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우주'를 말하는데 … 인재들은 '의대'로 간다

  • 등록 2025.08.13 15: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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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미래모빌리티·우주항공산업 육성' 외치지만 … 이공계는 '찬바람'

 

제주도는 지금 '미래'를 말하고 있다.

 

드론택시, 자율주행, 도심항공교통(UAM), 위성정보 서비스 등 차세대 미래 산업을 제주에서 실증하고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이 속도를 내고 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제주를 대한민국 산업전환의 테스트베드로 만들겠다"고 공언했고, 이에 따라 도는 2022년부터 내년까지 약 5936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위성통신망 응용서비스, 정밀지도 구축, 초소형 위성 개발 등의 과제를 추진 중이다. 도는 이를 통해 '차세대 모빌리티 실험장'이자 '우주산업 전진기지'로 거듭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산업의 청사진은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의 인재 지표가 이미 경고음을 내고 있다.

 

 

제주대의 지난해 입시 결과를 보면 상위권 수험생의 진로는 명확하다. 의예과(1.04등급), 약학과(1.24등급), 수의예과(1.36등급) 등 의약학 계열이 가장 높은 성적대 학생들의 선택을 받았고, 기계공학과(3.3등급), 전기전자공학과(2.8등급), 화학공학과(3.5등급) 등 이공계는 그 아래에 머물렀다.

 

수요가 높은 컴퓨터공학이나 통계학 일부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도는 낮다.

 

서울대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포착된다. 최근 입시 통계에 따르면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평균 백분위 점수는 91.6점으로 제주대 약학과(93.5점)보다 낮았다. 수도권 고교에서는 "KAIST보다 서울 시내 의대가 낫다"는 말이 통용될 정도다.

 

이공계 전공은 장기간의 학업과 불안정한 진로, 상대적으로 낮은 처우 등이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불리한 선택'으로 인식되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이공계 특성화대학 진학자 감소는 의학계열 선호와 지방권 대학 기피 현상이 맞물린 결과"라며 "올해부터 확대되는 무전공 선발과 의학계열 수업 정상화로 과학고·영재고 출신 학생들의 진학 경로에도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제주도교육청은 KAIST, UNIST 등 특성화대학과 연계한 진학설명회, 1대1 진로상담, 과학기술 콘텐츠 개발 등을 통해 이공계 진학을 유도하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의대 진학 시 장학금을 환수하는 장치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는 더디다.

 

제주도내 한 고등학교 교사는 "의대 진학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인식이 굳어져 있다"며 "단순한 정보 제공이나 제도만으로 이공계 진학을 늘리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기초과학 인프라와 연구자의 사회적 위상이 낮은 상태에서는 구조적인 전환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적으로도 과학기술 분야의 인재 기피와 유출 흐름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25학년도 전국 과학고·영재고 졸업생 2773명 중 이공계 특성화대학(KAIST, 포항공대, GIST, UNIST, DGIST, 한전공대) 진학자는 986명이다. 지난해 1024명보다 6.4% 감소하며 처음으로 1000명 선이 무너졌다. 특히 DGIST는 43.9%, UNIST는 25.8% 줄었고, KAIST조차 감소세를 보였다. 반면 서울대 진학자는 554명에 달했고, 이 중 상당수가 의학 계열로 향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공계 특성화대학의 중도 이탈 현상도 우려를 더한다. KAIST의 경우 지난해 자퇴 및 휴학 후 미복학 등으로 이탈한 학생 수가 130명에 달해 2023년(125명)보다 증가했다. 최근 5년간 중도 이탈자는 모두 576명이다. 이들 중 다수가 의대 진학을 위해 자퇴하거나 '반수'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고 출신이 KAIST에 진학했다가 자퇴하더라도 교육비를 환수당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입시 전략의 한 과정으로 삼아 이공계 진학을 일시적인 선택지로 활용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김경민 제주대 공과대학 인공지능학과 교수는 "굉장히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물론 의대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자신의 꿈과 방향 속에서 의학 발전에 기여하거나 헌신적으로 치료에 임하겠다는 마음은 존중받아야 하고, 누구도 그 선택을 나무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우리나라는 기술 발전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는데 우수한 인재들이 의대 쪽으로만 과하게 쏠리는 현상은 AI산업이나 미래산업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깝게 본다"며 "이런 측면에서 그 분야의 교수들 역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공계 기피와 우수 인재의 수도권 및 해외 유출 현상은 단순한 교육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 전략과 직결된 문제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대전 유성구을)은 해외에 나간 과학기술 인재의 국내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기존 '10년간 50% 소득세 감면'에서 '20년간 75% 감면'으로 확대해 해외에 나가 있는 우수 인재가 다시 국내로 돌아오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국무회의에서 "국내 R&D 인력의 유출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OECD 38개국 중 인재 순유입 규모 35위에 그쳤고, AI 분야 인재의 순유출 규모는 인구 1만 명당 0.36명으로 집계됐다. 기술 인재의 순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국가적 위기의식은 지역사회에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진로 유도나 정책만으로는 인재 확보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KBS 1TV 다큐멘터리 '다큐 인사이트–인재전쟁'을 연출한 이이백 PD는 "의대 쏠림 현상은 단지 교육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부동산, 일자리, 불평등 등 복합적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결과"라며 "입시에 모든 에너지를 쏟은 학생들이 의대를 보상의 수단으로 여기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이 다시 도전할 수 있으려면 본래의 호기심과 탐구심을 회복할 수 있도록 사회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형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주지부 교사 역시 "학생들이 사회 구조와 산업 변화의 흐름을 스스로 읽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진로 선택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가 우주를 향해 비전을 외칠 때, 그 꿈을 현실로 이끌 인재들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산업 전략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사람에 대한 전략이 먼저 수립돼야 한다. 미래는 먼 곳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교실에서 결정되고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김영호 기자 jnuri@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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