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년 사이에 민속학이 중국 인문과학계에 새로 각광을 받고 있다.
“문학은 사실과 영혼이 서로 부합한 이후의 재현이다”(Honoré de Balzac)라고 하기도 한다. 중국 대륙의 당대 거지 조사 중에 당대 거지의 구걸, 축하, 욕, 오락에 대한 가요(歌謠)를 주의해 수집하면서 “거지 가요는 인류사에서 거지가 생긴 이래 존재하고 전해져 내려오며 발전한 것이다”1) 라고 생각한다.
거지 노래는 이렇다.
“선의는 복을 받고 악의는 귀신이 용서하지 않는다네. 부처를 믿으면 착한 일하고, 내가 가난뱅이라는 것을 불쌍히 여기네. 많은 돈을 바라지 않소, 오 푼이면 되오. 당신이 내게 돈을 주면 하늘이 평안하게 보우할 것이외다.”
이것은 남경 계명사(雞鳴寺) 부근에서 ‘무릎 꿇고 앉아서 구걸하는’ 거지들의 노래다. 기도하러 사찰에 가는 사람의 감사를 드리는 마음에 맞추면서 부처를 빌어 구걸하고 있다.
“대나무 판을 치면서 거리에 왔네요, 한 길 두 곁채 장사 잘 되네요. 황금 글씨 은 간판, 동쪽에서 줍고 서쪽에서 당기 듯 걸려있네요. 요 며칠 내가 오지 않으니, 상점 주인이 부자 됐다 하네요. 주인이 부자 되면 나도 덕을 보고, 당신은 교자를 먹고 나는 탕을 마시고. 한 번 절하면 금이 오고 두 번 절하면 은이 오고, 마음씨 좋은 주인께 삼 배 하리다. 마음씩 좋으신 분 넓은 도량, 유비 어른 사천에 있네요. 사천에 앉아 있는 한왕 유비가 오니, 3천 6백 세를 살 수 있네요.”
북경 서성구에 늘어선 크고 작은 상점을 돌아다니며 잡기하면서 노래하는 거지의 노래 가사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맞추고 있다.
상대방도 한두 푼을 주면서 거지를 돌려보내어 길하기를 바란다. 거지들을 화나게 만들어 문 입구에서 불손하게 굴면서 손님을 쫓아내게 하지 않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까치 나뭇가지에 앉아 짹짹 울고, 봉황은 짝을 지어 하하 웃네요. 주인은 천지가 밝을 정도로 경사로울 거요, 경사스런 일이 생기는 나의 세 마디 축하를 들어보소. 하나는 부부가 화목하여 금실 좋게 즐겁게 사시고, 둘은 부부께서 부자 되어 참깨가 꽃을 피워 착착 높아지이소, 셋은 오는 해에 귀한 아들 낳아 일찍 용의 알을 품을 수 있기를 바라오이다.”
이것은 안휘 방부(蚌埠) 향촌 거지가 혼례를 축하하며 부르는 노래다.
사람들은 재물을 나누어주고 함께 즐기기를 좋아하는 시기이기에 동냥도 평상시보다는 쉽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으면 거지도 상대를 후회하게 만드는 시를 읊는다. 태현(泰縣)에서 유행하는 시는 이렇다.
“형제여 형제여 당신을 축하하오, 집 안과 밖으로 예물이 들어오네요. 축하주 남겨두고 자시지 못하게 하니, 혼자 술 마셔 멍청해졌네요. 멍청해져 길 가다가 강에 빠져, 물에 빠져 죽어 과부만 남겨두게 될 거요.”
이렇게 무뢰한, 불량배 같은 거지의 본성도 철저히 드러내기도 한다. 거지의 정신세계와 가치 관념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자신들이 짓고 노래한 오락성 짙은 즉흥적인 가락보다 더 한 것은 없다. 예를 들어 제남 거지에게서 유행하는 말이다.
“집이 있으면 집을 나가고, 집이 없으면 집을 찾아야 하리니. 형제자매가 한 데 뭉치네, 천하의 먹이를 찾아다니는 사람은 한 가족일지니.”
오늘날 개방의 기본 구성원은 대부분 이러한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다.
“손은 살아가는 재신, 흔드는 손은 귀중한 재물. 얼굴 두꺼운 게 뭐 두려우랴, 부끄러움 잘 타면 구걸하지 못하는데.”
“팔선(八仙)이 동쪽으로 가면 나는 서쪽으로 가고, 한 세상 거니니 유쾌하지 않은가. 2년 3년 밥을 빌어먹어도, 현장(縣長)은 하라 줘도 나는 싫다네.”
