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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동양(東洋)산책(3)

아침저녁으로 차갑다 싶은 쌀쌀함만 없다면, 요 며칠 날씨는 최고다. 청량함이야 가을의 본뜻일 터이고, 매해마다 맞이하는 것이라 새로운 감회는 그리 크지 않다지만, 얄궂은 태풍이 온 세상을 훑고 간 뒤라 그런지 유독 쓰라리다 싶을 정도로 온몸 가득 가을이란 의미를 느끼고 있다.
원래 가을이란 풍성함의 상징임엔. 그래서 옛사람들도

 

강호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잇다.
소정小艇에 그믈 싯고 흘리 띄여 더져 두고,
이 몸이 소일消日하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라며 여유로움을 노래했을 터이다. 임금의 은혜라 애써 ‘역군은亦君恩’을 계속 외치고 있는 게 흠이라면 흠일까. 하지만 이는 조선 사대부들의 한계이니 그리 탓할 것은 없다. 어차피 지금도 ‘성군聖君’을 기대하며 온 세상을 붉은 색으로 칠하고 싶은 세력들이 있음으로.  어쨌든 가을은 여유로움이다.  그래서 사랑도 가을 같다 하지 않았을까?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도종환의 「가을사랑」)

 

이렇듯 사랑도 가을 닮아 넉넉함으로 다가온다.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는 상쾌함, 여유, 풍요로 다가오는 것이 우리네 가을이다.

 

그런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라 하였다. 사전에는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으로,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이 썩 좋은 절기節氣임을 일컫는 말”이라 풀었다. 가을이 좋은 계절임을 나타낼 때 흔히 쓰는 말이지만, 원래는 옛날 중국에서 흉노匈奴족의 침입을 경계하고자 나온 말이라 덧붙여 있다.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에서 왔다는 것이다. 당나라 시인 두심언杜審言의 시가 그 원류라 본다. 참군參軍으로 북녘에 가 있는 친구 소미도蘇味道가 하루빨리 장안長安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지은 시 「중소미도赠苏味道」이다.

 

北地寒应苦,南庭戍未归。边声乱羌笛,朔气卷戎衣。   
雨雪关山暗,风霜草木稀。胡兵战欲尽,汉卒尚重围。
雲淨妖星落,秋深塞馬肥。馬鞍雄劍動,搖筆羽書飛。
舆驾还京邑,朋游满帝畿。方期来献凯,歌舞共春辉。

 

북방은 차가움에 견디기 힘들고, 남방은 수자리 끝나지 않아 돌아오지 못했어라.
병방은 오랑캐 피리소리 요란하고, 삭풍은 오랑캐 옷깃을 말아 올린다.
진눈깨비 관새 산악을 어둠에 싸이게 하고, 풍상에 초목은 드문드문하다.
오랑캐는 전쟁을 끝내려 하나, 한나라 병사들은 이미 겹겹으로 포위하고 있다.
구름은 깨끗한데 요사스런 별이 떨어지고, 가을 깊어가고 변방의 말이 살찌는구나.
말안장에 의지하여 영웅의 칼을 움직이고, 붓을 휘두르니 격문이 날아온다.
제후가 경도로 돌아오니 벗들이 제왕의 터 가득 노닐게고,
바야흐로 승첩 개선하여 더불어 노래하고 춤출 봄날이 다가오고 있음이니.

 

원문은 ‘秋高’가 아니라 ‘秋深’으로 돼있다. “가을 하늘 높다”가 아니라 “가을이 깊으니”가 된다. ‘추심마비秋深馬肥’를 글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가을이 깊어지니 말이 살찐다.”라 할 수도 있지만, 원래 “말이 살찌는 가을이 되었다.”고 봐야 한다.

