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교사 사망 사건 진상조사를 하고 있는 제주도교육청이 주요 단서가 될 녹음 파일을 확보하고도 3개월 이상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도교육청은 지난 5월 22일 모 중학교 교사가 학교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6월 30일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조사계획을 수립했다. 조사내용은 숨진 교사의 업무 기록, 학교 관리자 및 교사 면담 내용, 사건 전 업무 기록 확인, 상담 및 민원 진행 상황 확인, 사고 당일 폐쇄회로(CC)TV 열람, 소속 학교 전 교사에 대상 설문조사 등이다.
진상조사 위원 9명이 모두 참여하는 전체 공식 회의는 3차례 진행했다.
교육청 감사관인 강재훈 진상조사단장은 "유가족 측과 여러 차례 비공식적으로 만나며 사안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왔다"며 "조사 관련 자료와 기록은 모두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된 채 보관되고 있다"고 29일 설명했다.
그러나 강 단장은 교사가 숨지기 전 교감, 교무부장 등과 통화했던 휴대전화 녹음 파일을 지난 7월 4일 확보하고도 3개월이 넘도록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가 국정감사를 전후해 확인했다고 실토했다.
해당 파일의 내용은 지난 22일 국정감사에 나선 강경숙 의원과 좋은교사운동, 제주지역 6개 교원단체가 연대해 발표한 성명을 통해 처음 공개됐다.
녹취록을 보면 숨진 교사는 5월 19일 오후 늦게 교무부장에게 전화해 '두통이 심해 2주간 병가를 쓰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교무부장은 바로 병가 사용을 권한다. 그러나 교감은 같은 날 전화 통화에서 '내 생각에는 병가 해서 그냥 빠져버리면 더 빌미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학부모가 따지는 걸 해결한 다음에 병가를 내는 것은 괜찮은 것 같다'고 말한다.
교감의 이 같은 발언은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에 명시된 피해 교원 보호 조치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매뉴얼은 학교 관리자가 교육활동 침해 사안을 인지한 즉시 적극 개입해 침해 관련자와 피해 교원을 즉시 분리하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 숨진 교사는 19일 아침 교장과 교감에게 민원이 있다고 미리 신고를 하고 저녁에 교무부장에게 전화해 병가를 쓰겠다고 했던 것으로 확인돼 학교 관리자들의 대응은 오히려 교사에게 압박감을 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도 교감은 교육청과 국정감사 답변자료에 '숨진 교사가 교무부장에게 이번 주는 할 일이 있어 다음 주에 병가를 사용하겠다'고 했으며, 자신과의 통화에서 '이 일을 마무리하고 다음 주에 병가를 쓰겠다고 해 허락했다'는 내용의 경위서를 제출했다.
좋은교사모임 등은 이와 관련 허위 조작 경위서 작성자를 문책하고, 현재의 무능력한 진상조사단을 해체한 뒤 재구성해 원점에서 다시 진상조사를 진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교육청은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현재까지 관련자들에 대해 조치하기는커녕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절대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할 수 없다며 시간만 끌고 있다.
지난 3월 교육청이 각급 학교에 배포한 '학교 민원 응대 안내자료'에서는 각급 학교별로 교장, 교감, 행정실장 등으로 민원대응팀을 구성해 교사 개인이 아닌 기관 차원에서 대응하도록 했으나 이번 사건에서 민원대응팀의 활동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학교운영위원인 시민 강모(45) 씨는 "현재까지 교육청의 조사 과정을 보면 너무 부실해서 진상조사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며 "조사를 제대로 했다면 교육청이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를 신속히 하고 학교 현장의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이누리=강재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