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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장미의 이름⑧
14세기 교회 이단심판관들 ... 우리 혹은 적 이분법적 사고
알고리즘 제공 파편적 정보 속 ... 서로가 서로를 이단으로 매도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저서 「장미의 이름」의 시대적 배경으로 못 박은 시점은 1372년 11월이다. 이 시점으로부터 약 36년 전, 참혹했던 십자군 전쟁(1095~1291년)이 십자군 최후의 보루였던 이스라엘 항구도시 아크레(Acre)가 마침내 함락되면서 사실상 교황청의 패배로 끝난 상태였다.

 

 

십자군 광풍이 남긴 것은 교황청 권위를 향한 의문과 쇠퇴였으며, 교황의 절대 권위와 부패에 항거하는 루터의 종교개혁(1517년)의 잉태였다. 「장미의 이름」을 모티브로 삼은 이 영화의 배경 역시 11월 이탈리아 북부 수도원을 짓누르는 음산한 기운만큼이나 을씨년스럽고 불온한 시대였다.

기존의 규범과 가치관은 붕괴했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도덕적 공백과 혼란을 의미하는 ‘아노미(Anomie)’야말로 14세기 교회가 처한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 난세가 되면 항상 자신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흔드는 온갖 세력이 등장한다. 14세기 교회는 교리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라 불릴 만큼 수많은 교단이 난립했지만 사실상 ‘빅4’라 불릴 만했던 4개의 교단이 사상적으로 ‘보수’와 ‘진보’ 진영 싸움을 벌였다.

수도원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베네딕토 교단(Benedictines)은 유럽 수도원 문화의 기틀을 닦은 최대의 정통교단이다. 베네딕토 교단의 모토는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다. 대개 이렇게 2가지 가치가 동원되는 경우 방점은 뒤에 놓은(일하라) 말에 찍히게 마련이다.

박정희 시대의 구호였던 ‘싸우면서 일하자’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이처럼 베네딕토 교단은 ‘일하라’는 모토 아래 막대한 교회의 부 축적을 가능하게 했다. 보수 교단의 심장이기도 했던 이 교단은 십자군 전쟁의 실피로 교황의 권위가 흔들렸던 14세기 이후 본격적인 도전을 받는다.

베네딕토 수도원에 이단 심판관 베르나르도 귀도를 파견한 도미니코 교단(Domini cians)은 ‘설교자들의 수도회’로 불린다. 그들이 내거는 모토는 ‘진리(주님의 뜻인 그 진리)를 깊이 생각하고 그 살핀 바를 세상에 전하라(Veritas, Contemplari et contemplata aliiis tradere)’이다. 이들은 이단을 걸러내고 교리를 방어하기 위해 지적知的 무장에 매진했다. 

‘신학대전神學大典’을 집필한 교리의 최고 권위자라 할 만한 교부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ㆍ1225~1274년)가 도미니코 교단의 상징적 인물이다, 학구적인 성격이 강해 대학 교육의 중심에 있었으며 종교재판의 재판관을 전문적으로 담당했다. 요즘으로 치자면 학계의 전문가, 권위자나 언론의 역할쯤 될 듯하다. 대개는 보수적인 베네딕토 교단과 ‘원 팀’을 이뤘다.

 


반면에 윌리엄 수도사(숀 코너리 분)가 속한 프란치스코 교단(Franciscans)은 인위적인 소유를 버리는 무소유와 청빈을 통한 ‘평화와 선善(Pax et bonum)’을 전면에 내건다. 도심 속에서 민중과 호흡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예수는 옷 한 벌조차 소유하지 않았다’라는 청빈 논쟁으로 교황청과 극심한 갈등과 빚고 베네딕토 교단을 상대로 교회 주도권 투쟁을 벌였던 교단이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윌리엄 수도사가 호르헤 수도사(표도르 샬라핀 주니어 분)와 벌이는 ‘예수님도 옷이 한 벌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했냐 아니냐’는 논쟁은 실제로 교단의 운명을 건 논쟁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세속으로 치자면 진보 세력이다.

돌치노 교단(Dolcinists)은 프란치스코 교단의 청빈 정신이 변질되거나 과격화된 세력이다. 각자 청빈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교회 전체가 청빈해야 한다며 교회의 재산을 부정하고, 폭력혁명적인 방식으로 교황청 타도에 나섰다가 결국 이단으로 규정돼 교황청에 의해 무력 진압된 교단이다.

어쩌면 공산주의의 원형을 제시한 교단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돌치노 수도사 레미지오가 이를 부드득 갈며 외치는 ‘회개하라(Poenitentiagite)’가 곧 이 교단의 모토다. 우리 정치사에서 헌법재판소에서 해산명령을 받은 급진좌파 ‘통진당’쯤 될지도 모르겠다.

베네딕토와 도미니코가 보수 진영을 이루고, 프란치스코와 돌치노가 진보 진영을 이뤄 팽팽한 접전을 벌이다 돌치노가 이단으로 몰려 강제해산되면서, 교회의 세력균형이 보수 쪽으로 기울고 사람들의 마음은 교회로부터 더욱 멀어진다.

그렇게 14세기에 교회의 권위와 신뢰가 붕괴한 것처럼,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가 권위와 신뢰를 상실하면서, 영화 속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아수라장이 똑같이 재현된다. 21세기에 종교나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서사 구조가 힘을 잃고, 각자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지만, 사실 14세기 교회가 겪은 혼란도 교회의 권위와 신뢰가 사라진 탈진실의 혼란이었다.

우리는 수많은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파편화한 정보 속에서 윌리엄 수도사처럼 무엇이 진짜 ‘기호記號’이고 무엇이 가짜인가를 두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단’이라고 매도한다. 

14세기 교회를 향한 믿음이 붕괴하자 ‘교리의 수호자’라던 이단심판관들이 ‘교황청의 개’라고 불린 것처럼 우리의 현주소도 불신투성이다. 기존 정치 시스템(입법부ㆍ사법부)은 물론 언론과 전문가, 권위자를 향한 불신이 극에 달하면서 합리적 토론보다는 14세기 교단들처럼 ‘정치적 부족주의’나 극단적인 확증편향이 기승을 부린다.

우리는 토마스 아퀴나스급 전문성과 권위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단 심문관과 광신도들의 모습과 소름 끼치게 닮아 보인다.


영화 속에서 이단심판관 베르나르도 귀도는 아무나 이단으로 몰아 화형대에 매달아 불태우고, 교회 보수 기득권을 수호하는 베네딕트 교단의 호르헤 수도사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웃음’을 통제하고 모든 교인에게 ‘두려움’을 심는 데 올인한다.

공포를 통해 교회를 향한 모든 비판을 봉쇄한다. 우리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킬 수만 있다면 특정 집단의 혐오를 부추기고 ‘공포 마케팅’을 통해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통제를 시도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14세기 중세유럽 교단들이 벌였던 난장판 교리투쟁은 결국 교회가 공멸하는 종교개혁 전쟁을 불러들이고야 말았다. 나라야 거덜이 나든 말든 상대를 향한 조롱과 적개심만 가득 찬 우리의 부질없는 이념투쟁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지 못내 불안하다.

영화 ‘장미의 이름’은 교리의 ‘아노미’ 시대를 살았던 14세기 수도사들의 망령이 정치의 아노미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전하는 ‘영상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본사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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