 

중국어 ‘秋高马肥’의 사전 해석은 “가을 하늘은 높고 날씨는 상쾌해지니, 말이 튼실해진다.”이다. 이는 가을의 기후나 정취를 표현한 말이 아니라, ‘서북쪽 외족外族이 활동하는 계절’을 가리켰다. 이렇듯 ‘천고마비’의 유래가 ‘秋高马肥’라고 본다면, 서북쪽 외족이 활동하는 계절을 가리키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서북쪽 외족이라면 여럿이 있지만 여기서는 ‘흉노匈奴’를 말한다.
은殷나라 이전부터 중국 북방에 틀을 잡은 흉노족은 황하를 중심지로 하는 중국의 각 왕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척박한 초원을 생활 근거지로 유목생활을 하는 그들의 가장 강점은 말에 의한 기동력이었다. 기병騎兵이 강했고, 그 기동력을 발휘해 국경을 넘어 들어와 중원 북변 일대를 휘저으며 식량을 해결하고 바람처럼 뒤돌아 갔다. 그래서 고대 중국의 군왕들은 흉노의 도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외치外治의 가장 큰 과제였다. 춘추 전국 시대부터 북쪽 변경에다 장성을 쌓았고, 시황제始皇帝가 그 장성을 증축하고 연결하여 장성長城을 완성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장성이라 함은 옛날 억지로 만든 국경선일 터이다.
그렇지만 장성도 흉노를 막기에는 별 소용이 없었다. 척박한 초원에서 방목과 수렵이 생활 방편인 그들에게 초원의 얼어붙는 겨울을 지내기 어려웠다. 동한冬寒을 무사히 넘기기 위한 식량은 보다 따뜻한 농경생활을 하고 있는 황하지역에서 조달하기도 했다. 비록 국경이란 확정된 것이 없었지만 황하지역 사람들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하여 흉노는 무서운 존재였다.

 

옛날 흉노는 스스로 ‘宏hóng’이라 불렀다 한다. 몽고어蒙古语로 ‘사람人(또는 아들兒)’뜻이라 한다. 하늘의 명을 받은 사람, 혹은 하늘의 아들이란 의미이리라. 흉노의 왕인 ‘선우单于’는 황하지역 사람들에게 스스로 자신을 부를 때 ‘宏’이라 했는데, 중국어에는 비슷한 발음이 존재하지 않아 비슷한 단어를 골라 ‘匈xiōng’이라 기록하였다. 한汉 때 복속된 흉노 사람들을 얕잡아 봐 노예의 의미인 ‘奴’를 붙여 불렀다. 유라시아 최초의 거대한 유목국가를 세운 민족으로 ‘훈Hun’족과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정설은 아니다. 몽고인들은 스스로 흉노의 후예라 할 정도로 아시아 유목문화의 뿌리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황하를 중심으로 살고 있던 중국 선조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그래서 ‘요성妖星’이라 한 것일 터이다. 요성은 혜성․패성 등을 말하는데, 불길함을 나타내는 별이다. 같이 살아가는 이웃이라 보지 않고 대적해야 할 상대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민족간 모순은 포용보다 대립으로 점철돼왔다. 그리고 늘 전쟁으로 마무리하였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제국을 건설한 한漢뿐만 아니라 당唐 때까지 중국은 북방 민족과 전쟁을 해왔다. 이는 당나라 시인 잠삼岑参의 시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君不见,走马川行雪海边,平沙莽莽黄入天。
轮台九月风夜吼,一川碎石大如斗,随风满地石乱走。
匈奴草黄马正肥,金山西见烟尘飞,汉家大将西出师。
将军金甲夜不脱,半夜军行戈相拨,风头如刀面如割。
马毛带雪汗气蒸,五花连钱旋作冰,幕中草檄砚水凝。
虏骑闻之应胆慑,料知短兵不敢接,军师西门伫献捷。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주마천이 설해 변으로 흐르는 것을,
사막은 끝이 없고 누런 먼지 하늘까지 잇닿았다있음을.
윤대의 음력 구월 바람 밤에도 울부짖고,
바람 따라 온 주마천走马川에는 말 크기의 부서진 돌들,
바람 따라 땅에 가득 어지러이 구른다.
흉노 땅의 풀이 누렇게 돼 오랑캐 군마가 살찌는 때라
금산 서쪽에는 전화의 먼지 일어나니, 우리 조정의 대장군 서쪽으로 출병한다.
장군의 쇠 갑옷을 밤에도 벗지 못하고
한밤중에 행군하는 병사들 창이 서로 부딪치고,
칼날 같은 바람이 불어와서 얼굴을 에는 듯.
말 잔등에 쌓인 눈 땀 기운에 증발했다가는
오화 연전 좋은 말에 얼음이 얼며, 막사에는 격문을 쓰던 먹물도 얼어 버린다.
오랑캐 출병소식 들으면 간담이 서늘해 질 터,
단병으로 감히 대적하지 못하나니, 차사 서문에서 승첩 기다린다.
(『走马川行奉送封大夫出师西征』岑参)

