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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제육볶음(7)...제주도와 육지가 버무려져 더 맛깔스런 볶음

‘사소한 차이의 나르시시즘’

 

나라나 민족은 물론이고 지역 간 또는 집안의 가족 간에 생겨나는 작은 갈등에 대해 프로이트가 한 말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배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마음닫기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더 가두게 됩니다. 이기(利己)는 이에 더욱 빠지게 함으로서 배타로 나타납니다.

 


“여기까지 와서 뭐 그럴 필요가 있나?”

 

제주도에 건너온 지 1년쯤 되어가는 한 소설가는 처음과는 달리 좋은 게 좋다며 한데 아우러져 살자며 종종하던 이 말을 바꿉니다.

 

“터놓고 살아보니 아주 형편없이 막 대해오더군!”

 

이웃 간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 말 한 마디 하면 될 것을 이조차 할 줄 모르는 사람들과 여기까지 와서 섞여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디나 유유상종, 끼리끼리 모이나 보네.”

 

이런 경우가 어찌 제주도만이겠습니까? 제주도로 이주해온 상당수 사람들이 주로 1~2년 사이에 겪는 일입니다. 이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면 제주도는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는 외로운 섬이 되기 쉽습니다. 이를 극복한다하여 유유상종, 육지인들끼리 모여 사는 동네도 생겨나고 있지만 이 또한 집단적 고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차이의 나르시시즘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마음을 닫는 데서 비롯됩니다. 또 무시하는 몰이해에서 시작됩니다. 이젠 제주도 토착민의 한 마디를 들어봅니다.

 

“제주도 냄새를 맡아라. 그리고 알려고 하라.”

 

서귀포에서 식당을 20년째 경영하고 있는 L씨는 외지인들을 식당에서 자주 만납니다. 그의 냄새로 가늠하는 두 가지 부류는,

 

“제주공항에 도착하면 이게 무슨 냄새야 하는 이들이 많아요.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맡아보지 못한 냄새일 테니까요. 바다의 비릿한 냄새일 겁니다. 긍정과 부정이 여기서 갈립니다. 대부분 공기는 좋다고들 하지만 더러는 이 냄새가 불결하다고 느끼는가 봅니다. 숫자로 보면 극소수이지만 이들의 의식은 대개 제주도 폄하로 이어지더군요. 폄하는 솔직히 말하면 상대존중이 아니라 자기 것만이 최고라고 하는 무조건 상대부정일 뿐이지요. 제주도가 좋다며 온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은근히 많습니다. 낮춰보면 자기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못난 의식에 불과합니다.”

 

많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제주도에는 육지것과 섬것이란 경계 또는 배척의 단어가 아직도 종종 쓰이기도 합니다. 제주도 토착인들의 3분의 1 정도가 1948년 4·3 역사의 희생자이며 어느 편에 있든 육지의 두 개 권력이 저지른 학살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64년이 지난 일이라며 육지 사람들이 생각 없이 말할 순 없습니다. 그 학살의 아픔은 여전히 현재에도 생존해 있기에 과거의 잔재로서 얘기하는 것은 또 하나의 학살이 될 수 있습니다. L씨는 말합니다.

 

“광주에서도 그렇듯이 피해자보다도 가해자가 더 당당한 이상한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쓰곤 하는 육지것이란 말은 분명 잘못되었지요. 하지만 제주도를 조금만 이해한다면 섬것이라고 맞받아 대응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여기 제주도 섬사람은 제주도가 고향이자 삶의 터이기에 여행지처럼 찾아와 훌쩍 보고 떠나는 육지분들과는 다를 것 아닙니까? 제주도가 좋아 오시는 분들께, 특히 살러 오시는 분들께 부탁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자연만 보고 오지 마시라는 말입니다.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돈을 주고 자연을 살 순 있어도 사람과의 나눔은 결코 돈을 주고받고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러려면 바로 이해, 제주도를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제주도에 관심을 갖고 좀 더 알고 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평화의 섬을 제주도는 외치고 있지만 갈등의 섬, 전장의 섬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덧붙입니다.

 

“강정해군기지만이 아닙니다. 사람간의 갈등이 생겨나고 있고 이게 더 두렵고 무섭습니다.”

 

그가 ‘조냥정신’을 들려줍니다. ‘조냥정신’이란 서로 나누고 베푸는 마음으로, 먹을 것 없던 어려운 시절에 제주도민들 사이에 음식을 나눠 먹던 풍습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조냥하다’는 물건을 아껴서 낭비하지 않는다는 제주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차츰 사라져가고 있어서 제주도에서 태어났어도 요즘 아이들도 모른다고 합니다. 옛 풍습이 사라져가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그 자리에 오히려 자기 것만 아는 이기심이 채워지니 더 걱정이라고 합니다. 올레로 제주도가 유명은 해지고 있지만 한편 올레로 인해 제주도다움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고 걱정을 합니다. 어느 광고에서처럼 지킬 것을 지켜가며 발전해야 하는데 오로지 개발과 같은 변화만 제주도에 횡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 좋은 정신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고요.

