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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남식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제주 파견 근무시절 회고

제주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나 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까지 발표를 기다렸다. 제주가 잘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2005년 외교부에 임용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제주로 파견을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신입 주제에 시키는 대로 해야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상하긴 했다. 중동을 연구하고 교육하라고 선발된 줄 알았는데 갑자기 제주에서 연구원을 설립하라는 임무를 맡았고, 가족과 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어서 사실은 좀 서운했었다.

 

그 때 누군가가 내게 공무원은 애국심으로 일하는 거니까 내려가서 열심히 일하라고 했었다. 그런가보다 했다. 근 1년 동안 연구는 전혀 못하고 특이한 일을 했다. 가구를 사고, 회의장 꾸미고, 카펫 깔고... 직원 채용하고. 그런 일들이었다.

 

내려가는 과정은 의아했지만 제주에서의 시간은 풍성했다. 제주시청 근처 원룸에 숙소를 얻고 매일 중문단지로 출·퇴근을 했다. 비록 먼 길을 오고가는 일상이었지만 출·퇴근 시간이 제일 행복했다. 새벽시간 한라산을 넘어 중문으로 들어갈 때의 정경, 저녁 어스름에 한라산 중턱길을 구비구비 돌아 제주시내로 들어갈 때의 정경을 잊지 못한다.

 

아름다움에 숨 막혀 보았는가? 관광객이 아닌, 현지에서 살아가는 이에게만 보여주는 제주의 속살은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다. 중산간 마을, 관광객들은 들르지 않는 작은 촌락에서 조우하는 제주의 하늘과 먼 바다는 육지에서 내려온 내게는 믿기지 않는 정경을 선물했다. 해가 일찍 진 날, 차귀도쪽 해안도로를 달리며 퇴근하다 보면 바다에 점점이 박힌 고기잡이 배의 집어등에 매료됐다. 자정 너머까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내가 보았던 제주의 아름다움은 그런 속살이었다. 표지판 하나 없어도 좋았다. 고기잡이 배의 불빛조차도 보석 같았다. 내 키를 훌쩍 넘는 산록도로변의 억새밭도 좋았고, 한라산자락 어느 곳의 돌밭조차도 코끝을 찡하게 하는 감동을 주는 곳이 제주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주에서 경험한,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은 바로 '사람'이었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은 너무나 순수하고 성실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내려와서 좌충우돌하는 내게 찬찬히 제주에서 사는 법을 일러주었다. 육지에서 내려온 혹자들은 제주사람들이 배타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겪어보면 그것은 배타성이라기보다는 투박한 성정(性情)이다. 속으로는 정을 주지만, 그 정을 육지식으로 표현하는 법에 익숙하지 않음이었다.

 

제주에서 근무하던 시절 나보다 한참 위 연배로, 제주가 고향인 한 직원분이 어느 날 병을 하나 내밀었다. 통풍으로 고생하는 나를 위해 다른 현지직원과 주말 내내 비를 흠뻑 맞아가며 한라산에서 약초를 캐다 달여다 주었다. 다시 서울에 가더라도 꼭 보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다른 공치사도 전혀 없었다. 그냥 싱긋 웃기만 하고 내 책상에 그 병을 놓고 갔다.

 

퇴근하면 누군가가 집 앞에 놓고 간 한라산 우유와 치즈가 나를 반겼고. 구경도 못해 본 말고기를 “드셔 보시라”고 가져다주기도 했다. 어떤 분은 “동생이 배를 타는데 성게가 많이 잡혔다”며 “빨리 옷 입고 나오라”고 재촉하는 통에 자정 가까이 서귀포로 한 시간이나 걸려 달려가기도 했다.

 

내게 제주의 아름다움은, 숨겨진 속살과 그리고 '사람의 정'이었다. 귀임하는 날, 비행기 안에서 아쉬움에 한라산을 바라보며 그저 그대로 있어주기를, 그저 그 속살 그대로 간직하기를 바랐다.

 

7대 자연경관이 되면 세계에서 관광객도 많이 몰려오고, 관광인프라도 좋아질 것 같다. 그만큼 살림살이도 나아질 것이고, 그 길로 가는 것이 맞다 싶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그 얻음을 통해 잃게 되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7대 경관 선정 소식을 접하면서 2006년 10월 그 감동의 기억이 급작스럽게 나에게 몰아쳤다. 내가 제주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몸은 멀리 있지만 그곳에 계신 분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그 아름다운 풍경, 그 아름다운 마음은 변치 않고 꼭 지켜달라”고-. 간절한 부탁이다.

 

☞인남식은?=서울태생이다. 영국 더럼대에서 중동정치를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외교통상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동·이슬람 문제 전문가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겸임교수도 맡고 있다. 2006년 제주로 파견 와 연구위원의 신분으로 1년여 간 국제평화재단의 제주평화연구원 설립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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