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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성 중위 등 '호국영웅 4인', 군마 레클리스까지 ... 6·25전쟁이 남긴 제주의 이름들

 

오늘(25일)은 6·25전쟁 발발 76주년입니다.

 

매년 6월 25일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는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기념식이 열립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전쟁은 점점 교과서 속 역사로만 남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주에는 6·25 영웅이 없었을까요?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합니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됐습니다.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3년 1개월 동안 이어졌고, 수많은 희생자를 남겼습니다.

 

제주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지는 아니었지만, 수많은 제주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입대해 전장으로 향했습니다. 일반인은 물론 학생들도 교복을 벗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습니다.

 

특히 제주 모슬포는 6·25전쟁 당시 중요한 후방기지 역할을 했습니다. 해병대 3기와 4기에는 제주 청년들이 대거 자원입대했고, 이들은 모슬포에서 훈련을 받은 뒤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해 전세를 뒤집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이후 모슬포에는 육군 제1훈련소가 설치돼 1956년 해체될 때까지 약 50만 명에 이르는 신병을 배출했습니다. 제주는 전쟁의 최전선은 아니었지만, 대한민국을 지탱한 중요한 후방기지였습니다.

 

제주에는 수많은 참전용사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주를 대표하는 호국영웅 4인은 지금도 매년 합동추념식을 통해 추모되고 있습니다.

 

이들 4인은 2002년 전쟁기념사업회가 선정한 '6·25전쟁 호국인물 100인'에 포함된 제주 출신 인물들입니다. 이후 제주를 대표하는 호국영웅으로 자리 잡았고, 신산공원 6·25참전기념탑에는 이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고태문 대위입니다.

 

고태문 대위는 1929년 1월 북제주군에서 태어나 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서 공업학교를 다녔습니다. 이후 육군에 입대해 6·25전쟁에 참전했습니다.

 

1951년 8월 제11사단 제9연대 제7중대 소대장으로 펀치볼 동부 884고지 탈환작전에 참가했고, 1952년 11월에는 제5사단 제27연대 제9중대장으로 강원도 고성군 351고지를 방어했습니다.

 

당시 고태문 대위가 이끄는 중대는 적 2개 중대의 집중 공격을 받았습니다. 고 대위는 죽음을 각오한 육탄전을 지휘하며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고, 끝내 진지를 지켜냈습니다.

 

그는 "진지를 고수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남긴 채 전사했습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중위에서 대위로 1계급 특진시키고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습니다.

 

 

강승우 중위도 제주를 대표하는 전쟁 영웅입니다.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출신인 강승우 중위는 1951년 부산 육군보병학교에 입학해 군사교육을 받은 뒤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1952년 10월 12일 백마고지 전투에서 제9사단 제30연대 제1중대 제1소대장으로 참전한 그는 중공군의 기관총 사격으로 아군 피해가 커지자 직접 화력 지원에 나섰습니다.

 

강승우 중위는 TNT와 박격포탄을 들고 적 기관총 진지 7m 앞까지 접근했습니다. 폭발물을 투척하려는 순간 총탄에 맞아 쓰러졌지만, 그의 희생 덕분에 오규봉 일병과 안영권 일병이 적 기관총 진지를 파괴했고 국군은 백마고지를 탈환할 수 있었습니다.

 

강승우 중위와 오규봉·안영권 용사는 모두 전사했습니다. 정부는 강승우 소위를 중위로 1계급 특진시키고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습니다. 세 사람은 지금도 '백마고지 3용사'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김문성 중위 역시 제주가 기억해야 할 이름입니다.

 

 

김문성 중위는 1930년 8월 25일 서귀포시 신효동에서 태어나 제주농업학교를 졸업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해병 간부후보생으로 입대해 해병대 장교가 됐습니다.

