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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아프리카 서신(5)...은예레레 전 대통령의 교훈

이 세상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편견이 있다면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 다른 모든 분야도 함께 윤택해진다고 믿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GDP 60불도 안 되던 세계최빈국에서 세계 10위의 경제대국까지 반세기만에 이룬 것을 보면 그런 편견을 상식으로 만드는데 한 몫을 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가난한 대륙 아프리카에서 살다보면 이 편견과 상식이 도대체 자기 자리를 지켜주지 않는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에게 편견인 것이 이들에게는 상식이고, 이들에게 상식인 것이 우리에겐 편견이 된다. 실로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일어난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의 준말)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논리적 근거가 없다.

 

아프리카의 정치 지도자들을 보면 과거 우리나라의 박정희 대통령과 닮아도 참 많이도 닮았다. 우간다의 무세비니 대통령은 한국의 정치사를 따로 공부했는지 모르지만 장갑차를 시내 한가운데 배치하고 3선(選)개헌을 하더니만 얼마 전 그것도 모자라 다시 한번 개헌을 해 대통령선거를 무제한 녹다운제로 바꾸었다. 으레 그렇듯이 오래 롱런하시는 분들의 한결 같은 사명감으로 가득 찬 대국민호소문은 "불안한 국제정세와 국내갈등세력의 통합을 위해서 증명된 안정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 요지다. 이 또한 어디선가 많이 듣던 이야기고 보면 여기까지는 한국의 상식이 잘 먹혀 들어가는 이야기리라.

 

동부 아프리카 인도양 해안을 낀 남한면적 10배의 큰 나라 탄자니아에는 줄리어스 은예례레(Julius K. Nyerere)라고 국부로 추앙받는 인물이 있다. 196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탄자니아 초대 대통령이었으며 20년 후 정권을 넘겨주고 물러났다. 오늘날 탄자니아를 아프리카에서 가난하기는 하지만 가장 평화로운 나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 진정한 ‘어른’으로 불린다. 남한보다는 북한과 더 가까이 지낸 나라였기에 반공에 투철했던 그 시절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세계는 그를 아프리카의 희망, 존엄성, 성공의 상징이라고 부른다. 아프리카 사회주의(African Socialism) 경제정책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탄자니아 사람들 뿐 아니라 아프리카 사람들 모두 그를 ‘진정한 어른’으로 모시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진정한 어른은 이 다양한 부족 간의 갈등을 치유하고 하나의 깃발 아래 기꺼이 모이도록 설득할 수 있는 화합의 어른을 말한다. 아프리카에는 1000개가 넘는 언어가 존재하며 이 풍성한 언어의 사용자들이 유럽의 식민지 수탈에서 벗어난 후 인위적으로 그어진 국경선에 갇혀 54개 국가에서 살아간다. 탄자니아 한 나라에만 해도 120여개 이상의 언어와 부족이 존재한다.

 

은예레레 대통령은 ‘우후루나 우모자’ (Uhuru na Umoja : 자유와 일치) 정책을 내걸고 스와힐리(Swahili)어를 공용어로 보급했다. 스스로도 타부족의 여인과 결혼했다. 주목할 것은 각 부족의 어린학생들을 뽑아 타 부족 지역의 학교에서 공부하도록 했다. 평화의 기반은 상호 이해와 존중에서 출발하는 것이란 실증하기 위한 조치다. 편견과 선입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사람들만이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이해한 사람만이 과감하게 실시할 수 있는 일이다.

 

종족, 인종, 종교, 계급, 지역, 경제적 편차, 정치적 견해 가지각색의 인간 무리의 경계선마다 빨간불이 켜져 있는 아슬아슬한 나라 사람들에게는 꿈만 같은 이야기가 그 곳에서는 기본이다. 그가 ‘아프리카의 희망’이라고 불리는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은가? 차별과 착취의 시대 속에서 타산지석으로 중용을 배웠다고 하는 이야기는 참으로 마음의 옷깃마저 여미게 한다.

 

돈이면 다 된다는 천민자본주의에 찌들어 사는 경제적 선진국가 국민들은 우월한 지위가 무엇인지 보다 보편적인 상식에 귀를 기울여도 좋지 않을까? ‘아프리카 어른’들을 보면서 이 한국 촌부가 배운 것이 하나 있다. 그건 인간은 어떤 상황과 처지에서도 갈 길을 몰라 헤매는 동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우리 촌부들에게는 대의의 길을 정직하고 착실하게 걸어갈 용기가 부족할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처음으로 재외국민도 선거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선거인 등록을 기한 내에 마치라”고 르완다 내 한국대사관에서 성화다. 세계 곳곳의 재외교민들이 헌법소원까지 해서 얻게 된 권리인데 절대 포기할 수 없지만 실상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선거 때만 되면 친절한 정치인들이 일깨워 주는 지역감정, 이 세상 유일한 분단국가로서의 부담감, 독도는 우리 땅, 이 모든 것들이 발걸음을 주춤거리게 만든다. ‘한국의 은예레레 어른’을 이번엔 만날 수 있을까? 갈등을 부추기는 선거가 아닌 진정한 화합과 존중을 실현할 추앙받는 리더십이 등장하기를 고대한다.
 

 

이상훈은?=연세대 정외과를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국제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 연구위원으로, 우간다·아프가니스탄·르완다에서 국제구호기금 지역(보급)책임자를 맡으며 20년 가까이 생활했다. 현재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주민을 돕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의 아내는 르완다 현지에서 유치원을 개원, 교육계몽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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