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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②
소외된 자들 지지 받은 트럼프 ... 링컨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투표지 단순 종잇조각 아니야 ... 우리 선관위의 무신경함 놀라워

한때 탄광으로 번영했지만 석유산업이 본격화하면서 버려진 땅 ‘웨스트버지니아’.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에서 보여주는 이곳의 절망적인 무기력과 배출구 없는 분노, 그리고 그들이 오로지 매달리는 광적인 기도의 모습은 음산하고 기괴하다.

 

 

영화에서 배경으로 소개하지 않지만, ‘버려진 땅’ 웨스트버지니아의 그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는 1921년 영화 속 그 땅에서 벌어진 미국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노동자 무장 봉기 사건인 ‘블레어산 전투(Battle of Balir Mountain)’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당시 웨스트버지니아의 석탄 광부 1만여명은 자본의 착취와 사설 무장 괴한(우리나라로 치면 백골단)들의 폭력에 맞서 삽자루 정도가 아니라 진짜 총을 들고 봉기했다. 미국 남북전쟁 이후 미국 내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무장충돌이었고, 여전히 미국 현대사의 감추고 싶어 하는 상처이자 치부로 남아 있다. 

자본가들의 편에 선 주州 정부와 보안관들은 광부들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다. 심지어 민간 비행기를 동원해 사설 공중 폭격까지 감행했다. 결국 연방군과 육군 항공대(전투기)까지 광부들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됐다. 우리가 경험했던 ‘5·18 민주화운동’과 너무도 빼닮은 사건이었다.

광부들은 ‘국가’의 군대와는 싸울 수 없다며 총을 내려놓은 덕분인지, 이 전투는 ‘공식 발표’로는 수십명의 사망자를 남긴 채 끝났다. 하지만 실제 사망자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많은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낙인’을 두려워 해 시신을 감추고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공교롭게도 이 전투는 트럼프의 당선과 맞닿는다. 트럼프의 당선은 지난 100여년간 ‘블레어산 전투’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와 응어리를 간직하고 있던 웨스트버지니아를 비롯해 소외되고 버려졌던 지역민들이 그들의 절망과 분노를 ‘총알(bullet)’이 아닌 ‘투표지(ballot)’를 쏘아올린 결과다. 1921년 블레어산의 봉기는 실패했지만 2024년 봉기는 성공을 거둔 셈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남겼다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枪杆子里面出政權)”는 말과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The Ballot is stronger than the bullet)”는 링컨의 명언이 겹쳐 떠오르는 순간이다.

링컨은 1861년 남북전쟁이 터지자 의회연설에서 “합법적이고 헌법적으로 투표(ballot)가 결정했다면, 그다음 단계로 총알(bullet)에 호소해 승복하지 않으려는 반란은 성공할 수 없음을 전 세계에 증명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것으로 기록된다.

 


링컨에게 투표지는 단순한 종잇 조각이 아니라 ‘피를 흘리는 무력 투쟁을 종식하기 위해 인류가 문명화로 이룩한 최후의 보루’였다. 남북전쟁 중이었던 1864년 전쟁 피로증으로 당선이 불투명 가운데에서도 그해 대선을 연기하지 않고 치러내며 체제의 정당성을 오직 투표(ballot)로 증명하려 했던 대단한 인물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자신의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해 이란과의 전쟁을 무한정 끌고 가고 싶어 하는 듯한 이스라엘 네타냐후라는 인물과는 차원이 다르다. 임기 후 자신을 향한 사법재판 재개를 피하기 위해 난데없이 ‘공소 취소’에 매달리는 듯한 인상을 주는 우리 대통령의 민망함도 링컨에게는 없다.

반면, 마오쩌둥은 1927년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이 노동자들을 학살하는 ‘참상(장제스의 4·12 상하이上海 쿠데타)’을 목격한 뒤, 공산당 긴급회의에서 이 유명한 ‘총구’ 발언을 던진 것으로 공식 기록된다.

“과거에 우리는 장제스가 칼을 쥐고 우리를 죽이려 하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는 스스로 칼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정권을 잡으려면 장제스가 그랬던 것처럼, 반드시 총구가 있어야 한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법이다.”

장제스의 총구에 의해 밀려난 마오쩌둥은 이를 기점으로 자체 무력인 ‘홍군(현 인민해방군)’을 창설하고 무력투쟁에 나섰다. 마오쩌둥의 관점에서 자본가와 군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무력(bullet) 없는 피지배계급의 투표용지는 기득권의 기만에 불과했다. 총대를 쥐지 못하면 그 어떤 정치적 권리나 생존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철저한 ‘마키아벨리적’ 리얼리즘의 발현이다.

링컨은 총알을 투표로 바꾸려 했고, 마오쩌둥은 총구로 새로운 정권을 세우려 했다. 문득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가 ‘투표용지(ballot)’를 ‘종이 돌멩이(paper stone)’라 명명한 「종이 돌멩이: 선거 사회주의의 역사(Paper Stones: A History of Electoral Socialismㆍ1986년)」라는 책이 떠오른다.

과거 노동자 계급이 지배 계급을 향해 던지던 물리적인 ‘짱돌(혁명 혹은 폭동)’이 민주주의의 도입과 함께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종이 돌멩이(투표)’로 전환됐다는 역사적 분석을 담고 있다.

쉐보르스키가 이 책에서 간파한 지점이 바로 모택동의 ‘총구’를 링컨의 ‘투표’로 바꾼 대전환을 의미한다. 1921년 블레어산에서 광부들이 국가를 향해 쏘아댔던 총알(bullet)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지만, 2020년대에 들어 자신들을 배신한 워싱턴의 민주당 엘리트들을 향해 던진 종이 돌멩이는 자신들의 한과 절망을 이해하고 한풀이를 해주겠다는 트럼프를 백악관에 입성시켰다.

 


쉐보르스키는 사회주의나 노동자 대변 정당이 오직 ‘순수 노동자’의 표만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를 지적한다. 자본주의가 고도화할수록 전통적 제조업 노동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약자들의 정당이 중산층, 화이트칼라, 지식인 계급과 연대하면 관련 정책은 온건화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철저히 소외된 전통적 노동자계급(소외된 계층)은 자신들의 대변자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배신한 주류 엘리트 정치를 향해, 과거의 진보 정당이 아닌 ‘트럼프’라는 가장 파괴적인 ‘우파 포퓰리즘’의 손을 빌려 총알보다 무서운 종이 돌멩이를 날려버린 것이다. 우리네 2030의 투표도 이런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일부 투표소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사고 후폭풍이 간단치 않은 모양이다. 링컨이 남북전쟁 난중亂中에도 기를 쓰고 지켜냈던 ‘선거’라는 중대한 국가업무를 그토록 소홀히 다룬 무신경이 놀라울 따름이다.  [본사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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