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이 지난달에 공개되자마자 국내 시리즈 1위에 올랐다. 작품 속에서는 교육부 직속 '교권보호국' 소속 감독관들이 학교폭력과 악성 민원, 교권 침해를 단호하게 해결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설정이지만 많은 교사들은 "저런 조직이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왜일까.
최근 제주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지난 4월 말 서귀포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교사가 사용하던 개인 텀블러에서 수상한 액체가 발견됐다. 경찰 수사 결과 남성의 체액으로 확인됐다. 피해 교사는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병가에 들어갔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수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달 초 같은 교실에 외부인이 또다시 침입했다. 이번에는 피해 교사가 사용하던 의자에 소변을 보고 달아났다. 병가를 대신해 출근한 시간강사가 이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학교 주변 CCTV를 분석해 모 고등학교 재학생 B군을 피의자로 특정했다. 하지만 B군은 경찰 조사에서 "특정 교사를 노린 것이 아니라 교실에 간식이 있어서 들어갔다"며 표적 범행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사 입장에서 범행 동기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이 매일 사용하던 교실과 텀블러, 의자가 범죄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 자체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공포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첫 사건 이후 CCTV까지 추가 설치했음에도 같은 교실에서 또다시 범행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학교 안전망이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의미다.
제주교사노동조합은 원인으로 '개방형 학교'를 지목했다. 제주는 다른 지역과 달리 학교 담장을 허물고 지역사회에 학교를 개방하는 정책을 오래전부터 추진해 왔다. 운동장과 체육관은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문 역시 출입을 막는 구조가 아닌 경우가 많다.
반면 제주도교육청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설명한다. 학교 시설 상당수가 교육청과 제주도가 예산을 절반씩 부담해 조성됐고, 그 조건으로 주민 개방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읍·면 지역일수록 학교는 사실상 마을 공동체의 중심 공간 역할도 한다.
결국 '열린 학교'와 '안전한 학교' 사이에서 누구도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개방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교사와 학생의 안전보다 우선할 수 있는 가치일까.
교권을 위협하는 것은 외부인의 침입만이 아니다.
지난 3일 제주지검 앞에서 제주교사노동조합과 초등교사노동조합은 한 학부모 A씨의 신속한 기소와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A씨는 자녀의 지병이 학교 수업 방식과 반 편성 때문에 악화됐다고 주장하며 제주지역 한 초등학교의 1학년부터 6학년 담임교사 전원과 교장, 행정실장, 교육청 직원 등 모두 10명을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교직원 7명에게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고, 나머지 3명도 경찰 단계에서 불송치됐다.
반대로 경찰은 A씨가 교직원들에게 반복적으로 연락하고 "결혼을 훼방 놓겠다"는 취지의 협박성 발언 등을 한 정황을 확인해 지난해 9월 협박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록 검찰 처분은 나오지 않고 있다.
교사들은 말한다. 무죄를 받아도 이미 상처는 남는다고.
몇 달, 몇 년씩 이어지는 경찰 조사와 검찰 수사 자체가 교사를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지난해 제주에서는 악성 민원으로 한 교사가 끝내 생을 마감하는 비극도 있었다.
지난해 5월 22일 제주시 한 중학교에서 40대 교사 현승준씨가 교내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중학교 3학년 담임이었던 현 교사는 학기 초부터 무단결석과 흡연 등을 반복하던 학생을 생활지도하는 과정에서 학생 가족의 지속적인 민원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이 공개한 메신저 대화에는 "학교는 나와야 한다", "아프면 병원에 들렀다가 학교에 오라", "담배를 줄였으면 좋겠다"는 등 교사의 통상적인 생활지도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학생 가족은 현 교사 개인 휴대전화로 수차례 연락하며 항의했고, 하루 열 통이 넘는 전화가 이어지거나 새벽과 심야에도 연락이 계속된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에도 반복적으로 민원이 제기됐다.
유족은 현 교사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약 6개월간 수사를 벌인 끝에 학생 가족에게 범죄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반복된 민원이 현 교사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협박죄 등 형사처벌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교육계는 제도의 실패를 지적했다. 교육부는 2023년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학교마다 관리자 중심의 민원대응팀을 운영하도록 했지만, 현 교사 사건에서는 악성 민원을 교사 개인이 사실상 홀로 감당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제주도교육청 진상조사반도 학교 민원대응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았고, 민원 스트레스와 질병 치료를 받고 있던 교사의 건강 상태 역시 적절히 고려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좋은교사운동은 "현승준 교사 순직 사건은 실패한 민원 대응 시스템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했고, 교원단체들은 교사가 홀로 민원을 감당하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
같은 날 제주교원단체총연합회는 최근 대법원이 제주시 한 초등학교 체육관 추락사고와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교사에게 무죄를 확정한 것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건은 2023년 7월 발생했다. 5학년 학생이 체육관 공간 분리용 디바이더에 매달렸다가 약 6m 아래로 추락했고, 1심은 교사에게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학생들을 교실로 보낸 뒤 체육관을 정리하는 과정까지 교사의 형사책임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고, 대법원도 최근 이를 확정했다.
