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속초에서 영상의학과 의원을 운영하는 김승철(48)씨가 쓴 <지중해 삼국지>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헬레니즘 종합역사서다. 헬레니즘 연구에 이제 한창인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에서 그의 책 출간을 기대했을 정도다.
김씨는 로마사 애독자들 중 한 명이었다. 어려서부터 <메소포타미아 문명사> 등의 책을 통해 서양사의 궤적을 쫓았고, 의사가 된 뒤 본격적으로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이스라엘,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귀결은 당연히 로마의 역사 공부로 이어졌다. 그런데 공부가 깊어질수록 매끄럽지 않은 고리가 눈에 거슬렸다. 고대 그리스 이후 로마제국의 성립 때까지 지중해의 패권 다툼을 이해하려면 그 중간고리 역할을 하는 ‘헬레니즘’ 시대에 대한 연구가 필수인데, 국내에는 관련 연구서가 변변한 게 제대로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래서 해외의 자료들을 구해 연구하며 그 시대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가 책에서 주목한 시대는 시기적으로 BC 323년 마케도니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알렉산드로스3세(흔히 영어권에서 ‘알렉산더 대왕’이라 불리는)의 사망 때인 헬레니즘 시대의 시작점. 알렉산드로스3세 사망 이후 그 후계자들인 디아도코이들의 (5차에 걸친) 전쟁과 바빌론 분할 이후 광대한 페르시아제국의 패권을 물려받은 시리아, 그리스를 실질적 영향권으로 장악한 마케도니아, 그리고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 해변의 강자 이집트 등 헬레니즘 3강국이 자리를 잡고, 본격적인 헬레니즘 세계를 형성하기 시작하던 시기다.
이런 헬레니즘 세계를 동양에서 잘 알려진 ‘삼국시대’로 비유하는 게 일견 어색해 보이지만 그는 “그보다 더 적당한 표현은 없다”고 봤다. 중국의 삼국시대보다 약 400년 전 무렵인 헬레니즘 시대의 3강국은 서로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다가 수많은 영웅들의 명멸 속에 결국 로마라는 제3자에 의해 정복되는 과정을 겪었다. 그가 쓴 <지중해 삼국지>는 그 세 나라 간의 지중해 패권 다툼 300여년의 이야기다.
2천 년도 넘는 과거의 일이다 보니 통치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기록이 남아 있질 않은 탓에, 이 책은 주로 헬레니즘 각 국가의 통치자들의 가족사에 초점을 맞춘다. 필자는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들이 헬레니즘 나라들을 통치하며 벌인 남매간의 결혼, 삼촌-조카, 장모-사위, 새어머니-의붓아들의 결혼 등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짐짓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인간관계들이 당시의 현실에서 어떻게 필요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파 헤쳤다.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는 이들의 다양한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추면 마치 드라마를 보고 소설을 읽듯 역사를 즐길 수 있으리라”는 게 저자 김씨의 생각이다.
헬레니즘 세계를 연구하며 김 원장이 특히 눈여겨보는 대목은 ‘땅의 역사’다. 그래서 헬레니즘 3강국 및 주변국들 사이에 벌어진 온갖 전쟁들을 소개하면서도 전투의 구체적인 전개양상보다는 그 결과로 빚어진 영토의 변화를 더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결국 영토가 넓어지고 줄어드는 과정과 함께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많은 지도들을 곁들여 땅의 역사와 사람의 역사가 다르다는 역사의 가르침을 보다 더 가시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힘없는 국가들이 패권국의 위세에 밀려 개입을 허용하고 이권을 뜯기는 행태가 오늘날에도 비슷하게 재현되고 있다.”
김 원장은 제주에서 태어나 오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오현중학교에서 영어과목을 가르친 김재순씨가 그의 부친이다. 고교졸업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영상의학을 전공했다. 단국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조교수를 역임하다 현재 속초에서 서울영상의학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과거부터 줄곧 서양사와 그리스 신화에 관심을 두다가 요즘은 규명되지 않은 고대와 중세사 간 역사의 간극에 대해 공부 중이다. 저서로는 전공서적인 『소아방사선 진단학』(대한교과서)이 있고 의학 논문을 여러 편 썼지만, 인문학 저술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스 신화에 대한 강의를 담은 블로그 “김승철의 그리스 신화 이야기”(www.mythstory.co.kr)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