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 구조를 도왔던 김동수(50)씨가 20일 제주공항에서 항공편을 이용, 경기 안산트라우마치유센터로 떠났다.
그는 바로 전날인 19일 오후 8시 43분께 제주시 조천읍 자택에서 흉기로 자해했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은 뒤 귀가했다.
20일 오전 제주국제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난 김씨는 “아무 쓸 모 없는 손이어서···”라며 “손이 자기 맘대로 움직이기도 한다. 이 고통은 본인 밖에 모른다. 병원 가도 약만 줄뿐”이라고 최근 자신의 정신적 불안정 증세를 설명했다.
김씨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해 아내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고3인 딸은 다니던 학원도 그만두고 ‘알바’를 하겠다고 한다“며 ”정부 지원도 끊겨 대출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김 씨는 “제주도에 세월호 쉼터를 만들어달라고 요청도 해봤다. 제주에서 받고 있는 치료는 7월에 모두 끝나고 그곳도 마음 놓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라며 "세월호 특별법도 생존자는 뒷전"이라고 정부와 제주도 행정당국의 무관심에 서운함도 내비쳤다.
그는 “국가는 생색내기만 하고 있다. 국가는 말 뿐이다. 집을 빌릴 수 있는 대출금도 준다고 했지만 진전된 게 없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은 생존자들이 다 보상 받은 줄, 고통에서 빠져나온 줄 아는 데 절대 아니다. 학생들 볼 때 마다, 창문을 볼 때 마다 아이들이 생각나는 데 어떻게 잊으라고 할 수 있느냐”며 김씨는 고개를 떨궜다.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선내에 있던 화물차 기사 김씨는 소방호스 등을 이용해 학생 20여명의 구조를 도와 이른바 ‘파란 바지의 의인’으로 불렸다.
사고 때 생계수단인 화물차가 배와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졌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해 심각한 경제적 곤궁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