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불법계엄의 그 밤으로부터 어느새 1년이 흘렀다.
계엄 선포 소식이 휴대전화 화면을 덮어버리던 그 밤, 광장으로 나온 건 어른들만이 아니었다. 응원봉을 들고 서 있던 청소년들, 떨리는 손으로 헌법 전문을 검색해 내려가던 아이들, 서로의 메신저 창에 “이건 아니지 않아?”라고 묻던 얼굴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민주주의가 끝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그래도 이건 지켜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빛이 어둠을 밀어냈고 우리는 그 시간을 ‘빛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12.3 불법계엄은 헌법 질서가 무너질 뻔한 내란에 가까운 사태였다.
군이 다시 정치 전면에 호출되고 비상 권력이 절차를 뛰어넘어 행사될 수 있었던 위기였다. 그리고 그 위기 앞에서 민주주의를 지켜 낸 것은 이 땅의 소중한 민주시민들이었다. 그 후 1년이 지난 지금,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우리는 교실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다음 세대가 스스로 민주주의를 지켜낼 힘을 갖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민주시민교육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라고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다.
헌법이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지, 권력이 어떻게 나뉘고 서로를 견제하는지, 다양성과 인권, 협력적인 의사소통 방법,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배우는 교육이다. 그런 의미에서 12.3 불법계엄은 피해야 할 ‘정치’가 아니라, 오히려 반드시 다루어야 할 민주시민교육의 주제다. 정당 간 이해관계를 두고 벌이는 싸움과 헌법을 무너뜨리려 한 시도는 같은 차원이 아니다. 이 둘을 모두 ‘정파적 대립’으로 묶어 버리면 아이들 눈에는 내란과 민주주의 회복이 그저 시끄러운 소음으로만 보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계엄 한 달 뒤 김광수 교육감은 기자 간담회에서 학생들이 탄핵 찬성 집회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어른들 싸움’으로 규정하며 “학생들은 가급적 안 배우길 바란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우리 교육이 여전히 ‘정치’와 ‘민주시민교육’을 한 덩어리로 보는 오래된 시선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쉽다.
오히려 헌법이 무너질 뻔한 사건을 직면하지 않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내란 사태와 민주주의의 회복, 그 과정에서 시민과 청소년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차분히 이야기하는 것, 무엇이 헌법에 맞고 무엇이 어긋나는지를 함께 짚어 보는 것, 허위정보와 분열의 언어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토론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정치로부터 교육을 지키는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이다.
지난 4월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방송 시청에 대해 교육부가 법령 위반 가능성을 거론하며 경고했음에도, 전국 10개 시·도교육청은 민주시민교육의 측면에서 시청을 권고하는 공문을 관할 학교에 보냈다. 방송 시청을 강제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교육부의 경고 앞에서 교육청이 일선 학교와 교사의 방패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제주를 비롯한 대구, 경북 등 7개 교육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교육부 입장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공교롭게도 해당 교육청들은 모두 지난 선거에서 보수 단일화 혹은 중도·보수 후보로 분류되어 당선된 지역이었다. 윤석열 교육부가 집권 이후 가장 먼저 서둘러 한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민주시민교육과를 폐지하는 일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제주는 4·3의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섬이다.
국가폭력이 무엇인지, 민주주의의 부재가 개인과 마을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학교민주시민교육 진흥 조례」가 제주에 있다는 사실은 각별하다. 이 조례는 헌법의 가치와 기본권, 민주주의 제도의 이해와 참여를 학교 교육의 중요한 내용으로 삼고, 모든 학생에게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지방의회와 연계된 청소년 모의의회, 지역 의제를 다루는 청소년위원회 같은 활동들은 모두 민주시민교육의 중요한 모델이 될 수 있다. 지역 의제를 조사하고 정책 제안을 하는 프로젝트 수업, 디지털 시민성을 키우는 청소년 팩트체커 활동 등 현장에서 실천 가능한 민주시민교육 모델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은 교육청의 역량과 의지에 달려 있다. 학교에서부터 헌법과 공동체의 규칙을 가르치고 아이들과 민주주의의 언어로 대화해야 한다.
12.3 불법계엄을 지나온 지난 1년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뼈아프게 보여준 시간이었다. 동시에 ‘빛의 혁명’이라 불린 그 겨울의 장면들은 시민이 스스로 일어설 때 언제든지 민주주의가 다시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그 용기와 경험이 일회성 기억에 머물지 않으려면 이제 교실에서의 가르침으로 이어져야 한다. 민주주의는 살아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제주가 청소년을 위한 민주시민교육 광장이 되어야 한다./ 고의숙 제주도의회 교육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