 

거대한 돌들이 바람에 날리고, 살을 에는 찬바람만 부는 북방에 출정한 이유는 역시 ‘모순’과 ‘대립’에 있었다. 밤에도 쇠 갑옷을 벗지 못하는 상태지만 출정할 수밖에 없었고, 승첩을 기다리는 막연함에 시인의 붓끝이 떨렸으리라. 시인 잠삼이 직접 변방으로 출정을 나갔었기에 그 느낌은 컸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늘 움직인다. 혈연이든 지역이든 한 무리를 이루는 사람들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유럽역사를 다시 쓰게 했듯이, 기후의 변화이든 인구의 증가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인류도 원래 “아프리카에서 출발해서 지구상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고 하지 않는가!
어쩌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형제”라는 “사해지내개형제야四海之內皆兄弟也.(『논어論語』)”라는 말이 진리일 지도 모른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더불어 사는 세계를 위한 동양의 덕목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세계가 하나 되는 “皆兄弟”는 조건이 따른다. “공경심이 있고 허물이 없으며, 남에게 공손하고 예의를 지켜야(敬而無失,與人恭而有禮)”한다. 나만, 우리만 옳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이천오백 년 전에 한 말이다. 양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의 아둔함을 배웠고, 우주의 신비를 캐기 위해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있는 현재의 인류는 과연?

 

움직이는 사람에게 한계를 둬서는 안 된다. 언제부터 우리에게 국경이 있었던가? 삶의 편리함을 위한 최소한의 분계일 따름이라 생각하면 안 될까?

 

국가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생명을 초개처럼 버려야 한다는 사고를 지금은 버려야 한다. 국가와 민족의 주체는 개인이기 때문이다. 국가간 민족간 모순은 포용과 타협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언제까지 허울뿐인 국경선을 가지고 아웅다웅해야 하는가. 옛날 차가운 북방으로 출정을 갔던 이름 없는 병사들의 생명을 생각하면 쓰리도록 애달프다. 시인들이 “胡兵战欲尽”라 하였고, “短兵不敢接”라 노래했던 것이 단순히 적병의 사기가 저하됐다는 말을 전하려 했던 것일 뿐일까?

 

눈이 시리도록 푸른 상쾌한 가을날이지만 슬프다. 여름철 거세게 몰아쳤던 태풍으로 인해 애써지은 농사를 허공으로 날려 보낸 농부들의 시름을 알기에 그렇기도 하고, 바닷바람에 천년을 견디면서 잘 지내고 있는 ‘섬’들을 자기 것이니 돌려 달라 떼쓰는 아둔한 사람들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가을 햇살 아래 바다를 가르는 바람은 차갑기만 하다.

 

더불어 살아야 하고 공생의 꿈을 꿔야 하는 동아시아의 후손들에게 청명한 가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네 잘못으로 인해 청량함으로 다가와야 하는 가을의 바닷바람을 한풍寒風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가을을 가을답게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되기를 바란다.
 

 

이권홍은?=제주 출생. 한양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종문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는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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