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종합재활용 처리시설 예정지 앞 광령리 주민 비상대책위원회 컨테이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729/art_17526553707062_4e5b6c.jpg?iqs=0.42478948260596316)
지난 15일 뙤약볕이 내리쬐던 오후 제주시 애월읍 광령1리.
한적한 들판 외곽, 평범한 농촌 마을 한켠에 큼지막한 컨테이너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천막 위에는 '폐기물 종합재활용 처리시설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라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이곳은 마을 주민들이 밤낮을 번갈아 지키며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반대운동의 거점이다.
무더운 여름, 대형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컨테이너 안팎을 오가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고령의 주민 A씨는 "이건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행정에 속고 환경권을 빼앗긴 정의의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2년 전, 당시 이장이 동네 후배가 새시 재활용 공장을 하겠다고 해서 단순히 설명을 들었다는 확인서에 이름만 적어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건축 폐새시나 목재 등 2~3개 품목을 재활용하는 단순한 공정이라고 여겼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실제로 인허가가 내려진 사업 내용은 전혀 달랐다. 폐합성수지, 폐유리, 폐목재 등 1000여개 품목의 다양한 폐기물을 파쇄·분쇄하는 종합 폐기물 처리시설이었다. 이 시설은 170마력짜리 대형 파쇄기와 10마력 이상의 중형 분쇄기 3대를 운영하는 중형 공장 수준의 설비를 포함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그 규모면 사실상 공장"이라며 "소규모라는 행정의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폐기물 종합재활용 처리시설 예정지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729/art_17526553050894_3ea60e.jpg?qs=6295?iqs=0.8125416186518248)
더 큰 논란은 행정이 단순한 확인서를 '주민 동의서'로 간주해 인허가를 내줬다는 점이다. 해당 문서는 날짜도, 직인도, 공식 명의도 없이 ‘설명을 들었다’는 문장 하나만 적혀 있었다. 일부는 서로 다른 필체로 덧붙여진 흔적까지 있었다. 주민들은 이를 두고 "편의주의적 행정의 전형이자 절차적 기만"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진영오 광령1리 이장은 "당시 동네 후배가 새시 재활용 공장을 하겠다고 해 그냥 설명만 듣고 이름을 적어줬다"며 "종합 폐기물 분쇄 사업이라는 내용은 전혀 몰랐고, 문서에도 날짜나 동의 내용은 물론 회의 기록이나 마을 직인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형님 좀 도와달라는 말에 이름 하나 써준 것일 뿐 마을 회의나 공식 문건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광령1리 주민들은 시가 이처럼 비공식적이고 형식상 결함이 명확한 문서를 '주민 동의서'로 판단해 인허가를 내준 것에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진 이장은 "이런 문서 하나로 행정이 정식 인허가를 승인했다는 사실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다"며 "정말 떳떳했다면 처음부터 사업계획서와 관련 자료를 주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민 비대위는 "정식 마을 회의도 없었고, 공동체 합의를 이끌어낸 과정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확인된 바에 따르면 해당 사업 인허가는 마을 공론화나 전체 주민 설명 절차 없이 진행됐다.
한편 광령리는 단순한 농촌 외곽이 아니다. 반경 1㎞ 내에는 애월정수장을 비롯해 광령초, 제주관광대학 부속 유치원, 주택가, 축사, 멸종위기종 황조롱이 서식하는 광령천까지 이어지는 복합 생활·환경권이 밀집해 있다. 특히 애월정수장은 제주시 동부와 신제주권 전역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핵심 기반시설이다.
비대위는 "이 같은 지역에 파쇄기와 분쇄기를 가동하는 폐기물 시설이 들어설 경우 파쇄 분진이나 비산먼지가 우수관이나 지하로 유입돼 식수 오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하게 우려했다.
또 반경 2㎞ 내 유치원과 초등학교에는 매일 수백 명의 아이들이 통학하며 야외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아이들 뛰노는 거리에서 폐기물 공장이 가동된다는 건 교육 환경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광령1리사무소 입구에는 종합 폐기물 처리시설 결사 반대 벽보가 붙어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729/art_17526553733801_06f287.jpg?iqs=0.2042267690074927)
주민들은 사업의 실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수차례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처음 들은 설명과 달리 인허가된 사업이 종합 폐기물 분쇄시설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주민들은 "도대체 어떤 계획이 승인됐는지"를 직접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제한된 열람'이라는 형식적인 답변뿐이었다. 사업계획서와 관련 서류는 일부만 열람 가능했고, 복사나 사진 촬영은 일절 금지됐다. 내부 검토 자료와 행정처리 내역은 '비공개 대상'으로 분류돼 열람 자체가 불가능했다.
고령의 주민 A씨는 "사업자도 떳떳했다면 모든 서류를 주민 앞에 당당히 공개했을 것"이라며 "은폐와 축소로 일관하면서 '법대로 했다'는 건 무책임한 이중잣대"라고 지적했다.