교사는 결국 무죄선고를 받았지만 확정 판결까지 약 3년이 걸렸다. 그동안 감당해야 했던 심리적 부담과 사회적 낙인은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이처럼 제주에서만 잇따라 드러난 사건들은 학교 현장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외부인의 침입부터 악성 민원, 무더기 아동학대 고소, 형사재판까지 교사는 교육보다 자신을 지키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실제 교권 침해는 전국적인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 4월 전국 교원 35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6.0%는 "최근 1년간 교육활동 침해를 직접 경험했거나 동료의 피해를 목격했다"고 답했다. 교권 침해가 일부 교사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현장 전반의 문제로 번지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현재도 교권 보호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는 2023년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 민원과 과도한 업무 부담 속에서 숨진 사건 이후 학교마다 관리자 중심의 민원대응팀을 운영하도록 했고, 교육지원청에는 지역교권보호위원회를 설치해 교육활동 침해 사건을 심의하도록 했다.
지역교권보호위원회는 교육활동 침해가 인정되면 학생에게 교내봉사와 출석정지, 전학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고, 학부모에게는 서면 사과와 특별교육 이수, 심리치료 등을 요구할 수 있다. 이를 정당한 사유 없이 이행하지 않으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도 부과된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도는 높지 않다.
실제 지난해 5월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현승준 교사 사건은 교권 보호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제주도교육청 진상조사반은 학교 관리자 중심의 민원대응팀이 기대만큼 기능하지 못했고, 민원 스트레스와 질병 치료를 받고 있던 교사의 건강 상태 역시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초등교사노동조합이 올해 3월 전국 초등교사 9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민원 발생 시 학교 차원의 적절한 지원을 받았다는 응답은 11.1%에 그쳤다.
교권 보호 제도가 마련돼 있어도 실제 활용은 활발하지 않다.
교총이 지난 15일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는 교육활동 침해를 경험하고도 지역교권보호위원회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72.3%에 달했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아서"가 가장 많았고, 행정소송 부담과 학부모의 보복 민원 우려 등이 뒤를 이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고의숙 제주도교육감은 취임과 동시에 교권 보호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고 교육감은 교육감 직속 '교육활동보호담당관'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장학사와 갈등조정관, 상담사 등을 배치해 교육활동 침해 예방부터 법률 지원, 심리 회복까지 전담하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전국적인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은 경기형 교육활동보호국 신설을 공약했고, 충남교육청도 교권 보호 전담 조직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교육부 역시 교권 보호 전담 조직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도 최근 교육부 내 '교육활동보호국' 신설 방안을 제안했다. 민주연구원은 응징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교육활동 침해와 악성 민원, 아동학대 신고, 생활지도 분쟁, 피해 교원 회복까지 국가가 통합 관리하는 책임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드라마 '참교육' 속 교권보호국이 현실에서도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커지는 이유다.
하지만 교원단체들은 조직 하나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행정부서 하나를 신설하는 것만으로는 교권이 살아나지 않는다"며 법률 지원 확대와 국가책임제, 악성 민원 대응,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 방지 등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3년 서울 서이초등학교에서는 신규 교사가 학부모 민원과 과도한 업무 부담 속에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전국적인 교권 보호 논의를 촉발했고 수많은 교사들이 거리로 나와 교육활동 보호 대책을 요구하는 계기가 됐다.
서이초 사건 이후 3년이 흘렀지만 교실은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
제주에서는 교실에 외부인이 두 차례 침입했고, 교사는 무더기 아동학대 고소를 당했으며 학교 안전사고로 수년간 형사재판을 받아야 했다. 현승준 교사는 반복되는 악성 민원 끝에 생을 마감했다.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모두 교사가 교육보다 자신의 안전과 법적 위험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교권은 단순히 교사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문제가 아니다. 학생이 안정적으로 배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교육 환경이다. 교사가 두려움 속에서 수업을 한다면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속 '교권보호국'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사가 범죄 피해를 당해도, 악성 민원에 시달려도, 수년간 재판을 받아도 홀로 버텨야 하는 현실은 이제 끝나야 한다.
교권을 지키는 일은 특정 직업군을 위한 특혜가 아니다. 학교를 학교답게 만드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며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교육의 기본 조건이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