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나일경의 공감(共感)통신(2)..."정치적 판단과 권리행사 능력 깨우쳐야"

 

   
 
3년 전인 2009년. 일본에서의 정권 교체는 시민이 주역이 되는 시대가 열리는 청신호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민이 주역이라는 일본 민주당의 창당 이념은 그때 이후 빛이 바랬다.

 

정권 교체 이후, 3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선거도 없이 수상(총리)은 두 번 이나 교체되었고, 세 번째로 등장한 수상과 일반 시민 간의 소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돌연 공약으로 내걸지도 않았던 소비세 증세에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현 수상의 주장이 국민은 커녕 민주당 의원들에게조차 공감을 얻지 못하는 건 당연지사다. 국민들은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멘붕’(멘탈붕괴) 상태이다.

 

더욱이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터진지 1년이 지나도 책임을 지는 자는 찾아볼 수 없고, 여·야를 막론하고 시민사회에서 조차도 책임을 추구하는 자세도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도쿄전력은 원자력 발전소를 재가동시키지 않는 한 전기세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는 협박성 주장을 당당히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정부의 주장이 뻔뻔스럽게 반복되고 있다.

 

국민들은 다시 당혹스럽다. 그야말로 ‘멘붕’상태다. 여기서 걱정인건 정치적 허탈감에 빠진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무관심이 다시 팽배해질 것 같은 우려가 들기 때문이다. 요즘 세태를 보면서 10여 년 전 <선거밖에 관심이 없는 정치가와 선거에도 참여하지 않는 국민>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정치를 풍자했던 책을 다시 떠올려 봤다.

 

이 책의 논조는 간단하다. 선거조차 참여하지 않는 국민들이 자신의 재선(再選)밖에 관심이 없는 정치가들을 만들어 내는 기반이라는 것이다. 정치가들이 사리사욕에 넘쳐 마음껏 활개를 펴고 있을 때, 시민들이 권리를 깔아 뭉개고 잠자고 있으니, 정치가들이 자신의 재선 밖에 관심이 없어도 유권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밖에 관심이 없는 정치가를 퇴장시키지 못하는 까닭을 선거에도 참여하지 않는 시민들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공평하지 못한 주장이다.

 

생각해보라. 학창시절, 우리가 언제 수업시간에 헌법에 보장된 자신의 정치적 권리와 사회경제적 권리를 음미하고, 그러한 권리 위에 잠잘 때 잃게 되는 자기이익이 무엇인지를 숙고하는 기회를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그러한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자신 혹은 우리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워본 적이 있었던가? 학교에서, 직장에서, 지역사회에서 선거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관철시키기 위해 단결하는 방법을 함께 궁리하고 실습해본 적이 있었던가?

 

자신의 단기적 이익과 다른 사람들의 이익이 상충될 때, 그들과 원윈(win-win) 관계를 만들어내는 방법에 관해서 숙고해본 적이 있었던가? 자신의 의견과 상대방의 의견에 차이가 있을 때, 너 아니면 나, 동지 아니면 적, 좌 아니면 우, 보수 아니면 진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아니라 차이의 본질을 꿰뚫고 그 차이를 뛰어 넘는 새로운 의견을 만들어내는 훈련을 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청소년 시절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이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고, 유권자로 내던져진 것이 아니었던가?

 

정치학을 전공한 필자조차도 대학에서 그런 강의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정치학을 가르치는 교단에 서 있는 지금, 그러한 내용을 커리큘럼으로 하는 수업을 필수과목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쳐 본 적이 없다. 그런 과목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커리큘럼의 수업이 필수과목으로 다른 대학에 있다는 얘기를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들어 본 적은 없다.

정치적 판단능력 혹은 정치적 소양을 길러내기 위한 수업이 교양필수 과목으로 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권리를 행사하는 시민만큼 정치인과 관료와 경영자에게 번거롭고 무서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학생과 선생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대학의 학생들에게 왜 신성한 권리 위에 잠자고 있냐고 무조건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의 정치적 소양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을 준비하지 않은 교원에게 더 큰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토니 블레어 정권 때인 1992년 중등교육(11~16세) 시절에 권리를 행사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훈련하는 시민교육(Citizenship Education) 과목을 필수화시켰다. 필자는 일본과 한국에서도 정치적 소양을 길러내기 위한 필수 과목이 절실하다고 본다. 입시지옥 속에서 경쟁하는 방법밖에 모르는 일본과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단결하고 협조하는 방법을 훈련시키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어른의 책임이고, 국가의 의무다.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은 정치적 열망과 허탈의 사이클에서 허우적거리는 미래의 시민들을 줄이고, 미래의 똑똑한 시민들을 길러내는데 효과를 거둘 것이다. 불행중 다행으로 일본과 한국 모두 인터넷과 SNS(소셜 미디어),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이를 활용해 정치사회적 의식을 형성하고 행동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신장된 젊은이들의 정치의식이 흑백논리를 뛰어 넘고, 세대 간 의식의 단절을 뛰어 넘어 집단적 지혜로 승화되는 방법을 궁리하는 교육 프로그램이야말로 지금 당장 요구되는 시민교육의 커리큘럼일 것이다.

 

중·고교 교육 뿐 아니라 대학의 교양교육에서도 정보 해독능력(media literacy)과 더불어 정치적 분석능력(정치적 판단능력과 권리행사능력: political literacy) 교육은 필수적이다. 그게 한·일 두 나라 시민사회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다.

 

☞나일경은?=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마쳤다. 이어 일본으로 유학, 일본 게이오 대학(慶応義塾大学)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생활이 16년여다. 현재는 일본 나고야의 추쿄(中京)대학 종합정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정치와 정치이론 및 시민사회론을 전공, 강의하고 있다. 또 한국에서는 서울 신촌에 무대를 둔 풀뿌리사회지기학교의 교장도 맡고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