주민들은 확인서의 불완전성과 정보공개 절차의 불투명성을 들어 인허가 자체의 정당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추가 갈등은 진입로 문제에서 불거졌다. 마을 입구에서 공장 진입로로 이어지는 약 2㎞의 길은 행정이 조성한 공공도로가 아니다. 수십 년 전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사유지를 내어 생활도로로 사용해온 길이다. 하지만 행정은 이를 공식 공공도로로 정리한 적 없고, 보상 절차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 인허가 과정에서 해당 길이 아무런 사전 검토 없이 공장 진입로로 지정됐다.
주민들은 "명백한 사유지인데 설명이나 동의도 없이 공장 진입로로 사용하도록 행정이 허가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인근 업체 관계자도 "예전엔 우리가 직접 비용을 들여 도로를 만들었는데 이젠 그 길을 다른 공장 진입로로 쓰겠다는 건 행정의 무지이자 무책임"이라고 비판했다.
![주민들이 만든 생활도로에 결사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729/art_17526553105161_50478b.jpg?iqs=0.9503203708447338)
주민들의 전면 반발에도 제주시의 입장은 변함없다. 시는 해당 사업이 '종합폐기물 처리장'이 아닌 '폐기물 재활용업'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제주시에 따르면 폐기물 재활용업은 폐기물을 재사용 또는 재생이용 가능한 상태로 전환하는 사업으로 ▲비산먼지 및 악취 유발 방지 ▲침출수 및 유해물질 유출 차단 ▲소음·진동 최소화 ▲환경 유해요소 사전 차단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기준을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상 폐기물은 하루 25톤 규모로 폐 새시 20톤과 폐목재 6톤이 처리 대상이다. 주요 장비는 절단기, 파쇄기, 선별기 등이다. 모든 공정은 실내에서 진행된다.
제주시는 "비산먼지는 집진시설로 제거되고, 공정상 폐수가 발생하지 않아 지하수 오염 우려도 없다"고 밝혔다.
주민 동의 절차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폐기물재활용업 인허가 검토과정에서 주민 의견 수렴이나 동의 절차는 법적 요건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갈등 해소를 위한 행정적 조치로서 "광령리 폐기물 반대위원회가 결성된 지난 4월 22일 이후 주민 측과 22차례, 사업자와 6차례의 면담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김은수 제주시 환경지도과장은 "서류 접수 전부터 사업자에게 마을 설명을 권고해 왔다"며 "현장 공정이 실내에서 이뤄지고 분진은 집진시설로 처리되며 폐수가 발생하지 않아 해당 시설은 지하수 오염 유발시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제주시는 향후 폐기물 배출 단계부터의 철저한 관리를 위해 ‘현장 정보 전송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사업자 측은 갈등에 대해 한 발 물러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당 폐기물 재활용업체 민원 담당자는 "인허가 절차는 이미 법에 따라 마무리된 상태이며 이후 발생한 문제는 토지 소유자 간의 사적 분쟁일 뿐"이라며 사업 자체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주민 동의 여부나 사전 설명 부족 등 절차적 논란에 대해서는 "행정이 판단하고 처리할 영역"이라는 입장을 내놓으며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시설의 환경영향이나 지하수 오염 우려에 대해서도 "모든 공정이 실내에서 이뤄지고 관련 기준을 충분히 반영한 설계"라고 반박했다.
다만 주민과의 직접 대화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주민들은 "사업자가 서류상 정당성만 주장할 뿐 갈등을 해소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처리시설 예정지 인근에는 축사가 위치해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729/art_17526553075403_210ff8.jpg?iqs=0.5300528436231232)
실제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되고 있다. 주민들은 최근 마을회의를 열어 해당 사업을 주도한 인물로 지목된 홍모씨의 마을회 참여 자격을 박탈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홍씨 측은 주민 대표들을 상대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진 이장은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더는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뿐인데 그걸 두고 형사 고소까지 하다니 어이가 없다"며 "정작 행정의 책임이나 사업자의 기망 행위는 따지지 않으면서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주민들만 법적 책임을 지우려는 건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주민 측은 현재 변호인을 선임해 고소에 대응하는 한편 사업 인허가 과정의 절차적 위법성과 토지 매매 관련 민·형사 소송도 준비 중이다.
"이건 개인 간의 갈등이 아니라 마을 전체의 생존권과 존엄이 걸린 문제"라는 게 주민들의 일관된 입장이다. "어떤 법적 위협에도 끝까지 대응하겠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을 분위기엔 긴장과 피로감이 서려 있다.
고령의 주민 A씨는 "시간이 지나면 행정이나 업체가 개별적으로 회유에 나서고 결국 마을이 둘로 갈라지지 않을까 그게 제일 걱정"이라며 공동체 내 분열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주민들은 마을 공동체의 존엄과 환경,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오늘도 컨테이너 앞을 지키며 묻고 있다. "이 마을의 삶과 물, 공기, 아이들, 과연 누구의 책임 아래 보호받아야 합니까?"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마을 입구 진입로에는 '종합폐기물처리업체 절대 안된다'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729/art_17526552982789_0e5222.jpg?iqs=0.4494623859540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