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이란 명분으로 끌려가 제주시 정뜨르비행장에서 집단 총살형을 당한 피해자의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항소심에서도 배상 판결을 받았다.
광주고등법원 제주민사부(재판장 김창보 제주지방법원장)는 23일 제주예비검속 사건 피해자의 유족 29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일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1948년 10월 당시 내무부는 부역 또는 범죄의 개연성이 있다는 이유로 사전 구금하는 조치인 대대적인 '예비검속'에 나섰다. 특히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정부는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2차례에 걸쳐 현 제주국제공항 동쪽 활주로 부지인 정뜨르비행장과 산지항 바닷가 등에서 주민을 총살하거나 수장했다.
소송 원고는 6.25전쟁 직후 관할지서인 남원지서에 끌려가 서귀포경찰서로 옮겨진 후 고구마 창고에 갇힌 뒤 다시 제주시 정뜨르비행장으로 이송돼 집단 총살을 당한 피해자들의 유족이다.
유족들은 '경찰과 군대가 정당한 이유나 절차 없이 망인들을 구금한 후 살해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1인당 최대 3억원을 배상하라며 집단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정부는 "소멸시효인 5년이 지나 손해배상이 불가능하다"며 맞섰다. 그러나 재판부는 국가가 예비검속 피해를 인정한 "2010년 6월을 기점으로 소멸시효를 계산해야 한다"는 판례에 따라 배상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예비검속이 벌어진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2012년 11월 1심에서 희생자 1인당 1억원으로 선고된 배상액을 8000만원으로 낮춰 잡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과거사정리위가 예비검속의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는데 그 결과에 모순이 있지는 않다”며 “당시 경찰과 군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주민들을 살해하고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 정부는 유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