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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훈·위성곤 한목소리 유치전 ... 레클리스·김만일로 명분 쌓는 제주

 

한국마사회 제주 이전을 향한 제주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최근 제주에서는 유독 '말(馬)'이 자주 등장한다. 한국전쟁 영웅 군마 레클리스, 조선시대 헌마공신 김만일, 퇴역 경주마 보호 문제까지. 얼핏 보면 각각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바로 한국마사회 제주 이전이다.

 

제주도는 정부가 추진할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서 한국마사회를 가장 유력한 유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지난달 경기도 과천 한국마사회 본사를 찾아 우희종 한국마사회장에게 유치 제안서를 전달했다. 제안서에는 전국 유일의 말산업 집적지라는 제주의 강점이 담겼다.

 

오 지사는 당시 "제주는 국가 말산업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최적지"라며 한국마사회 이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같은 날 위성곤 제주도지사 당선인도 김민석 국무총리를 만나 한국마사회 제주 이전을 공식 건의했다.

 

위 당선인은 "제주는 11년 연속 말산업특구 평가 전국 1위를 기록한 대한민국 말산업 중심지"라며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다.

 

현직 도지사와 차기 도지사가 같은 날 한국마사회 이전을 위해 움직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정권과 정치적 입장을 떠나 제주 사회가 한국마사회 이전만큼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제주가 내세우는 가장 큰 강점은 말산업의 규모와 집적도다.

 

제주는 국내 말 사육 두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마사회 제주경주마목장을 통해 국내 경주마의 약 70%를 공급하고 있다.

 

말 생산과 육성, 조련, 경마, 승마, 관광까지 말산업 전 주기가 하나의 권역 안에서 이뤄지는 국내 유일의 지역이기도 하다.

 

렛츠런파크 제주와 제주경주마목장, 육성목장 등 관련 인프라도 이미 구축돼 있다.

 

제주도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실시하는 말산업특구 진흥계획 이행실적 평가에서도 2025년까지 11년 연속 전국 1위를 기록하며 대한민국 대표 말산업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때문에 제주에서는 한국마사회 본사가 생산 현장과 동떨어진 과천이 아니라 실제 말산업 중심지로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최근 제주가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산업 규모만이 아니다.

 

 

지난 12일 제주를 방문한 밸러리 A. 잭슨 주한 미해병대 사령관과 오영훈 지사의 면담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면담의 중심에는 한국전쟁 영웅 군마 '레클리스(Reckless)'가 있었다.

 

레클리스는 한국전쟁 당시 미 해병대 제5연대 소속으로 수천 발의 탄약을 운반하며 수많은 장병의 생명을 구한 제주 출신 군마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전쟁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오 지사는 잭슨 사령관에게 제주포럼 특별세션과 오는 10월 개최 예정인 '영웅 레클리스의 날' 행사 참여를 요청했고, 미 해병대는 적극 협력 의사를 밝혔다.

 

24일 제주포럼에서는 '제주 군마 레클리스가 전하는 글로벌 협력의 메시지' 특별세션도 열렸다. 세션에는 로빈 허튼 작가와 우희종 한국마사회장, 문영택 질토래비 이사장, 강민부 제주콘텐츠진흥원장 등이 참석했다.

 

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은 레클리스의 전쟁 영웅담을 소개했고, 권무일 작가는 조선시대 국가 위기 때마다 수천 필의 전마를 헌납해 헌마공신으로 불린 김만일의 삶을 조명했다.

 

조선시대 김만일과 한국전쟁의 레클리스.

 

수백 년의 시차를 두고 살아간 두 존재가 한자리에 소환된 이유는 분명하다.

 

제주가 단순히 말을 많이 키우는 지역이 아니라 대한민국 말 문화와 역사의 중심지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제주도는 말산업의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역사성과 문화성, 국제적 스토리텔링 자산까지 갖춘 지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마사회 이전의 명분을 쌓고 있다.

 

실제로 이런 논리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한국마사회의 역할은 단순히 경마를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말산업 육성과 정책 수립, 연구개발, 교육, 복지와 안전관리 등 국가 말산업 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가장 많은 말을 키우고 가장 오랜 말의 역사를 가진 제주가 본사 이전 후보지로 거론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한국마사회 제주 이전이 말산업 논리만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현실적인 벽도 적지 않다.

 

한국마사회는 임직원 약 5000명 규모의 대형 공공기관이다. 본사가 위치한 과천은 서울경마공원과 인접해 있고 수도권 교통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마권 발매 수익의 상당 부분도 수도권 경마장에서 발생한다.

 

직원들의 여건 역시 변수다. 과거 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전 과정에서도 가족 동반 이주와 교육, 주거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제주 역시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교통과 생활환경 문제를 완전히 비켜가기 어렵다.

 

유치 경쟁도 만만치 않다.

 

현재 경북 영천과 전북 김제, 전북 순창, 전남 담양 등도 한국마사회 유치전에 뛰어든 상태다. 특히 영천은 경마공원과 말산업 인프라를 앞세우고 있고, 김제 역시 말산업 육성을 지역 핵심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결국 한국마사회 이전은 단순히 말을 많이 키우는 지역을 선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 균형발전 정책과 정치적 판단, 공공기관 기능 재배치 방향이 함께 작용하는 결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제주가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다른 경쟁 지역들이 미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면 제주는 이미 국내 최대 말산업 생산지이자 말 문화와 역사를 품은 현장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가 답해야 할 과제도 있다. 과연 제주가 말산업의 미래까지 책임질 준비가 돼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난 21일 퇴역 경주마 '세광질주'가 제주대 구조마 보호센터에 입소했다.

 

세광질주는 2023년 도축 직전 구조돼 미국으로 돌아간 경주마 '마이 일루시브 드림'의 자마다. 형제마인 '우르스칸'과 '고흥의 스타'는 이미 도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에서는 매년 1200~1300마리의 경주마가 퇴역하지만 공공 차원의 보호 체계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말산업 중심지를 자처하는 제주라면 말을 생산하고 경주를 운영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퇴역 이후의 삶까지 책임질 수 있는 생애복지 체계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마사회 이전은 단순히 공공기관 건물 하나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다. 본사가 제주로 이전하려면 말산업 정책과 연구, 복지, 교육, 문화 기능까지 제주가 책임질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제주도 역시 국토교통부에 한국마사회를 2차 공공기관 이전 1순위 유치 희망 기관으로 공식 제시해 놓고 있다. 제주가 대한민국 말산업의 중심지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규모를 넘어 역사와 문화, 복지까지 아우르는 미래 전략이다.
 

김만일과 레클리스를 이야기하는 제주가 퇴역 경주마의 삶까지 책임질 수 있을 때, '말의 고장 제주'라는 이름은 한국마사회 이전을 이끌 가장 강력한 설득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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