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수많은 새 생명의 탄생을 함께해 온 산부인과가 27년 만에 문을 닫는다.
제주시 일도2동 서해산부인과의원은 오는 8월 말 폐원할 예정이다. 1999년 문을 연 이 병원은 지난 27년 동안 제주지역 대표 분만 의료기관으로 자리해 왔다.
올해 1분기에만 이곳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237명이다. 같은 기간 제주 전체 출생아의 25.6%에 해당하는 수치로, 제주에서 태어난 아기 4명 가운데 1명꼴이다. 월별로는 1월 78명, 2월 67명, 3월 92명이 이 병원에서 출생했다.
지역 출산의 한 축을 담당해 온 병원의 폐원 소식이 알려지자 임산부들과 예비 부모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8월 출산을 앞둔 한 임신부는 "갑작스럽게 병원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될까 걱정"이라며 "출산 직전까지 진료를 받아온 의료진과 헤어져야 한다는 점도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번 폐원의 배경에는 단순한 경영 문제가 아닌 필수의료 인력 부족과 지역 의료체계의 구조적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경민 대표원장은 최근 입장문을 통해 "동료 원장과 둘이서 365일 당직을 서야 하는 상황이 수년째 이어졌다"며 "체력적·정신적 한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는 또 "분만 후 과다출혈로 생명이 위독했던 산모가 종합병원 전원을 거부당해 본원 수술실에서 6시간 동안 응급처치를 해야 했던 일이 있었다"며 "분만실 인력 부족이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요소가 됐다"고 토로했다.
김 원장은 "오랜 고민 끝에 30년 가까운 산부인과 의사 생활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며 "그동안 믿고 찾아준 산모들과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서해산부인과는 매달 30~50명의 신생아를 받아내며 제주 원도심권 분만을 책임져 왔다. 김 원장은 자신이 받아낸 아기가 성장해 다시 산모가 되어 병원을 찾았던 순간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기도 했다.
문제는 병원 한 곳의 폐업이 제주 의료체계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현재 제주시에서 분만실과 신생아실을 운영하는 산부인과 의원은 5곳이다. 서해산부인과가 문을 닫으면 4곳으로 줄어든다. 더욱이 도내 또 다른 산과 의료기관 역시 폐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분만 인프라 축소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 제주에서 분만이 가능한 종합병원은 제주대학교병원과 서귀포의료원뿐이다. 이 가운데 신생아중환자실을 갖추고 고위험 임산부 분만이 가능한 곳은 제주대학교병원이 유일하다.
이 같은 의료 현실은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난 바 있다.
지난 1월에는 조기양막파열 증세를 보인 임신 30주 산모가 도내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소방헬기로 이송되던 중 기내에서 출산하는 일이 발생했다. 제주에서는 고위험 임산부가 응급상황 발생 시 육지가 아닌 하늘길에 의존해야 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서귀포 지역은 서귀포의료원이 사실상 유일한 분만기관 역할을 하고 있어 산모들이 제주시로 이동하거나 육지 병원을 찾는 '원정분만' 문제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폐원을 지역 필수의료 붕괴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보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상급종합병원 지정 문제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지역 안에서 출산과 응급의료가 완결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분만은 수익성만으로 유지될 수 없는 대표적인 필수의료인 만큼 공공성 강화와 인력 확보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27년 동안 약 2만 명의 새 생명을 맞이한 분만실의 불이 꺼지면서 제주 사회는 또 하나의 질문과 마주하게 됐다. 저출생 시대에 아이를 낳을 사람은 줄어드는데, 정작 아이를 낳을 병원마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제주가 앞으로도 안전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지역으로 남을 수 있는지 근본적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