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대정읍 신도2리 해안에 ‘하멜 일행 난파 희생자 위령비’가 있다. 이곳은 남방큰돌고래가 매일 두 차례 보인다는 대정읍 노을해안로에 있다. 남방큰돌고래를 보려고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어느 관광객은 “아, 여기가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하멜이 표류해왔던 곳이네!”라고 하며 관심 있어 했다. 이어 그는 현행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하멜 일행이 우리나라에 표류해왔다. 하멜 일행은 15년 동안 억류되었다가 네덜란드로 돌아가 하멜 표류기를 지어 조선의 사정을 서양에 전하였다”라고 적혀 있다고도 말했다.
1653년 하멜은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대만을 경유 일본 나가사키로 출항했다. 배에는 목향 2만 근, 명반 2만 근, 용뇌, 대만산 녹피(사슴 가죽) 2만 장, 영양 가죽 3천 장, 산양 가죽 3천 장, 설탕 9만 근 등 일본과 거래할 화물이 가득했다. 일본으로 가던 중 태풍을 만나 닷새 동안 악전고투 끝에 배는 부서졌고, 일행은 지금의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해안에 표착(漂着)했다. 선원 64명 중 선장을 포함한 28명이 죽고 36명이 살아남았다.
하멜은 처음부터 본국으로 돌아 갈려는 생각밖에 없었다. 당시 하멜은 23살이었고 훗날 1666년 탈출할 때는 36살이었다. 당장은 죽는 줄 알았다. 본국에 있을 때‘고려인들은 인육을 구워 먹는다’라는 이야기만 듣고 조선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죽음의 공포심을 느꼈을 정도였다.
“약 2000명 군인이 몰려왔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말을 타고 있었고, 일부는 말을 타지 않은 채 마치 전투 대열처럼 우리의 천막 앞에 늘어섰다. 오후가 되자 그들은 여러 명이 손에 밧줄을 들고 다시 왔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모두 목매달아 죽이는 줄로만 알고 대경실색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밧줄로 난파한 우리 배로 달려가더니 그들에게 유용한 물건을 건져 올리는 행동을 보고서야 우리는 안심했다.”
하멜은 1630년 네덜란드 홀란트 지역에서 태어났다. 건축가의 아들이고 대부가 시장이었으며 집안은 부유했다. 하멜의 동생은 동인도회사 직원이었으며, 삼촌은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항구를 건설하는 기술자였다. 그는 21세 때 동인도회사에 취직, 아시아 본부가 있는 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에서 3년간 서기로 근무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주로 극동 원양항해를 다녔다. 당시 원양항해는 살아 돌아올 확률보다 죽어 시체도 못 찾을 확률이 더 컸다고 한다. 동인도회사 출신 선원 중 살아서 본국으로 돌아간 네덜란드인은 1/3밖에 안 되며, 그나마도 평균 수명이 40세였다. 동인도회사는 사실상 네덜란드에서 가장 멀리 항해하는 회사여서 살아서 돌아갈 확률이 극도로 낮았다. 심지어 범죄자 출신도 자주 뽑았다고 하는데, 안 그러면 선원을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멜은 300굴덴(이전 네덜란드 화폐단위)이나 하는 집을 살 수 있는 부유한 건축가 집안 출신이었다. 그래서 말도 안 통하는 오지에 남기보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편이 더 좋았다고 여겨진다. 만약 하멜 일행도 조선에 정착할 마음이 있었다면 박연만큼이나 귀한 대접을 받았을지 모른다. 다만 약간의 차이는 있다. 병서(兵書)에 재주가 있고, 대포를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던 박연(얀 얀스 벨테브레)은 당시 북벌을 계획하던 조선에 큰 힘이 되었지만, 하멜은 서기라 무기 쪽은 아는 바 없어 조선에서 원하는 기술을 얻을 수 없었다.
조선 이름 ‘남하면’, 하멜의 조선에 대한 기록은 다소 거칠다. 그도 그럴 게, 그간 자신의 고생담을 강조해야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류 직후 "우리는 이교도들에게 기독교도로서 무색해질 정도의 후한 대접을 받았다"라고 서술하는 등 호의적인 내용도 있다. 특히 당시 제주도민들과 제주 목사 이원진에 대한 기억은 매우 좋은 편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