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9 (화)

  • 맑음동두천 24.4℃
  • 맑음강릉 22.5℃
  • 맑음서울 25.1℃
  • 맑음대전 24.0℃
  • 구름많음대구 22.7℃
  • 흐림울산 21.6℃
  • 구름많음광주 24.3℃
  • 흐림부산 23.1℃
  • 맑음고창 23.0℃
  • 구름많음제주 22.4℃
  • 맑음강화 23.4℃
  • 맑음보은 22.9℃
  • 맑음금산 24.3℃
  • 구름많음강진군 25.2℃
  • 흐림경주시 22.5℃
  • 구름많음거제 22.2℃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85) 거지와 중국문화(4)

빈자(貧者)가 말했다.

 

“응응. 주인에게 쫓겨나게 되니 말이 많아지고 비웃음 사게 됐구려. 마음에 품은 바를 다 말하려 하오. 옛날에 내게도 조상이 있었소. 현명한 덕을 숭상하여 요임금을 보좌할 수 있었고 법칙 준수를 맹세하였소. 흙 계단 초가집, 조각도 장식도 없는 곳에서 살았소. 말세에 방종해지고 혼미하게 되었소. 탐욕스러운 무리가 많아지고 가난한 자가 부귀를 쉽게 얻게 되었소. 우리 조상을 경시하며 오만하고 방자하게 굴었소. 으리으리한 누각, 화려한 집을 드높이고 술이 흐르는 연못에서 고기를 쌓아 안주 하였소. 홍곡과 같이 높이 날아 멀리 떠나서 그 조정에 처하지 않았소. 내 몸을 세 번 반성하기에 나는 잘못이 없다 말할 수 있소. 당신의 집에 살았던 게 태산 같은 복이었소. 내 큰 덕은 잊고 내 작은 빈한함만 생각하는 게요. 추위와 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습관을 만들 수 있었고, 추위와 더위에 잘못되지 않으니 신선처럼 장수할 수 있었소. 하걸, 도척이 주의하지 않고 무뢰배들이 무례한 짓을 하지 않았소. 모든 사람이 층층이 쌓인 곳에서 살았지만 당신은 홀로 탁 트인 곳에서 살 수 있었소. 모든 사람이 근심걱정 했지만 당신 홀로 우려하지 않았소.”

 

말을 다 마치고 엄숙하게 바라보았다. 양손을 들었다 내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당신을 떠나 수양산으로 갈 것이오. 고죽의 아들 둘이 나와 동행할 것이오.”

 

내가 자리를 비켜서서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다.

 

“두 번 잘못은 하지 않을 것이오. 의로움을 들었으니 탄복하오. 그대와 오랫동안 살아도 어떤 싫증도 나지 않을 것이오.”

 

빈자는 떠나지 않고 나와 노닐며 쉬었다.

 

위 문장은 500여 한자(漢字)로 된 변려문(騈儷文)이다. 이를 빌어 거지와 이웃에 사는 사람의 느낌과 약자에 대한 동정심을 표현하였다. 세간의 빈부 차별에 대한 비평하는 뜻을 표출하고 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정의가 매우 진진하고 간절하다. 대단히 가치 있는 문장이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마침내 거지와 친구가 되었다.

 

「축빈부」에서 나타난 사인 학자의 거지에 대한 소박한 동정 심리는 바로 인류가 약자를 동정하는 가장 원시적이며 가장 기본적인 세속의 심리상태다.

 

거지 사회의 주체는 이미 흑사회의 한 부류가 된 현대에서도, 세상 사람들의 거지에 대한 복잡한 심리 중에도 여전히 그러한 연민과 동정의 심리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인류의 동정심이 없다면 거지들의 여러 사기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의 선량하고 순박한 마음을 반복적으로 더럽힐 수는 없을 터이다.

 

원대 작가 석군보(石君寶)는 당대 백행간(百行簡)의 전기소설 『이왜전(李娃傳)』의 제재를 골라 창작한 잡극 『이아선화주곡강지(李亞仙花酒曲江池)』(간칭 『곡강지(曲江池)』), 같은 제재를 가지고 있는 원대 고수(高秀)의 극 『정원화풍설타와관(鄭元和風雪打瓦罐)』, 명대 설근연(薛近兗, 일설에는 서림徐霖)의 전기 『수유기(繡襦記)』, 주유돈(朱有敦)의 극 『곡강지(曲江池)』 등은 체재, 내용, 줄거리, 인물 형상 등은 바뀌었지만 기녀와 어느 시기에 거지로 전락한 주인공이 서로 지극히 사랑한다는 이야기의 대강은 대체로 변하지 않았다.

 

이런 전기성 이야기 중에서 작가들은 거지에게 부여한 품성, 인격 형상은 대부분 아름답다. 약자에 대한 동정으로 이야기에 사람의 심령을 울리는 강동을 더해주고 있다. 그 결론은 독자들에게 순응하기 위하여, 독자들의 필연적인 심리 추세에 맞추어 영화부귀를 누리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예를 들어 송원 화본(話本) 『김옥노봉타박정랑(金玉奴棒打薄情郞)』 시작 부분은 이렇게 돼있다.

