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중견 사진작가 성남훈씨의 4‧3 사진전!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다.
제민일보 4‧3취재반의 기획연재 ‘4‧3은 말한다’의 육필원고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다.
성남훈 작가의 사진전은 ‘서걱이는 바람의 말’이란 주제로 서울 종로구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 18일 개막식에 이어 26일까지 열리고 있다.
작가는 4‧3에 대해 “우리는 말하지 못했어도, 바람은 말해 왔다”는 제주토박이의 말을 듣고 전시의 제목을 이렇게 정했다고 밝혔다.
성 작가는 지난 2019년부터 4‧3현장이었던 학살터, 희생자들, 수장된 바다, 살아남은 할머니들, 굿, 신당 등을 대형 폴라로이드 필름을 활용해 촬영한 뒤 당시의 아픔을 기억하고 위로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현장의 나무와 바위 위에 사진을 밀어 이미지에 파열을 가해왔다.
이 과정은 한 장의 사진으로 온전히 재현할 수 없는 역사의 불완전성, 희미해질수록 붙들어 두어야 하는 기억의 소멸에 대한 사진작가의 질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는 “어떤 진상을 드러내고, 어떤 진실로 전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다만 그것을 기록하고 사진으로 진술케 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최근에 제주4‧3평화재단 아카이브에 등재된 ‘4‧3은 말한다’ 원고를 발견, 400자 원고지 97매와 인물, 풍광 등을 결합한 작품 97개(각각 30×22cm)를 제작해 총 5m에 이르는 독립공간에 전시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선보인 ‘4‧3은 말한다’ 원고는 연재 270회까지의 양조훈 4‧3취재반장(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의 육필원고 중 일부로 지난 2019년 4‧3평화재단에 기증된 것이다.
‘4‧3은 말한다’는 이후 김종민 기자(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가 이어서 집필, 총 456회가 연재되면서 한국언론사에 전례없는 최장기 연재물로 기록된 바 있다.
컴퓨터 작업이 본격화되기 전인 1990년대 초 기자들이 원고지에 기사를 써 마감하던 시기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세월의 변화를 느끼게 해준다.
성남훈 작가는 “사진작업 막판에 평화재단 사이트에서 4‧3기록이자 미학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친필원고를 발견하고 큰 설레임이 있었다”면서 “사진으로 보는 4‧3은 노골적이어서 큰 충격을 주는 반면 이 육필원고는 잔잔하면서도 한 자 한 자 보면 볼수록 생각하게 하는 효과를 유발한다”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프랑스 파리 사진대학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한 성 작가는 ‘르살롱’ 최우수사진상 수상, 프랑스 사진에이전시 ‘라포’ 소속 사진가로 활동했다. 전주대 사진학과 객원교수와 은빛다큐멘터리 회장을 역임했다.
지난 30여 년간 코소보, 에티오피아, 아프가니스탄, 인도네시아, 발칸 등 국제 분쟁지역과 난민, 국가폭력 등에 대해 사진을 통해 고발 활동을 해왔다. 이번 4‧3 사진전도 그 연장선상에서 중첩된 제주 섬의 역사를 새롭게 이미지화해 그 공명을 공유하자는 뜻에서 시도됐다.
한편 전시된 작품을 수록한 성남훈 사진집 '서걱이는 바람의 말'이 아트레이크에서 출간됐다. 272쪽에 이르는 두툼한 이 사진집은 작가의 작업 전반에 대한 해설과 함께 4‧3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과 의미를 다루고 있다. 서문은 허영선 시인(전 제주4‧3연구소 소장)과 문봉선 씨(제주섬문화연구소 연구실장)가 썼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