주주(株州)와 덕주(德州), 담성(郯城)에서 채록한 가요다. 오늘날 거지의 관치 관념과 심리 상태를 솔직하게 노래하고 있다.
거지의 직업화 추세는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현장이나 대학교수는 그저 고정된 수입밖에 없지 않은가!
호남성 장사 망성(望城)향의 A도시에서 구걸하는 거지는 많으면 매월 천만 원 이상, 적어도 2,3백 수입은 된다. 광주에서는 화교 노인이 거지에서 150만 원 상당의 태환권을 보시하기도 하였다. 서로 비교하면 거지들이 득의양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분배제도의 불공평, 불완전이 거지에게 왜곡된 심리를 조장하고 비정상적인 변태적 심리를 가지게 만들었다. 거지는 다른 직업보다 힘이 덜 들면서도 실제적인 혜택은 많다. 이러한 현상이 거지의 숫자가 늘어나고 직업화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거지의 인문의식
고대에 사인(士人)이 묘사한 거지는 대부분 의식을 해결하지 못하여 길거리를 헤매게 된 원시형 거지다. 최하층 빈민이었다.
중국문학사상 거지를 묘사한 비교적 전형화된 작품은 일반 선집에 수록되지 않은 양웅(揚雄)의 「축빈부(逐貧賦)」이다. 송대 홍매(洪邁)는 『용재속필(容齋續筆)』 15권에서 말했다.
“한문공(한유)의 「송궁문(送窮文)」, 유자후(유종원)의 「걸교문(乞巧文)」은 모두 양자운(양웅)의 「축빈부」를 본뜬 것이다. 한유의 「진학해(進學解)」는 동방삭의 「답객난(答客難)」을, 유종원의 「진문편(晉問篇)」은 매승의 「칠발(七發)」을, ……모두 문장에 묘미가 있다. 「축빈부」는 거의 500글자나 된다. 『문선』은 수록하지 않았고 『초학기』에는 100여 자가 수록돼 있다. 오늘날에도 보지 못한 사람사람이 있을 것이다.”
‘축빈부’는 광범위하게 전파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홍매가 초록한 「축빈부」 문장은 다음과 같다 :
양웅이 세속을 벗어나 은거생활을 하였다. 왼쪽은 높은 산이요 오른쪽은 광야다. 담 밖에 이웃인
거지는 빈한하기 한량없다. 예의가 박약하나 여럿이 더불어 살았다. 실망해 지향도 사라지니 빈자(貧者)를 불러 말했다.
“그대는 여섯 가지 악습이 있어 황야에 버려진 거요. 용렬한 고용인이 되기를 즐기니 도살하는 징벌이 내려진 것이오. 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도 흙과 모래를 가지고 놀게 된 것이오. 모여 사니 이웃이 아닌데도 집이 연이어지게 되었소. 은혜를 깃털처럼 가볍게 대하고 의를 망사처럼 얇게 여기고, 들어가는 데에도 덕이 없고 물러나는 데에도 예의가 없소. 오랫동안 손님으로 머무니 그 목적이 무엇이오.
모든 사람이 비단옷을 입는데 나만 헌 갈옷을 입소. 모든 사람은 쌀과 기장쌀인데 나만 명아주 음식을 먹소. 가난하여 진귀한 보물이나 노리개가 없으니 어찌 접대하고 즐기겠소. 종족의 연회는 즐거운 자리이나 즐기지 못하오.
맨발로 나아가 고용일하고 집에서는 낡은 옷으로 갈아입소. 몸은 각종 노역을 지니, 손과 발은 굳은살이 배겼소. 늘 김매고 북을 주니, 이슬에 몸 젖고 옷 제대로 걸치지 못하오. 친구는 절교하고 관직은 늦어지고 있소. 잘못이 어디에 있는 것이오, 당신 때문이오.
당신을 피하려 곤륜산 정상까지 왔는데 당신은 나를 따라 높이 날아서 하늘까지 왔소. 당신을 피하려 산에 올라 동굴에 숨었는데 당신은 또 나를 따라 높은 등선까지 올랐소. 당신을 피하여 바다에 이르러 둥둥 떠 있는 측백나무 배를 탔는데 당신은 또 나를 따라 잠기는 듯 떠오르는 듯 하고 있소.
내가 가면 당신이 움직이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당신도 멈추오. 다른 사람은 놔두고 나를 쫓는 까닭은 무엇이오? 이제 당신 떠나주시오, 다시는 오래 머물지 마시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中國的乞丐群落』(劉漢太, 江蘇文藝出版社)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국립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