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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①
버려지고 격리된 지역 보고서 ... 소외된 이들의 좌절과 분노
트럼프 백악관 입성 동력 돼 ... 소외된 청년 외면당한 민주당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Devils All The Time·2020년)’는 도널드 레이 폴록(Donald Ray Follock)의 동명 소설을 안토니오 캄포스(Antonio Campos) 감독이 영상으로 옮긴 미국의 ‘버려지고, 격리된’ 지역에 관한 보고서에 가깝다.
 

 

원작자인 폴록은 ‘버려진 채 잊힌’ 오하이오주州  남부 ‘노컴스티프(Knockemstiff)’라는 시골 출신으로 30년 넘게 그곳 제지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한 독특한 작가다.

그렇게 이 작품은 외부인의 시선이 아닌, 내부자의 뼈저린 경험에서 나온 작품으로, 여기엔 화려한 미국에서 소외되고 쇠락한 채 버려져 ‘유령의 땅’이 돼버린 지역의 절망과 무기력, 그리고 분노가 깔려 있다. 

그래서인지 이 ‘늦깎이’ 작가의 첫 작품이 미국 내에서 대단한 반향을 이끌어냈고, 곧바로 캄포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원작자 폴록은 영화에도 직접 참여해 마치 ‘르포’처럼 내레이션이 유독 많은 이 영화에서 본인이 경험한 ‘유령들의 땅’의 절망감을 담담하게 육성으로 전달해 영화의 ‘리얼리티’를 더해준다.

영화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1945년)부터 베트남 전쟁 직전(1965년)까지의 오하이오주 노컴스티프라는 주민 300여명의 작은 촌락과 웨스트버지니아주의 탄광촌 외딴 시골 마을들을 오가며 전개된다. 

시간적 배경은 바로 미국의 황금기다.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주도한 미국이 소위 ‘루스벨트가 만든 새로운 세계(The World Built by Roosevelt)’의 모든 부富를 창출하고 소비하던 바로 그 시절이다. 미국의 힘은 무소불위였으며 그 찬란함은 로마의 그것을 넘어서던 때였다.

그러나 영화의 장소적 배경이 되는 오하이오주 궁벽진 깡촌 노컴스티프라는 촌락과 웨스트버지니아 산골 마을들은 황금기를 맞은 미국에서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공장은 이미 폐쇄돼 녹슨 채 방치되고, 대부분 고향을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좌절과 무기력 속에서 분노와 광기에 물들어가고 있다.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하는 인종문제, 범죄와 마약을 다룬 많은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은 미국의 감추고 싶은 치부와 아킬레스건이 인종갈등이나 마약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원작자 폴록과 캄포스 감독은 현재 미국을 뿌리째 흔드는 거대한 지진의 진앙은 다름 아닌 이들 ‘버려진 유령의 땅’에 사는 사람들의 좌절과 분노라는 사실을 고발한다.

 


대략 3억 미국 인구 중에서 이들 지역의 인구의 총합이 6000여만명에 달한다. 이들 지역의 소외된 분노를 극복하고 백악관에 입성하기란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누구든 이들의 좌절과 분노를 동력으로 삼으면 백악관 진입 ‘8부 능선’은 넘을 수 있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애팔래치아 산맥을 중심으로 한 이들 소외된 지방 깡촌과 러스트 벨트 지역은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을 가능하게 해준 결정적인 베이스캠프였다. 미국의 공공정책 싱크탱크 ‘퓨 리서치(Pew Research)’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e)’ ‘EIG(Economic Innovation Group)’ 등이 내놓은 선거 최종 검증 데이터를 보면, 이 지역들의 트럼프 지지는 단순한 선호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정치적 성벽’을 구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럼프는 미국 전역의 농촌 카운티 중 무려 93%에서 승리했다. 이는 21세기 들어 공화당 대선 후보가 거둔 가장 높은 장악률이다. 반면, 카멀라 해리스(민주당)는 단 7%의 농촌 카운티를 가져오는 데 그쳤다.

자신을 ‘촌락 거주자’라고 밝힌 유권자의 69%가 트럼프를 지지했고, 해리스는 29%에 머물러 그 격차가 40%포인트에 달했다. 참고로 이 지역에서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과의 격차가 31%포인트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들 지역의 분노는 해소되지 않은 채 점점 증폭되고 있는 셈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들 촌락은 구성원들은 생계 수단 자체가 불분명하다. 모두 필라델피아 그 유명한 마약중독자 집결지인 켄싱턴의 마약좀비들처럼 무기력하게 집 앞에 앉아 하루를 보낸다. 

영화 속 주인공 윌러드는 목숨처럼 아끼는 아내가 암에 걸렸지만 그 지역엔 제대로 된 병원조차 없다. 대도시 병원까지 갈 경제적 여력은 없다. 미국의 끔찍한 의료보험 체계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윌러드는 광적인 기도에 매달리지만 주님의 응답은 없다. 제대로 된 치안 서비스도 없는 노컴스티프에서는 ‘껄렁한’ 보안관 보데커가 왕이다.

보테커는 마을의 조폭 뒷배를 보아주고 뒷돈을 챙길 뿐 주민들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다. 이곳에서는 무슨 끔찍한 사건이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그 사건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노컴스티프라는 소외된 촌락의 모습은 트럼프라는 ‘광인’이 무려 미국이라는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준다.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광인을 백악관으로 보냈을 뿐이다.

 


미국 내에 산재하는 수많은 노컴스티프들이 ‘진보’와 ‘정의’라는 탈을 쓴 민주당 체제의 워싱턴 주류사회가 자신들을 문화적으로 무시하고, 경제적으로 방치했다는 분노가 ‘당신들의 과거의 영광을 되돌려주겠다(Make America Great Again)’는 트럼프의 강력한 노스탤지어 서사와 완벽하게 결합한 통계적 결과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노컴스티프라는 촌락의 이름이 흥미롭다.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미국에 실재하고 원작자 폴록의 고향이기도 한 지명인데, 그 지명의 의미가 ‘Knock+(th)em+Stiff’이다. 워낙 거칠어서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상대를 두들겨 패서(Knock) 뻣뻣하게(Stiff) 뻗게 만든다는 그 지역사람들의 특성에 따라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도저히 상관관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소위 ‘카오스 이론(복잡계 이론)’은 ‘산둥반도 나비의 날갯짓이 플로리다 해안에 허리케인으로 변해서 덮친다’는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로 그 복잡계를 설명한다.

이 영화도 노컴스티프의 장탄식이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과 전 세계에 관세폭탄과 베네수엘라, 이란 침공이라는 거대한 해일로 변해 덮치게 된 복잡계를 보여준다. 노컴스티프의 성질 그대로 전 세계를 ‘두들겨패서 쭉 뻗어버리게’ 만들어버린 셈이다. 노컴스티프가 그 이름값을 했다.

지난 지방선거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예상과는 달리 더불어민주당이 ‘완패’했다고 한다. 아마도 진보와 정의라는 위선적인 탈을 쓴 더불어민주당에 분노한 2030을 중심으로 한 서울의 노컴스티프들이 더불어민주당에 주먹을 날려(Knock) 한 주먹에 뻗어버리게(Stiff) 한 선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본사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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