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여행하다 보면 유난히 자주 만나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곶'입니다. 곶자왈은 물론 곶오름, 곶동산, 곶밭, 곶길까지. 제주 곳곳에는 '곶'이 들어간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왜 유독 제주에는 이런 이름이 많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곶'이라고 하면 바다로 길게 튀어나온 땅을 떠올립니다. 국어사전에서도 곶은 육지가 바다 쪽으로 돌출된 지형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조금 다른 뜻으로 사용됐습니다. 제주에서 '곶'은 오래전부터 '숲'을 의미하는 제주어였습니다.
과거 제주에는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용암지대 위에 숲이 광범위하게 분포했습니다. 바위가 많고 흙이 얕아 농사를 짓기 어려운 땅에는 자연스럽게 숲이 형성됐고, 제주 사람들은 이런 숲이 있는 곳을 '곶'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숲이 우거진 오름은 '곶오름', 숲이 있는 동산은 '곶동산', 숲이 있는 지역은 '곶밭' 또는 '곶왓'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제주의 옛 지명을 살펴보면 '곶'은 단순히 숲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생활공간을 구분하는 기준이기도 했습니다. 어디까지가 숲인지, 어디부터 사람이 사는 공간인지, 어디에서 땔감을 구하고 가축을 방목했는지가 모두 지명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제주에는 같은 '곶'이라는 소리를 쓰면서도 전혀 다른 뜻을 가진 지명이 함께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섭지코지입니다.
섭지코지의 '코지'는 제주 방언으로 '곶'을 발음한 형태로, 사람의 코처럼 바다 쪽으로 길게 돌출된 해안지형을 뜻합니다. 실제 섭지코지는 성산 앞바다로 뾰족하게 돌출된 지형이라 이름과 지형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반면 곶자왈의 '곶'은 제주어로 '숲'을 의미합니다. 즉 곶자왈의 '곶'과 섭지코지의 '코지(곶)'는 같은 소리처럼 들리지만, 하나는 숲을, 다른 하나는 바다로 돌출된 지형을 뜻하는 서로 다른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주를 대표하는 '곶자왈'은 어디에서 비롯된 이름일까요?
현재 제주어 사전이나 각종 안내판에서는 곶자왈을 '곶(숲)'과 '자왈(덤불 또는 자갈)'이 합쳐진 말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 안내판에는 '나무와 덩굴이 마구 엉켜 있는 숲'이라는 뜻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자왈을 덤불이나 자갈을 뜻하는 제주어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감귤농사를 지으며 제주어를 연구해 온 한 향토 연구자양기혁씨는 곶자왈을 '곶'과 '자왈'의 합성어로 보는 해석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무엇보다 '자왈이 자갈을 뜻한다'는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제주에서 자갈은 예전부터 '작지'라고 불렸습니다. 제주시 내도동의 몽돌해변인 '알작지', 한라산 윗세오름 아래의 '선작지왓'처럼 지금도 여러 지명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자왈을 자갈의 제주어로 해석하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는 설명입니다. 또 자왈을 덤불이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 역시 충분한 언어학적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해석은 조금 다릅니다. 곶자왈은 '곶+자왈'이 아니라 '곶+왓'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원래는 '곶왓'이었는데 발음하기 쉽도록 중간에 '자'가 들어가면서 '곶자왈'이 됐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서 '왓'은 제주어 '밭'이 변한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농사를 짓는 밭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제주에서는 특정한 지역이나 공간을 가리키는 말로도 널리 사용됐습니다. 예를 들어 억새가 많은 곳은 '새왓', 넓은 암반이 펼쳐진 곳은 '빌레왓', 자갈이 많은 곳은 '작지왓'이라고 불렀습니다. 같은 원리라면 '곶왓'은 '숲이 있는 곳' 또는 '숲 지역'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곶자왈'은 이 '곶왓'이 발음 과정에서 변형된 형태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이는 아직 학계의 정설은 아닙니다. 해당 연구자 역시 자신의 견해가 하나의 가설이라며, 학문적인 검증은 제주어 전문 연구기관과 언어학자들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곶자왈을 바라보는 시선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한때 곶자왈은 용암이 굳은 바위 위에 숲이 우거져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황무지로 여겨졌습니다. 사람이 드나들기 어려운 불모지였고, 개발 가치도 높지 않다고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주의 가장 중요한 자연자산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곶자왈은 희귀 동식물이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고이자, 빗물을 지하로 스며들게 해 제주 지하수를 저장하는 천연 저수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질과 식생, 생태환경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곶자왈'이라는 이름의 어원과 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곶자왈은 이제 단순한 숲이 아닙니다. 제주의 자연을 대표하는 생태자원이자, 제주어가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언어유산입니다. '곶'이 숲을 의미하는 제주어인지, '곶왓'이 변한 말인지, 아니면 또 다른 어원을 가진 것인지는 앞으로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곶'이라는 두 글자 속에는 수백 년 동안 제주 사람들이 자연을 이해하고 살아온 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곶자왈과 곶오름, 곶동산, 그리고 섭지코지까지. 같은 '곶'이라는 이름 속에는 숲과 바다, 그리고 제주인의 삶과 역사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