 

김문성 중위는 해병대 4기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뒤, 1951년 6월 강원도 양구 도솔산 1181고지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당시 그는 해병 제1연대 제3대대 제9중대 제2소대장으로 적의 핵심 진지 50m 앞까지 돌격하다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소대장의 전사를 목격한 해병대원들은 총돌격을 감행했고, 결국 도솔산 고지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부는 김문성 소위를 중위로 1계급 특진시키고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습니다.

 

한규택 하사의 희생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규택 하사는 1930년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에서 태어나 1950년 8월 해병대 3기로 자원입대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평안남도 양덕군 동양리 전투에서 기관총 사수로 참전한 그는 이미 적탄에 맞아 큰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적 기관총 진지를 잇달아 파괴했습니다.

 

또 다른 기관총 진지를 공격하던 중 다시 적탄을 맞고 전사했지만, 그의 희생 덕분에 해병대 제11중대는 무사히 철수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해 하사로 1계급 특진시켰습니다.

 

그런데 제주가 낳은 영웅은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군마 레클리스(Reckless)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레클리스를 미국 군마로 알고 있지만, 사실 레클리스는 1948년 제주에서 태어난 제주마 혈통의 암말입니다.

 

1952년 미 해병대에 배속된 레클리스는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하나였던 1953년 3월 연천 네바다 전초 전투에서 전설을 만들었습니다.

 

레클리스는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을 혼자 51차례 왕복하며 포탄 386발, 약 4톤의 탄약을 최전선으로 운반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부상병까지 태워 후송했습니다.

 

부상을 입고도 임무를 멈추지 않았던 레클리스는 해병대원들로부터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뜻의 '레클리스(Reckless)'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레클리스는 미국으로 건너가 동물 최초로 미 해병대 하사 계급을 받았고, 퍼플하트 훈장과 대통령 부대표창 등 수많은 훈장을 받았습니다.

 

 

최근 제주에서도 레클리스를 다시 조명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렛츠런파크 제주에는 레클리스 동상이 세워졌고, 지난 24일 열린 제21회 제주포럼에서는 '6·25전쟁 영웅 제주 군마 레클리스가 전하는 글로벌 협력의 메시지'를 주제로 특별세션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이름은 행사에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주 곳곳에는 호국영웅들의 이름을 딴 명예도로가 조성돼 있습니다.

 

고태문 대위를 기리는 '고태문로'는 그가 살았던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에 있습니다. 한동리 1694번지에서 8-12번지까지 이어지는 2.4㎞ 구간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조성돼 있습니다.

 

강승우 중위를 기리는 '강승우로'는 고향인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에 있습니다. 시흥리 1270-6번지부터 210번지까지 약 1.6㎞ 구간입니다.

 

김문성 중위를 기리는 '김문성로'는 그의 고향인 서귀포시 신효동과 하효동을 잇는 남선동산로 750m 구간에 조성돼 있습니다.

 

한규택 하사를 기리는 '한규택로'는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에 있습니다. 상귀리 385-5번지에서 하귀초등학교 인근 하귀2리 1908-2번지까지 약 1.3㎞ 구간입니다.

 

제주 도민들은 일상 속에서 이 길을 오가지만, 그 이름이 누구를 기리는지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도로명 하나하나에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청춘과 생명을 바친 제주 청년들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제주를 감귤의 섬, 관광의 섬이라고 기억합니다.

 

하지만 제주에는 또 하나의 역사가 있습니다.

 

나라가 가장 어려웠던 순간 자신의 청춘과 생명을 바친 제주 청년들이 있었고,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을 쉼 없이 달린 제주마도 있었습니다.

 

시간은 흘렀습니다. 참전용사들은 대부분 90세를 넘겼고, 당시를 직접 기억하는 이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이름 없이 싸운 수많은 영웅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습니다.

 

오늘 6월 25일,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전쟁 그 자체가 아닙니다.

 

고태문 대위, 강승우 중위, 김문성 중위, 한규택 하사, 그리고 제주 군마 레클리스. 그리고 제주 곳곳에 남아 있는 그들의 이름이 새겨진 길입니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길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 그것이 6·25전쟁 76주년을 맞아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의미 있는 추모일 것입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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