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자연경관', 그리고 170억2600만원의 치욕

  • 등록 2017.09.22 11: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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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부끄러운 타이틀을 조례로 입법화? ... 이제 그만두라

 

 

 

애초엔 그저 심심풀이 수준의 제안이나 다름 없었다. 제주도청을 출입하던 한 기자의 제안이었다. 웹서핑을 즐기던 그가 “제주도 역시 한번 뛰어보는게 어떠냐”고 제주도 관광국장에게 건넨 아이디어였다.

 

은근히 압박으로 느낀 그 국장은 곧바로 손사래를 치기도 어려웠던지라 관광공사로 해당 업무를 넘겼다. 3000만원의 예산으로 “한번 해보라”고 한 게 고작이었다. 민선 4기 김태환 도정 말기의 일이다.

 

그랬던 게 어느 날 제주도 최대의 목표로 둔갑했다. 2010년 7월 취임한 민선 5기 우근민 도정은 이 문제에 한마디로 사활을 걸었다. ‘세계 7대 자연경관’ 이벤트를 향한 그의 도전이자 그 시절 제주도 전공무원이 악착같이 달라붙은 지상최고의 과제였다. 그리고 그 제주는 민선 5기 우근민 도정의 치열한(?) 노력 끝에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2011년 11월11일 제주는 ‘세계 7대 자연경관’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 이벤트의 현장에서 의문은 싹트기 시작했다. 참여열기가 뜨거울수록 오히려 민망함은 더해갔다. 전국민적 관심사로 치닫게 되자 오히려 서서히 자괴감이 등장했다.

 

그럴만 했다.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는 방식이 문제였다. 인터넷과 전화를 통한 무제한 중복투표가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고 그 투표를 통해 세계 7대 자연경관을 선정한다는 것 자체가 한마디로 ‘엉터리’였다. ‘무한 불공정’ 게임이었다. 그 탓에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후보에 올랐던 세계 유명 자연경관은 막판 출전을 거절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 불공정 게임에 제주도 전 공무원은 사실상 1년 내내 전화통을 붙잡고 살았다. 전화기에 아예 자동연결장치를 달아 수도 없이 국제전화가 걸리도록 만들기도 했다. 게다가 우근민 도정은 도청 내 각 부서별로 그 실적을 경쟁하도록 했다. 부서별 현황판까지 만들 정도였다. ‘관제몰이 조직적 공무원 동원’이란 비판까지 들었지만 ‘안하무인’이었다.

 

 

 

 

게다가 ‘7대 자연경관’ 이벤트를 주관한 기관 역시 ‘황당’ 그 자체였다. ‘무한 불공정’ 이벤트를 만든 ‘뉴 세븐 원더스 재단(The New 7 Wonders)’은 스위스 어느 곳에 있다했지만 그 시절 어느 언론이 현지를 뒤져봐도 사무실 조차 찾을 수 없었다. 재단의 웹페이지를 보면 그저 ‘세븐(7)’을 활용한 허접스런 이벤트를 줄기차게 하던 곳일 뿐이었다. 물론 그저 재미 삼아 벌이는 일로 ‘짭짤한’ 수익도 챙기고 있었다. 누가 봐도 기발한 아이디어로 돈을 챙기는, 그저 그런 재단이었다.

 

그렇게 그들로부터 ‘세계 7대 자연경관’ 타이틀을 거머쥔 제주도는 눈이 뒤집힐 통지서를 받았다. 1년간 쓴 전화통화로 받은 통지서다. 211억8600만원이다. 그래도 그 이벤트 덕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으로 돈벌이가 된 KT는 용단을 내렸다. ‘애국심’에 감동했다는 수사를 던지며 과감(?)하게 41억6000만원을 깎아줬다. 그래서 실제 낼 돈은 170억2600만원으로 줄었다. 감복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 돈은 그저 제주도청 내 행정전화를 이용한 전화통화료일 뿐이었다. 제주도민은 물론 ‘제주를 사랑한다’는 온정으로, 아니면 제주도청과 엮인 입장에 어떤 형식으로라도 ‘애정’(?)을 보여줄 수 밖에 없어서 핸드폰은 물론 집전화로 온 국민이 눌러댄 국제전화 통화료는 알 수 없다. “제주도청 전화료가 200억이 넘는다면 전체 통화료는 500억원을 훌쩍 넘길 것”이란 예상수치가 나왔지만 확인할 방법도 없다.

 

제주도는 7대 자연경관 선정 첫 해인 2011년 104억2700만원을 시작으로 2012년 3억3000만원,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는 매해 13억2000만원씩 모두 161억4700만원을 KT에 냈다. 잔액 9억8800만원은 올해 예산에 편성돼 지난 8월까지 매달 1억1000만원씩 KT에 납부했다. 9월에 남은 돈 1억800만원을 내면 이제 밀린 통화료를 완납, ‘빚쟁이’ 신세를 벗어난다. 그 돈을 다 내는데 무려 7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나마 이자는 내지 않았으니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노릇이다.

 

이해관 전 KT 새노조위원장의 폭로로 뒤늦게 ‘국제전화 사기극’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해외전화망이 아님에도 국제전화 요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13년 1월 KT가 국제전화번호 체계에 따르지 않고 전화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전기통신 번호관리 세칙을 위반했다며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제주도의회 일부 의원에 의해 세계7대자연경관이 발표된 11월11일을 기념해 매해 이 날을 제주 세계7대자연경관의 날로 정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문화관광스포츠위 김희현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이런 내용을 담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세계7대자연경관 활용에 관한 조례안’을 최근 입법예고했다.

 

더 이상 망가지지 말자. 어이 없는 ‘세계 7대 자연경관’ 간판을 제주도 곳곳에서 다 걷어치워도 그 수모가 사라지지 않을 지경이다. 이미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생물권 보전구역’·‘세계지질공원’ 등의 이름을 제주도에 내줬다. '세계 7대 자연경관'과는 비견할 수 없는 세계적 명성의 타이틀이다. 우리가 자랑할 간판은 차고 넘친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

 

양성철 발행.편집인 j1950@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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