 

“만약 ‘양천(良賤)’ 두 글자를 세보면 창(娼, 창녀), 우(優, 광대), 예(隷, 종), 졸(卒, 졸병)1) 4가지가 천한 부류라 말할 뿐 거지는 들어있지 않다. 거지는 돈만 없을 뿐 몸에는 허물이 없게 보인다. 예를 들어 춘추시대 때에 오자서가 난을 피하여 오시에서 퉁소를 불며 구걸하였고, 당대에는 정원화가 배우(노래하고 몸을 파는 어린 남자)가 되어 『연화락』을 불렀었다. 나중에 명성을 얻고 부귀를 얻어 비단 이불을 덮고 잘 수 있었다. 이 모두가 보통을 뛰어넘는 거지다. 이런 부류는 사람들에게 천시를 받기는 하지만 창녀, 광대, 종, 졸병하고는 다르다.”

 

이런 심리상태는 사인과 평민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었던 기본 심리라 하겠다.

 

이것을 고려하면 『김옥노봉타박정랑』 이야기 중의 늙은 ‘단두(團頭, 거지의 우두머리)’ 김노대(金老大)의 형상과 처지에 대하여 작자는 동정할 만한 색채를 부여하고 있다. 단두를 계승한 김나자(金癩子)는 이야기 중의 ‘도구’가 되어 줄거리를 심화하는 작용을 하는, 김노대의 인격 형상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중요한 인물이다. 여기에서 김나자의 인격 형상은 더 이상 동정을 살만한 약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싫어하는 불량배 형상이다.

 

 

두 가지 거지의 형상이 더불어 존재하는 것은 중국거지사에 보이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중국 거지의 타락과 변질, 분화는 송원(宋元)시기에 시작되어 명청(明淸)시기에 완성되었다. 김나자가 선동해 늙은 단주 집 앞에서 소란을 묘사를 한 번 보자.

 

“구멍 난 모자에 홑 윗옷은 묶고 옛 깔개는 

 

낡은 모포로 맞추고 짧은 대나무에 깨진 그릇 매달았다. 아저씨, 아주머니 부르고 부자 어르신 불러재끼며 문 앞에서 슬쩍 보면서 떠들어 댄다. 뱀을 부리고 개와 장난치고 원숭이를 부리며 입으론 각종 재주 부린다. 판을 두들기며 양화를 부르고 욕설 난무해 요란스럽기 그지없다. 벽돌을 부숴 얼굴에 분칠하고 참지 못할 추태를 부린다. 일부 나쁜 놈들이 무리를 이루니 종규(鐘馗)조차도 거둘 수 없다.”

 

실로 본바닥 건달들이 부리는 난장판이다. 소란을 피우는 거지들도 김노대가 단두로 있을 때에 치부하게 만든 원래 구성원이었다. 이제, 김노대가 입신출세해 사인세력과 혼인을 맺었으나 아사들의 눈에는 여전히 약자로 남아있다. 그 김나자와 여러 거지들의 형상 역시 김노대 이전의 역사 속 모습이요 증거다. 이런 변화는 사인들은 구체적인 거지 개체를 동정하는 것일 뿐 절대로 거지 단체를 동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인문 의식은 서로 모순되면서도 동시성, 호환성이 있어 모순을 해결하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사람과 사건에 따라 구체적으로 구별하면서 대우하고 있다.

 

작품 제재와 사상의 차이에 따라 거지에게 다른 인격을 부여한다. 이를 빌어 작가의 인문 사상과 처세 관념을 표출하기도 한다. 동시대에 청대 작가가 창작한 『금옥몽(金屋夢)』(속 『금병매(金甁梅)』)과 『걸아행호사,황제주매인(乞兒行好事,皇帝做媒人)』은 다른 사상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창(娼)은 창기(娼妓)다. 현대의 기녀(妓女)와는 다소 다른 점이 있다. 고대의 우(優)는 광대(戱子, 배우)로 모든 것을 다 공연하였다. 예(隷)는 통상적으로 아문(衙門)에서 직분을 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아역(衙役), 포쾌(捕快, 포리) 등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여기서는 ‘종’이라고 했다. 졸(卒)은 보졸(步卒), 사병(士兵)이다. 여기서는 졸병(卒兵)이라 했다. 고대 시정(市井)에서는 사회 각 계층을 귀천고하에 따라 9개의 등급으로 나누었다. 나중에 사회 분공이 번잡해짐에 따라 다시 나누어 상구류(上九流), 중구류(中九流), 하구류(下九流) 관념이 나타났다. 창(娼), 우(優), 예(隷), 졸(卒)은 하구류(下九流) 등급에 속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국립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추천 반대
추천
3명
100%
반대
0명
0%

총 3명 참여


배너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