 

“제주도엔 원래 문 대신 긴 나무 세 개로 재실, 외출 등을 알려주던 정감 넘치는 정낭이 있었지요. 하지만 정낭이 사라지고 그곳에 쇠철문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낮은 돌담들도 시멘트블록으로 높이고 있습니다. 없던 도둑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끼리 살 땐 이러지 않았습니다. 제발 제주도를 알고 와주면 좋겠습니다. 올레니 하며 유행 따라 제주도를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 반갑긴 하지만 한편 안타깝습니다. 그들이 한 장 찍어가서 올리는 사진이 바로 우리의 삶이며 생활인데, 이것이 동물원 안의 구경거리쯤으로 전락되고 있는 것 같아섭니다. 우리의 사생활이 육지인들의 기념사진의 배경으로 이렇게 침해를 해도 되는 건가요? 시골 섬사람이지만 우리도 프라이버시가 있고 프라이드도 있습니다.”

 

제주도민의 일부가 제주말을 쓰지 않는 외지 사람에게는 달리 대해 부르던 값을 올린다든가 유난히 친절을 베풀어 결국 속이곤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며 이러한 제주도민들을 그는 먼저 탓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세상 어디에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제주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닌데도 제주도의 나쁜 특성처럼 얘기합니다. 제주도 이주 3년차인 내가 좀 더 객관적으로 보면 이주민들의 배타성이 현지 주민들의 그것보다 더 심해보입니다. 이 배타성은 제주도민을 깔보는 하대에서 비롯됩니다.

 

“살러 왔다하더라도 그들이 마음까지 여기에 두지는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여기서는 이방인·주변인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을 테니까요. 제주도에 대한 부정의 출발은 바로 정착하지 못하는 마음,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이런 마음이나 자세에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부동산업자 K씨의 말을 더 들어봅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오라고 부추겼나요? 스스로 선택을 해놓고 제주도를 탓합니다. 그리고 제주도에 대한 인식은 제주도민 외의 사람들이 쓴 책이나 언론들을 통해 잘못 알려지고 있는 게 많습니다. 제주도 소개 책을 읽고 그걸 다 믿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무조건 왔다는 사람을 부동산사무실에서 종종 만납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샀던 집을 내놓으면서 제주도를 싸잡아 욕해댑니다. 엄연히 말하면 잘못 안 정보 탓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믿었던 자신의 결정을 먼저 탓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거래가 이뤄지는 집들은 외지인들이 사고 다시 파는 일이 대다수입니다. 이들이 값을 올리고서는 제주도 사람들이 올린 듯이 얘기합니다. 구입한 값이나 그 아래 가격으로 내놓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다 올려 부르고 우리는 이를 심부름할 뿐입니다. 결국 되사는 사람들은 외지인들입니다. 제주도가 거짓말을 하진 않습니다.”

 

도민혜택을 받아 50% 할인 골프를 치는 이들에게서 제주도민 비하의 말을 들을 때, 국제영어학교 등이 들어서면서 3배나 오른 값으로 땅을 되팔아줬건만 그의 입에서 제주도도 육지와 다를 것 없다며 떠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임대료를 시세보다 턱없이 비싸게 내놓은 올레길가의 레스토랑이나 게스트하우스 등 이를 운영하던 이들에게서 제주도 와서 손해만 보고 간다는 말을 들을 때, 이들이 무엇 때문에 제주도에 왔고 또 제주도를 욕할 자격이나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합니다.

 

명상학교의 선생인 M씨는 1년 반 만에 그 좋다던 제주도를 떠나 다시 서울로 돌아갑니다. 제주도만한 명상터가 한국엔 없다고 자신하던 그녀는 일거리 없는 제주도를 떠나 다시 할 일을 찾아 사람 많은 서울로 옮겨야 했습니다.

 

“제주도로 다시 가고 싶지요. 하지만 실수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는, 놀러는 꼭 갈게요 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젊었을 때의 꿈을 제주도에서 이루게 되었다는 나이 40대의 목수 Y씨는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화려한 아메리카의 꿈을 펼쳐 내놓습니다. 과거 미국 땅에서의 성공을 떠올리며 머무는 이곳 제주도는 일시 멈추는 정거장이 되고 지나쳐가는 삶의 정류장 그 이상이 되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모두가 정착보다는 임시거주지로 여기는 마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이를 벗겨내지 않고 제주도로 온다면 제주도는 환상의 땅, 환각의 땅에 불과합니다. 아님 과거 회상, 과거 집착의 땅일 뿐입니다. 밟고 있는 땅이 허공인 것이지요. 스스로 이방인이 되고 자발적 주변인으로밖에 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불안정한 마음에서의 선택은 기피이며 도피입니다. 이러니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작도 끝도 다 부정에서 부정으로 이어집니다. 그래도 떠나면서 제주도에 연민이 남아있다면 아름다울 수 있던 기억의 이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식당주인 L씨는 제주도 자연을 사랑하기 이전에 자기를 진정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제주도로 살러 오면 좋겠다고 합니다. 진정한 자기애는 결코 배타적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이타심으로써 자기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일러줍니다. 제주도의 조냥정신의 부활을 그는 기대한다면서...

 

사랑의 썰물

 

차가운 이별의 말이 마치 날카로운 비수처럼
내 마음 깊은 곳을 찌르고 마치 말을 잃은 사람처럼
......
기억할 수 있는 너의 모든 것 내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와
너의 사랑 없인 더 하루도 견딜 수가 없을 것만 같은데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혼자 외로울 수밖에 없어
어느 새 사랑 썰물이 되어 내게서 멀리 떠나갔네.
 

 

오동명은?=서울 출생. 경희대 경제학과를 나와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한국기자상과 민주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으로 세상읽기]·[부모로 산다는 것]·[신문소습격사건]·[일본자전거여행] 등 다수의 책을 냈다.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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