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큰굿보존회와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제주민족예술인총연합은 오는 5일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제주도문예회관 소극장에서 '민족광대 故 정공철 심방 1주기 추모굿'을 연다.
큰굿보존회의 '차사영맞이굿', 민속학자 문무병의 추모시, 소리꾼 현희순의 '농부가', 문석범의 '갈까부다', 김성현의 '오, 대니보이', 노리안마로의 사물놀이가 이어진다. 무용가 김희숙, 사진작가 강정효, 영상감독 양동규, 화가 고경화의 작품도 선보인다.
‘심방’ 정공철은 1960년 제주도 모슬포에서 태어났다. 국어교사의 꿈을 품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진학하였으나, 1980년대의 민주화의 시대상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는 진보적 예술가들이 꾸린 ‘극단 수눌음’에 가입하여 마당극 배우로 활동하면서, 시대정신에 투철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끝자락에서 ‘제주문화운동협의회’를 동지들과 함께 창립하고, 그 초대 대표를 맡아 당시 제주지역의 문화운동의 최전선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다. 1989년 민주화의 분위기를 따라 금기시됐던 4·3사건 해결의 욕구가 분출했고, 제주 최초로 제주시민회관에서 ‘41주기 4.3추모제’가 열렸다. 그러나 추모제에서 진혼굿을 하기로 약속했던 당대의 큰심방 고 안사인 심방이 관의 탄압으로 굿을 거뒀다. 졸지에 그가 대신 심방으로 굿판에 섰다.
그는 놀이패 한라산의 배우로서, 극단의 대표로서 마당극운동과 지역문화운동의 최전방에서 활동했다. 1994년 한국 마당극운동의 본산인 ‘민족극협의회’는 최초로 ‘민족광대상’을 제정했다. 그리고 그에게 그 영광을 안겨줬다.
1993년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무업(巫業)을 공부하기 위해 ‘제주칠머리당굿보존회’의 문을 두드렸다. 김윤수 큰심방 밑에서 배웠다. 제주도 최초의 ‘대졸’심방이 탄생하게 된 내력이다. 2011년 9월 그는 큰심방이 되기 위한 초신질(수덕 좋고 굿법을 제대로 아는 큰심방이 되기 위해서는 평생에 세 번의 큰굿을 하게 되는데 그 최초의 내림굿을 말함)을 밟는다. 양창보 심방의 명도(신칼)를 물려받고, 서순실 심방이 수심방을 맡아 진행된 신굿인 17일간의 ‘큰굿’을 통해 그는 ‘큰심방’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병마가 찾아왔다. 후두암이었다.
2013년 6월 13일 오후 6시 7개월여의 투병생활을 뒤로 하고 결국 그는 눈을 감았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