국가보훈부는 올해 광복절을 계기로 독립유공자 283명을 포상하며 제주 출신 김창호·송태옥·한봉삼·김서호·고원택·양붕진 선생 등 6명을 포함했습니다. 이들은 제주에서 법정사 항일운동과 야학 활동, 독립을 염원하는 종교 활동 등에 참여하거나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재일 한인 노동자의 권리와 조국 독립을 위한 노동·민족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체포와 투옥 등 일제의 탄압을 견뎌야 했던 이들의 활동이 뒤늦게 인정되면서 제주 항일운동이 섬 안에 머물지 않고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이어졌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복 81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제주에는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조천에는 만세운동의 역사를 기억하는 조천만세동산과 제주항일기념관이 있고, 서귀포 법정사 일대에는 1918년 항일운동의 역사가 남아 있습니다. 구좌와 성산에는 해녀들이 일제의 수탈에 맞섰던 흔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제주를 관광의 섬, 평화의 섬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주에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습니다. '항일의 섬'입니다.

 

3·1운동보다 앞서 일제에 맞섰던 사람들이 있었고, 독립만세를 외치다 감옥에 갇힌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거리로 나왔고, 해녀들은 생업의 터전인 바다에서 일어나 일제의 수탈에 저항했습니다. 제주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 역시 낯선 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들이 바라던 광복은 결국 1945년 8월 15일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광복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법정사에서 일어선 사람들, 조천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친 사람들, 서울 한복판에서 독립을 외친 제주 학생들, 구좌와 성산에서 일제에 맞선 해녀들, 그리고 일본에서 독립을 위해 싸운 제주인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수많은 제주인도 있었습니다.

 

8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시 독립운동을 직접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8월 15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광복이라는 결과만이 아닙니다.

 

김연일, 방동화, 김장환, 김시범, 김시은, 김시학, 최정숙,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그리고 올해 새롭게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김창호, 송태옥, 한봉삼, 김서호, 고원택, 양붕진. 역사책 한 귀퉁이에조차 이름을 남기지 못한 수많은 제주 항일인사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보고 제주 곳곳에 남아 있는 항일운동의 흔적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광복 81주년을 맞은 제주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기념일 것입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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