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현대사 산증인 이운방 옹 별세

  • 등록 2013.06.19 11: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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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정국에서 건준 활동, 1947년 3.1시위로 옥고

     
 

제주 근현대사의 산증인이었던 이운방 옹이 향년 104세로 17일 별세했다.

 

이운방 옹은 1910년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운동 등 항일운동을 벌였다.

 

해방 혼란기인 1945년 귀국해 고향 대정읍으로 돌아왔다. 당시 인민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고, 제주대표로 서울에서 열린 건국준비위원회(건준) 회의에도 참석했다.

 

또 남로당 대정면책을 맡는 등 남로당 핵심 간부이기도 했다. 4.3 지도부로 유명한 김달삼도 당시 대정지역 조직책으로 이운방 옹 보다 아래에 있었다.

 

그는 4.3이 발생하기 1년전인 1947년 3월1일 관덕정에서 열린 3.1절 시위와 총파업을 주도하면서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고인은 "제주 4.3은 5.10 단선단정을 반대하고 통일정부를 위한 투쟁"이라고 규정하기도 했지만 '무장봉기'에는 반대했었다.

 

이 옹은 제민일보가 연재한 <4.3은 말한다>에서 "4.3은 남로당 중앙당에서 내려온 지령이 아니었다"며 "중앙당의 지령이 있었다면 어째서 봉기 여부를 놓고 도당 내부에서 심각한 논란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남로당 지령설을 부인하는 증언을 했다.

 

또한 이 옹은 무장봉기를 선도한 이덕구, 김달삼에 대해 '좌익모험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글을 여러 차례 기고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옹은 4.3이 일어나기 직전인 1948년 일본으로 떠나면서 살 수 있었고, 1980년대 후반 70대 후반 나이로 다시 고향 제주땅을 밟을 수 있었다.

 

김창후 제주4.3연구소장은 "이운방 선생은 일제시기 일본에서 항일운동을 했고, 귀국해서 건준과 남로당에서 활동하다 1947년 3.1절 시위에서 옥고를 겪었다"며 "감옥에서 나온 후 남로당 내부에서 무장봉기를 반대하다 일본으로 떠난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옹의 빈소는 중앙성당, 일포는 19일이고, 발인은 20일이다. 장지는 천주교 황사평 묘지다.

 

이석형 기자 lsh@j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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