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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톺아보기] 하멜과 제주(2) 하멜 일행의 구세주, 와인

 

370년 전 제주 해안서 표류한 하멜 일행의 구세주는 포도주였다.

 

“한 통의 붉은 포도주를 들고 가서 우리가 바위틈에서 발견한 회사용, 은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들은 포도주를 맛보더니 좋은지 연거푸 술잔을 기울였는데 나중에는 대단히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와인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당시 제주 목사 이원진은 그들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난파선에서 건진 물건들을 하멜 일행에게 되돌려주었고 겨울 겹옷과 바지 신발 등을 제공했다. 제주도 사람들은 점차 하멜 일행을 관대하게 대했다. 지닌 음식이 베이컨과 고기뿐임을 알고, 너무 굶주린 상태에 많이 먹으면 탈이 날 것을 염려해 쌀죽을 조금씩 가져다줄 정도였다.

 

하멜은 자신의 표류기에 제주 목사였던 이원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총독(이원진 목사)은 우리의 슬픔을 달래주기 위해 잔치와 그 밖의 여흥을 베풀어주었다. 날마다 그는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국왕의 답신이 도착하면 우리가 일본에 보내진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교도로부터 기독교인이 무색할 정도의 후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그는 우리를 자주 밖으로 내보내 주었고, 그 앞에서 네덜란드 말과 조선 말을 써보도록 했다. 덕분에 조선말을 다소나마 이해하게 됐다. 가끔 작은 잔치를 베풀어주었다.”

 

유배 문화 전문가 양진건 제주대학교 명예교수에 의하면, 이원진 목사는 외국인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다 베풀었다고 한다. 그는 일본을 상대하는 동래부사를 역임한 적이 있어서 이미 서양인의 존재와 그들의 발전된 문화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가 있는 동안 6명씩 조를 짜서 산책도 하게 하고 빨래도 하게 했으며 심지어 조선말을 가르치며 유교 문화를 하멜 일행에게 알려주고자 제주향교에 보내주려고도 했다.

 

하멜은 자신의 표류기에 제주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섬에는 사람도 많이 살고 식량도 많았다. 말과 소가 많은데 이것들을 매년 임금에게 공납하고 있다. 주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고 가난하며 본토인들에게 천대받고 있었다.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높은 산이 하나 있고 나머지 산들은 민둥산이 대부분이다. 계곡들이 많아서 그곳에서 쌀이 재배되고 있었다.”

 

“말과 소가 많은데 이것들을 매년 임금에게 공납하고 있다”라는 기록은 진상(進上)에 대한 언급으로 보이며, “주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고 가난하며 본토인들에게 천대받고 있었다.”라는 기록은 하멜이 중앙에 대한 지방의 차별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또 높은 산은 한라산을 말하며 나머지 민둥산은‘오름’을 말하는 듯하다.

 

이 기록에서 “계곡들이 많아서 쌀이 재배되고 있다.”라는 기록은 의외다. 제주는 예로부터 논이 전 경지면적의 2.5% 수준이다. 나머지는 다 밭농사 지역이다. 서귀포시 하논이나 법환과 강정, 제주시 외도천과 유수암 지역만이 논농사 지역이다.

 

오히려 제주에서는 ‘나록’이라 불리는 ‘논벼’보다 ‘산디’라 불리는 밭벼가 더 많다. 여기서 말하는 이 장면은 하멜 일행이 신도리를 지나 제주시로 가면서 고산리 ‘한장동’을 봤던 기억을 서술하는 게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

 

이 일대는 제주도 해안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너른 들판이 형성되어 있는 곳으로, 예로부터 밭과 논이 많다. 넓다는 의미에서 ‘한장밭’ 혹은 ‘한장평야’라 부르기도 한다.

 

‘계곡들이 많다’라는 서술 역시 조금 낯설다. 제주에는 하천을 낀 계곡이 많지 않다. 아마 숲이 깊은 ‘곶자왈’을 오해해 그런 표현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하멜 일행이 지나갔던 제주도 서부 지역에는 한경-안덕 곶자왈과 애월 곶자왈이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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