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학위수여식이 열린 제주한라대.
단숨에 눈에 밟히는 한 불자가 눈 안으로 들어온다. 졸업생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물리치료과 은영 비구승(속명 변성옥·58·여)이다. 이미 3년 전 이 대학 사회복지학과 학업을 이수한 그다.
그가 두개의 전공을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이르도록 정진한 이유는 뭘까?
험하디 험한 고난의 가족사가 그 배경에 있다. 아버지는 4·3 수난의 삶을 겪고 당시의 후유증으로 세월을 보냈다. 뇌경색과 중풍으로 시름시름 앓기만 하던 아버지에 대한 봉양의 마음이 그를 움직였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가세는 기울어 스님은 초등학교 졸업은 꿈도 못 꿨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부산의 한 철강업체 합숙소 식당에서 막일에 나섰고, ‘식모’와 가정부를 전전하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리 번 돈으로 부모는 물론 어린 동생들의 입에 풀칠을 하는 생계마저 책임졌다.
출가했지만 부모의 병환은 언제나 그의 시린 상처였다. 1993년 중국 문화원에서 전통의학연구회 침구 과정을, 1997년에는 중국 요녕성 중의 연구원 부설 종합병원에서 중의 전통요법을 배웠다. 현대척추교정연구학회에서 척추교정과 침구과정도 마쳤다. 하지만 그 사이 아버지는 숨을 거뒀다. 10년 전 일이다.
부친은 세상을 떴지만 그의 향학열은 다시 불탔다. 어머니(88)마저 병석에 드러누워 무언가라도 해야만 했다. 매달리던 공부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욕심이 생겼다. 체계적인 공부를 생각했다. 제주한라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2011년 졸업했고, 같은 해 곧바로 같은 대학 물리치료과에 입학했다.
고령에도 성적우수 장학금은 놓치지 않았다. 2009년에는 전국 비구니회 법계 장학금도 받았다.
동문수학한 박세진(26)씨는 “영문에 한글 토씨를 달며 눈에 불을 밝히며 공부를 하는 모습은 물론 서슴없이 물어보고, 늦게까지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들에게 모범이자 귀감이 되신 분”이라고 그를 평했다.
불타는 향학열과 그의 치성이 하늘에 닿아서 일까? 2008년 급성췌장암에 중풍까지 앓아 꿈쩍도 못하던 어머니는 조금씩 호전됐다. 약사암에 어머니를 모시고 그동안 배운 침과 뜸, 물리치료 등의 정성이 점점 효험을 본 것으로 그는 믿고 있다.
그는 “사회복지학과에서 생전 만져본 적 없는 피아노를 치고 시험을 통과해야 했을 때, 또 물리치료과에서 근육이나 신경의 이름을 영어로 써야하는 데 겨우겨우 합격한 일이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어려운 단어마다 백번을 넘게 쓰고 책을 보기위해 앉아있느라 여름에는 욕창이 생길 지경이었다는 것.
은영 스님은 “다시 새로운 세상의 눈을 뜨는 것 같다. 대학의 문턱은 꿈도 꾸지 못했던 이가 두 개의 졸업장을 받고, 병환중인 어머니도 점점 차도를 보이는 것 모두 주변 모든 이들의 도움 덕”이라며 “사바세계 모든 불자들의 마음에 광명과 평화가 올 수 있도록 스스로 도울 일을 찾겠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