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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장미의 이름⑫
미로에 갇혀 방황하는 인간들 ... 우주의 본질 이해하지 못한 채
같은 자리 맴도는 지적 한계 ... 100년 전 이상의 비명 같은 시

 

윌리엄 수도사와 그의 제자 아드소는 마치 피라미드 깊숙이 봉인해 놓은 파라오의 미라 도굴범 일당처럼 램프를 치켜들고 수도원 장서각의 ‘비밀의 방’을 찾아내려간다. 그 ‘비밀의 방’을 ‘아프리카의 끝(Finis Africae)’이라 명명한 것이 흥미롭다. 아마 14세기 유럽인에게 아프리카의 끝이란 아무도 도달할 수 없는 금단의 땅이었던 모양이다.
 

 

장서관 ‘아프리카 방’에 봉인돼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희극편’이다. 수도원장 호르헤에게는 파라오의 미라처럼 절대로 세상에 나가서는 안 될 책이며, ‘도굴범’ 윌리엄 수도사에게는 반드시 끌고나가 백일하에 드러내놓고 세상에 공개해야 할 책이다. 

윌리엄 수도사 개인의 공명심일 수도 있고, 칙칙한 중세유럽에 ‘웃음’을 전파해 사람들 얼굴에 웃음을 돌려줘야 한다는 사명감일 수도 있겠지만, 원작자 움베르토 에코는 윌리엄의 진의가 무엇이었는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아마도 공명심과 사명감이 혼합돼 있는 모양이다. 사람들의 욕망이란 대개 그러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희극편)을 아프리카의 끝 방에 농축우라늄처럼 은폐하고 있는 도서관장 수도사 이름이 ‘호르헤 부르고스(Jorge Burgos)’라는 것이 흥미롭다. 호르헤는 피라미드 설계자처럼 ‘비밀의 방’에 이르는 길에 마치 지뢰밭처럼 정교한 ‘미로’를 깔아놓는다.

호르헤 부르고스 수도사가 이름을 빌려온 실제 인물은 아르헨티나의 천재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ㆍ1899~1986년)다. 그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이었으며, 말년에 시력을 완전히 잃은 ‘눈먼 도서관장’이었다.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장서관과 호르헤 수도사는 그 자체로 에코가 동 시대의 작가 중 가장 존경했다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게 바치는 한편의 오마주이자 에코 특유의 ‘지적知的 유희극’이다.

흔히 ‘미로의 작가’라고 불리는 보르헤스의 대표작 「바벨의 도서관」에 등장하는 미로는 육면체의 방들이 끝없이 무한반복되는 공간이다. 미로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한 인간들은 영원히 방황할 수밖에 없으며, 보르헤스는 이 미로를 통해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헤맬 수밖에 없는 인간의 지적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성과 추론(논리)의 ‘대마왕’이라 할 만한 윌리엄조차 호르헤가 전개해 놓은 미로 속에 갇혀 ‘윌리엄답지 못하게’ 진땀을 흘리고 구덩이에 빠지고, ‘모양 빠지게’ 제자 아드소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미로를 통과할 수 있다. 보르헤스가 「바벨탑의 도서관」에서 보여준 ‘인간지성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미로를 통과한 윌리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 무시무시한 ‘거울의 방(Speculum)’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감춰둔 장서관의 비밀 구역인 ‘아프리카의 한계(Finis Africae)’에 도달하기 위해서 마지막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거울의 방’이라는 ‘육면체’는 거대한 거울들로 차 있다. 

그 거울은 평면거울이 아니라 볼록 거울과 오목 거울의 원리를 이용해 보는 사람의 형상을 기괴하게 늘리거나 뒤틀어버린다. 어두운 밤, 램프 불빛에 의지해 미로를 헤매던 윌리엄 수도사조차 거울에 비친 자신의 왜곡된 모습을 보고 ‘지옥의 유령’을 봤다고 혼비백산한다.

그렇게 최고의 지성이었던 윌리엄 수도사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감추고 있는 아프리카의 끝이라는 방에 들어서지 못한다. 아프리카의 끝이라는 방 이름은 결국 인간지성의 한계를 의미했던 모양이다.

최고의 기호학자인 에코에게 ‘거울’은 매우 중요한 연구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 에코가 「장미의 이름」에 거울의 방을 통해 ‘인간지성’의 한계를 조롱한 것은 자연스럽다. 에코가 들여다본 거울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것 같지만 사실은 좌우를 바꾸고 3차원의 실재實在를 2차원의 평면으로 압착하는 가장 완벽한 기만체계다. 통통한 오징어를 납작한 오징어포로 만들어 보여준다. 오징어포가 어디 오징어겠는가.

영화 속의 미로는 아르헨티나의 천재작가를 오마주했다고 에코 스스로 밝히지만, 이 마지막 거울의 방을 보노라면 문득 의아해진다. 보르헤스는 ‘육면체의 방들이 무한반복되는 출구 없는 미로’를 그렸지만, ‘거울의 지옥’을 그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간지성을 무력화하는 ‘무한반복되는 육면체의 미로’과 거울의 지옥을 모두 그렸던 ‘식민지 조선의 천재 작가’ 이상(1910~1937년)이 보르헤스 이전에 있었다.  

보르헤스의 「바벨탑의 도서관」이 1941년 작이고, 이상이 연달아 비명을 지르듯 발표했던 「건축무한육면각체(1932년)」 「거울(1933년)」 「오감도(1934년)」가 보르헤스를 앞선 것으로 보면, 혹시 보르헤스도 어렵게 이상을 구해 읽고 오마주하고, 에코의 「장미의 이름」도 에코가 이상에게 보내는 헌사獻辭처럼 보일 정도로 닮았다.

 


이상은 그가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사로 근무하던 시절(1929~1933년)에 「건축무한육면각체」와 「거울」을 발표했다. 이상이 현재 신세계백화점 명동 본점인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 설계와 감리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상은 미로 같은 육면체의 무한반복인 미쓰코시 백화점 설계도를 보면서, 그리고 완공된(1930년) 사람들을 ‘뺑뺑이’ 돌리는 출구없는 무한육면각체의 괴물을 보고 전율율한다. 

그러면서 미쓰코시 백화점 진열장과 벽면을 장식한 거울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상은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는 것이오…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고,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딱한 귀가 두 개나 있소…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오,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오…. 거울 속의 나는 참 나와는 반대요마는 또 꽤 닮았소”라는 비명 같은 시를 썼다( ‘나 같기는 하지만 내가 아닌 거울 속에 비친 자신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자아분열과 소통단절 사회’ .)

「날개(1936년)」에서 주인공이 몸을 던져버리는 곳도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이니 이상과 신세계백화점은 왠지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하필이면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하필이면 이상에게 ‘모던’의 절망감을 안겨줬던 신세계 그룹 주인이 쏘아올린 ‘탱크데이’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우리 모두 ‘사람의 머리(지성)’로는 도저히 그 출구를 찾을 길 없는 ‘거울로 둘러싸인 무한육면각체 미로’ 속에 갇혀버린 듯하다. 100년 전 내질렀던 이상의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본사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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